규제와 재벌
규제와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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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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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여러 표현 중 하나가 규제 완화다. 완화라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규제 철폐가 신자유주의 성격에 부합한다. 지난 20일에는 역사적 평양 방문이 진행되는 동시에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입 제한) 규제를 완화한 인터넷전문은행법이 통과됐다. 표면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법은 인터넷뱅킹 산업의 선진화와 이에 따른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현 정권이 야당 시절 결사반대한 은산분리 원칙을 풀어준 모양새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들 사이에서도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표 대결 끝에 법안은 통과됐다.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재벌의 오랜 숙원 중 하나로, 역대 정권마다 해당 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한 재벌의 다각적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비대칭 구조의 한국경제가 더욱 재벌 중심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국민 여론에 힘입어 본격적 논의가 어려웠다. 현 집권당은 야당일 당시 재벌규제를 주장하며 해당 논의를 원천봉쇄하는 데 주력했다.

  권력이 교체되고 경제의 완만한 상승세가 보이지 않으면서 현 정부는 전 정권처럼 규제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규제가 투자를 막는 제1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현 정부 경제관료 사이에서도 팽배하기 시작했다. 대북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며 보여줬던 리더십과 달리 경제문제에서 발목이 잡혀 지지율이 하락한다는 여론에 신경을 쓰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 결과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과시키는 것처럼 자신들의 국정운영 철학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와중에 재판 중인 모 재벌총수는 대북 방문단에 포함돼 평양에서 일정을 보내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재판이 끝난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일련의 상황으로 특정 기업과 개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역설적인 점은 이 과정에서 재벌의 숙원과제인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다. 일부러 연출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이상하게 볼 만한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현 정부는 촛불로 일어선 정권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제성장을 빌미로 친재벌 정책에 한발 다가선 모습을 보여준다. 최저임금 도입이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초기의 의지만큼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방북을 홍보하는 동시에 재벌 중시의 규제를 풀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현 정부의 철학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국민적 지지가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착각일 수 있다. 국민적 지지가 멀어지는 이유는 촛불로 일어선 정권을 자처하며 시행하겠다고 말한 개혁이 번번이 불분명한 자본 논리에 가로막히는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이 점을 유념하고 지금이라도 더욱 변혁적 개혁에 노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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