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운이 좋게도 노동을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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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예은 기자
  • 승인 2018.11.05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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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 위험계급, 프레카리아트

  최근 높은 청년 실업률, 심화되는 경제적 양극화, 좁아지는 취업 시장으로 인해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히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면서 취업 경쟁이 점차 격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생계를 위해 저임금 직종이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고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받아들인다. 이는 분명 비정상적이지만, 지금은 비정상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된 우울한 시대다. 우리는 ‘프레카리아트’가 됐다.

  노동이 당연한 사회를
  떠도는 사람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취약함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precario’와 무산계급을 의미하는 독일어 ‘proletariat’의 합성어로, 저임금·저숙련 노동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인 노동자를 총칭한다.

  이에 대해 런던대학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이하 스탠딩 교수)는 2010년 8월 19일에 있었던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이하 이코노미 인사이트)에서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안정적인 고용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 별다른 직업 경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프레카리아트다”며 “프레카리아트는 ‘새로운 위험 계급’이다”고 설명했다. 프레카리아트 계급은 점차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N포세대’와 유럽의 ‘1,000유로 세대’, 일본의 ‘프리터’ 등이 대표적이다.
 

가이 스탠딩 교수가 정의하는 프레카리아트

  신자유주의가 그려낸
  어두운 자화상

  일용직과 임시직, 비정규직, 그리고 파견·용역직 등 프레카리아트의 증가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스탠딩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에서 신자유주의가 대량의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1970년대, 신자유주의적 경제 사상이 지배적 경제 학파로 대두되면서 노동 시장이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따른 노동 시장은 해고가 쉬워지고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으며 노동 환경이 불안정해졌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성장의 과실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국가 전체에 분배되는 낙수 효과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은 낙수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취업 시장에서 생존 경쟁을 해야 하거나 저임금·비숙련 직업에 종사할 위험에 처했다.

  또한 스탠딩 교수는 프레카리아트의 출현이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에서 “지난 30년간 노동시장의 급속한 유연화가 프레카리아트를 만들어냈다”며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도 프레카리아트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발달한
  도시의 이면

  하지만 신자유주의만이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하는 원인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도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나는 데 일조한다.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임운택 교수(이하 임 교수)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한 원인은 맞지만,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며 “전통적인 제조 산업이 사양화되며 하나의 기술만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자리 경쟁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문화 산업이 확장되고 있다”며 “해당 분야는 청년층이 선호하는 분야인데도 정규직이 적고 프리랜서 비율이 높은데, 이처럼 산업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프레카리아트의 비율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AI 기술이 발달해 기계화와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설계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계에 일자리를 뺏기고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해 프레카리아트 문제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제기된다. 사람들이 아직 기계화되지 않았지만 미래 전망이 없는,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이는 것이다.

서울대 공대 연구팀이 예측한 2090년 사회 계급도<출처/매일경제>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23일 매일경제의 <AI권력이 ‘초양극화사회’ 만든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유기윤 교수 연구진(이하 연구진)은 2090년에 미래 도시의 시민들이 4개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사회는 △현재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공룡 플랫폼 기업 소유주 △일부 정치 엘리트, 예체능 스타, 소수의 창의적 전문가들이 속한 플랫폼 스타 △법인격을 가진 인공지성 △미래 정보형 기업에 접속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프레카리아트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종사하는 노동의 값어치가 낮아져 대부분의 시민들이 빈곤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진은 “인공지성은 205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며 “이 과정에서 프레카리아트에 속한 시민들이 거세게 저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23일 더 뉴요커 잡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룬 표지다. 해당 표지는 먼 미래에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로봇들과 그에 대비되게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지난해 10월 23일 <더 뉴요커> 잡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룬 표지다. 해당 표지는 먼 미래에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로봇들과 그에 대비되게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출처/더 뉴요커>

  우리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프레카리아트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데도 프레카리아트는 사회적으로 외면받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박태호 교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프레카리아트 :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대칭성에 관하여> 논문에서 “현재 양극화는 노동자 계급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해된다는 점에서 이전의 양극화와 다르다”며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레카리아트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일용직과 같이 조직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실업자, 백수 등으로, 하나로 묶기 힘들며 조직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전했다.

  스탠딩 교수 역시 지난해 11월 15일에 열린 아시아미래포럼(이하 포럼)에서 “프레카리아트는 직업이나 소속이 불안정해 노동운동을 펼치기 힘들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은 미약하다”고 말했다. 조직에서 배제되는 프레카리아트의 특성상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고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주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상생하는 사회
  삶이 있는 우리

  이에 프레카리아트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국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며 “적극적인 조세 정책을 시행해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사람들에게 직업 훈련의 기회를 주며 사람들이 자립하도록 도울 수 있어 사회적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며 “보편적 복지 국가가 된다면 현재 떠오르는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 창립자이자 명예 공동대표이기도 한 스탠딩 교수는 프레카리아트를 보호하기 위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수준의 소득을 조건 없이 제공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포럼에서 “지대소득을 배분할 대안으로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사회정의의 문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난다고 해서 부정적인 현상만 발생할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며 “네덜란드는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상회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정한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기술체계는 사회적 담론과 전략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 그려질 수 있다”며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등 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카리아트는 기술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일 수 있다. 또한 프레카리아트는 고용 측면에있어 전통적 고용 방식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 자신의 삶을 융통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날 것이 예측되는 가운데 프레카리아트가 그 자체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프레카리아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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