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쌍문동 캠퍼스의 건축가들
[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쌍문동 캠퍼스의 건축가들
  • 문은미(실내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18.11.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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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문동 캠퍼스는 1976년 마스터플랜에 기초해 현재의 자연관인 약학·가정관이 완공된 후 1979년 3월 운니동 캠퍼스에서 이전하면서 시작됐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어울리고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높이의 건물들이 크고 작은 마당을 둘러싸는 쌍문동 캠퍼스는 덕성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제임스 패덕의 캠퍼스 마스터플랜
  1972년 12월 대학신문에 발표한 쌍문동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1973년부터 1981년까지 4차에 걸쳐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체육시설, 중·고등학교, 대학시설을 단계적으로 완성함으로 써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종합캠퍼스 계획의 포부를 담고 있다. 당시 ‘대학시설정비령’의 체육장 규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31면의 테니스장과 400m 트랙의 육상경기장, 국제규격의 메인 풀과 하이슬라이더까지 갖춘 수영 장을 먼저 계획한 결과 체육시설이 교지 남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997년 마스터플랜<출처/덕성여대신문>
1997년 마스터플랜<출처/덕성여대신문>

  현재 쌍문동 캠퍼스의 근간이 된 마스터플랜은 미국의 건축가 제임스 패덕(James A. Paddock)(이하 패덕)에 의해 완성됐다. 패덕은 1971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 자문을 위해 구성된 미국의 캠퍼스용역단 DPUA(Dober, Paddock, Upton Associate)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DPUA에서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을 담당했던 로버트 오엔(Robert P. Owen)은 쌍문동 캠퍼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 대학들이 양적으로 증가하며 장기발전계획에 기초한 마스터플랜의 개념 없이 무계획적인 캠퍼스 확장에 몰두했음을 생각할 때, 우리대학의 마스터플랜은 국제적인 전문가의 계획에서 출발한 것이다. 1977년 3월 발표된 패덕의 마스터플랜은 전형적인 서구 대학캠퍼스의 마스터플랜 성격을 보여주는데, 대학의 핵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행정본부, 도서관, 학생회관 이 교지의 중심에서 광장(현 민주광장)을 둘러싸도록 구성한 점, 개별 건물들이 학과의 유사성에 따라 마당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소규모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계획된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쌍문동 캠퍼스 계획의 핵심은 교지 서쪽의 백운대, 인수봉에서 북쪽의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또 현존하는 자연을 보존하며 주변 녹지와 대학 건물이 조화되도록 고려한 것이다. 우리대학에서 친환경 캠퍼스의 원칙은 이때부터 적용되고 있었으며 건물의 높이를 3~4층으로 제한했던 당시의 원칙 또한 일부 기숙사 건물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유효하다.

  건축가 김수근, 붉은 벽돌의 미학
  한국 현대건축의 제1세대로 손꼽히는 김수근(金壽根) 건축가가 쌍문동 캠퍼스의 첫 번째 건물을 설계한 것은 우리대학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앞으로 지어질 건물설계를 위한 형태와 공간계획의 원칙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공간종합건축사무소의 김수근이 약학·가정관 건물설계에 참여하게 된 것은 1975년 완공된 서울대학교 예술관을 설계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패덕을 통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약학· 가정관은 부지에 원래 있던 벚나무와 단풍나무들을 가능한 보존하고 이 나무들을 둘러싸는 3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은 주변 녹지와 조화되고 더러움을 타지 않으며 도색이 필요 없는 견고한 재료로서의 기능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김수근은 전통 민가의 흙벽이나 담장의 투박한 질감, 따뜻한 정서를 전달하는 재료로 붉은 벽돌을 즐겨 사용해왔다. 전 벽돌을 사용한 △공간사옥(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대학교 예술관 △대학로 문화예술회관의 공연장과 전시관 △구 샘터 사옥 △경동교회 △마산 양덕성당 등 우리대학 건물과 유사한 붉은 벽돌 건물들은 그의 대표작들이다.

  서울미래유산이 된 캠퍼스의 건물들
  약학·가정관 건물은 초기 마스터플랜과 달리 후문의 우이천로를 따라 틀어져 배치됐고, 북한산이 보이는 서쪽 조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강의동을 2층으로 낮춰 1층은 필로티로 개방했다. 중정의 크기와 건물의 높이를 세심하게 조율하고, 계단실을 이용해 건물 덩어리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나눠 사용자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계획했다. 또한 비엔나 숲에서 강의동(현 자연관 B동) 1층의 필로티를 통해 소영근터, 영근터로 사람들의 움직임과 시선이 연속돼 산으로 둘러싸인 탁 트인 전경을 맞이하도록 했다. 약학·가정관 준공 직후부터 시작된 미술학관(현 예술관)은 약학·가정관과 연결되는 건물로 영근터를 마주 보는 자리에 배치됐다. 북한산을 향해 열려 있는 마당이 대강의동(현 예술관 L동), 순수미술계동(F동), 공작동(N동) 3개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어 영근터에서 보면 마치 기단 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계단으로 반 층을 올라온 높이에 자리한다. 각 건물은 구름다리로만 연결된 채로 떨어져 있어 남쪽으로 운동장과 북동쪽 비엔나 숲으로의 통행과 시야를 개방했다.

  미술관이 1982년 3월에 완공된 후, 패덕의 기본설계를 공간건축에서 실시·설계하는 방식으로 △1984년 중앙도서관 △1990년 행정동 △1991년 학생회관 건물들이 건설됐다. 중앙도서관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도서관의 기본설계를 수행한 경력이 있던 패덕이 캠퍼스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되도록 중정을 둘러싸는 붉은 벽돌의 4층 건물로 설계했다. 쌍문동 캠퍼스에 약학·가정관, 미술관, 도서관 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실내외 공간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붉은 벽돌의 캠퍼스 특성이 뚜렷해졌다. 이 세 건물은 한국 현대건축에서 김수근이 설계한 캠퍼스 건축물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약학· 가정관은 종합예술잡지 ‘공간(SPACE)’의 1980년 1월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약학·가정관 건물은 1978년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우수건축물로 선정됐고, 미술학관 건물은 1982년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붉은 벽돌의 미학을 인간적 스케일과 한국적 투박한 질감으로 표현한 김수근 캠퍼스 건축시 리즈의 정립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보존가치가 인정돼 이 세 건물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지어진지 30년이 지난 이 건물 중에서 도서관이 2010년에 가장 먼저 리모델링돼 2층 주 출입구와 로비공간이 크게 개선됐고, 약학관이 2012년에 신축 이전함에 따라 자연관은 2013년, 예술관은 2015년에 각각 리모델링됐다. 캠퍼스 조성 초기 건축 물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건축가의 독창성을 존중해 외형은 유지하고 실내 환경 개선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공사가 이뤄 졌다.

1990년 마스터플랜 수정안<출처/ 덕성 40년사>
1990년 마스터플랜 수정안<출처/ 덕성 40년사>

  쌍문동 캠퍼스의 건축가들
  쌍문동 캠퍼스의 80년대 마스터플랜과 건물들이 패덕과 공간건축의 김수근에 의해 시작됐다면, 90년대부터는 김종성(金鍾星) 건축가가 대표로 있었던 서울건축에서 기숙사, 대강의동, 인사관, 차미리사관, 언어교육원, 하나누리관을 설계했다. 김종성은 미국 시카고 IIT(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서울힐튼호텔, 서울역사박물관을 설계한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특히 철골과 유리 건물의 선구자다. 1989년 10월 준공된 기숙사는 서울건축이 설계한 첫 번째 건물로 10~12명의 학생을 하나의 그룹으로 구성해 단위별로 간단한 주방, 식당 겸 거실을 갖춘 형식이었다. 이는 당시 학교 기숙사의 일반적인 계획 방식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의 캠퍼스 건물들은 기존 건물의 형태를 고려해 벽돌과 유사한 외장 재료를 사용했으나 단위 건물의 크기가 커지고 기능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단순한 박스 형태로 변화했다. 2010년 하나누리관과 라온 센터 건물에 이르러서는 현대적인 커튼월 건물로 전환돼 초기 벽돌 건물과는 다른 형태와 구조를 갖게 됐다.

2018년 덕성여대 배치도<출처/시설과>
2018년 덕성여대 배치도<출처/시설과>

  우리대학이 쌍문동 캠퍼스를 조성하던 초기의 기대와 희망을 과거 대학신문을 비롯한 여러 자료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초기 마스터플랜부터 개별 건물의 설계와 조경계획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캠퍼스를 조성하기 위해 전문가를 선정하고 자문을 구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대학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마스터플랜을 구축하는 현시점에서 캠퍼스 초기의 포부와 노력이 새삼스럽고 소중하다.

예술관 L동에서 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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