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집단지성의 허구적 신화
온라인 집단지성의 허구적 신화
  • 정예은 기자
  • 승인 2019.03.18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리한 대중인가, 디지털 대중주의인가

  최근 인터넷을 보면 정치 성향 등 개인의 이념에 따라 네티즌들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본래 SNS, 포털, 대중 참여형 백과사전 등의 사이버공간은 많은 사람의 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재 사이버공간에서 사람들 간의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 집단지성은 영리한 대중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성 문화를 답습하거나 약자를 혐오하는 디지털 대중주의적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기사에서는 온라인 집단지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봤다.
 

출처/Pixabay
<출처/Pixabay>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많은 사람이 협력해 도출된 지적 능력을 말한다. 이는 1910년에 하버드대학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 교수가 개미 집단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해 출간한 저서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보여주듯, 집단지성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집단지성에 대한 실험 결과, 때로는 비전문가 집단의 집단지성이 소수 전문가의 능력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이 도출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집단지성은 온라인으로 확산됐다. 많은 사람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즉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어려운 ‘집단 의사소통’이 용이해졌다. 그리고 이는 온라인에서 집단지성이 순기능을 발휘하는 데 기여했다.

  온라인 집단지성이 발휘된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엑손 발데즈호의 원유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해결한 사건이다. 1989년, 알래스카에서 유조선이 좌초됐는데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원유가 유출됐다. 이로 인해 해양이 오염돼 해양 생물들이 집단 폐사했다. 엑손 발데즈호를 소유했던 회사 측은 사고 해역의 방제 비용으로 21억 달러의 비용을 투입했으나 해당 지역의 환경오염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국제기름 유출 연구소는 많은 사람에게 문제를 공유해 해결책을 찾는 기관인 ‘이노센티브’(InnoCentive)에 해당 사고의 해결책을 문의했다. 이노센티브는 웹사이트에서 공유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받았고, 한 시멘트 회사 기술자의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온라인 집단지성이 올바르게 발휘된 좋은 예시다.


  집단지성의 생산자, 가짜뉴스의 생산자?
  하지만 온라인 집단지성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이 합리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과 정보에 기반해 사고해야 한다. 온라인은 정보의 바다로 불리지만 그 안에는 정확한 정보와 가짜뉴스, *대안적 사실이 혼재한다. 집단지성에 따른 결론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도출됐다면 그 결론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정보 감별 능력이 없는 집단지성은 가짜뉴스의 소비자로서 제 기능을 잃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지식문화연구소 정호대 연구교수(이하 정 연구교수)는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사안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미투(#MeToo)의 경우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인지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토론함에 따라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며 “반면 가짜뉴스는 잘못된 정보를 전파해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온라인 집단지성은 가짜뉴스의 생산자로서 작용할 수도 있다. 2011년에 던컨 와츠(Duncan J. Watts) 박사가 트위터를 분석한 결과 트위터 타임라인에 나타나는 트윗의 절반가량은 트위터 이용자의 0.05%인 2만 명의 소수 사용자가 만들어낸다는 것을 밝혔다. 같은 해에 국내에서 다음소프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95% 정도의 트윗을 상위 20%의 트위터 이용자가 생산하고 있었다. 또한 트위터의 엘리트 사용자들은 동질성이 강해 트위터에서 생산되는 의견의 스펙트럼이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 연구교수는 “다수가 참여할 수 있어도 그들 모두가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에게 영향력이 집중되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이다”며 “단 온라인에서 이것이 더 가시적으로 강조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정보 생산자 및 참여자가 많은 정보를 생산해 이들의 일부 견해가 대중에게 노출되고 소비된다면 그들의 의견이 온라인 집단지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온라인 집단지성이 가짜뉴스를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개인은 독립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에 영향을 받아 타인과 동질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동질성 원리라고 한다.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에서는 ‘사상의 편향성’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2011년에 얀 로렌츠(Jan Lorenz)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14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집단지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44명의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답하는지 관찰한 것이다. 그 결과 144명의 학생이 각자 독립적으로 혼자서 답을 도출할 경우 집단적으로 정답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였으나, 다른 학생이 예측한 답을 알려줄 경우에는 학생들의 답변이 정답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는 사회적 영향력이 집단지성의 참여자인 개인들에게 영향을 줘 결론적으로 집단지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단지성은 개인의 의견보다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 집단지성이 가짜뉴스 전파에 영향을 준다면 대중은 사실 여부를 감별하기 어려워져 문제가 된다.


  편향된 정보로 인한 혐오와 타자화
  포털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 많은 사람의 의견이 게재되는 사이버공간은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이 반대 성향을 가진 커뮤니티에 의견을 게재할 경우 해당 커뮤니티에서 제명되기도 한다. 커뮤니티는 커뮤니티 내 주류 성향에 따른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고, 커뮤니티 이용자는 커뮤니티 내 정보들을 주로 흡수해 온라인에서 정보의 편향성은 점
차 강화된다.

  이에 온라인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나 타자화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일, 도나 시어 스트리클런드(Donna Theo Strickland)가 여성 물리학자로서는 55년 만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온라인 집단지성의 산실로 여겨지는 위키백과에 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전까지 스트리클런드의 인물 정보가 없었다.

  영국 일간지인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스트리클런드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기 몇 달 전, 한 위키백과 사용자가 스트리클런드의 인물 정보 문서를 만들려고 했으나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야 한다는 ‘저명성’의 편집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리자로부터 문서를 만드는 것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위키백과에서 남성 인물 정보는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지는 반면 여성 인물 정보는 그렇지 않아 위키백과가 젠더 편향돼 있다고 비판했다.

  위키백과에는 젠더 편향 외의 다른 편향성 문제도 있다. 위키미디어재단이 지난해 위키미디어 참여자의 지역 분포를 파악한 결과, 위키백과 편집 참여자의 50% 이상은 서유럽 출신이었으며 아시아 출신은 20% 이하였고, 아프리카 출신은 5% 이하였다. 또한 위키백과 편집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20~30대 고학력의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위키백과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지식을 공유해 집단지성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위키백과에서 집단지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서구중심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윤진혁 선임연구원은 한겨레에서 “위키백과의 슈퍼편집자들이 적다는 것을 두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소수의 슈퍼편집자들이 과다한 영향을 끼칠 때 생각지 못한 구조적 편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건 문제다”고 지적했다.


  집단지성의 현명한 활용을 위해
  집단지성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에 개인의 사고보다 다양하고, 유연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지성이 순기능을 적절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의 특성에 맞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별력 없는 집단적 사고는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등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인터넷이 제2의 눈과 입이 되는 정보화 시대에 온라인에는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성 발언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온라인 집단지성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온라인 집단지성이 걸어야 할 길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안적 사실 :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사실이 아닌 주장을 사실이라고 합리화하는 것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