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아질 때까지
세상이 나아질 때까지
  • 정예은 대학사회부장
  • 승인 2019.03.1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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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엄마와 미세먼지 얘기를 하며 아침에 집을 나오려는데 우리 집에는 미세먼지 마스크가 없었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엄마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사서 쓰라고 했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그냥 빨리 죽지 뭐” 어제도 들은 말이다. 어제는 생활비 얘기를 하다가 그 말을 들었다. 엄마는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마주할 때 그 상황을 자조적인 농담으로 무마하는 습관이 있다. 참 살기 버거운 날들이다.


  어렸을 때는 신에게 기도하면 소망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간절한 바람이 떠오를 때마다 기도했다. 중동에서 내전이 발발하고, 정치가 재벌을 변호하고, 법보다 가까운 폭력으로 물든 세상을 보며 사회가 평화로워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중학생이 됐을 때도 우리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가 되길 바라며 기도했다. 그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고대 그리스극에서 문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주던 만능장치)적인 ‘영웅’이 등장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고, 빈곤한 사람은 많았으며 불공평하게 압제당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회 개혁의 벽은 높고 견고했다. 나는 기도를 그만뒀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나스스로가 사회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된 후 사회 정책에 관심을 두고 사회 정책들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되기에 사회 변화의 원동력은 우리의 행동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사회 구조를 바꾸겠다고정하면 사회는 그 방향대로 따라갔다. 한계가 있어도 사람들의 논의에 따라 사회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물론 사회적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행복이 필연적으로 증진되는 것은 아니다. 빈곤한 사람이 줄고 공평한 사회가 돼도 개인은 불행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도는 올라갈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정도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사회는 시험을 위해 방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 청소년, 용돈 5만 원 달라고 하면서도 부모에게 미안해하는 대학생, 낮은 매출 때문에 생계를 걱정하는 자영업자가 자조적으 로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다. 나는 우리사회가 미래를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지 않는 사회이길 바란다. 그리고 개인의 불행이 작은 일상에 대한 불평으로 끝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다 같이 사회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의해야만 한다. ‘없는 곳’을 의미하는 이상향,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몫에 달렸다. 이것이 내가 버거운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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