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간병 전쟁, 고통받는 가족들
끝없는 간병 전쟁, 고통받는 가족들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9.04.0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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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그림자가 된 가족 간병인

  시집살이는 젊었을 적에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작년에 시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 뒤 난 다시 시집살이를 겪고 있다. 나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어머니를 간병해야 했다. 다른 가족들은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간병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일 쉬지도 못하고 시어머니를 간병하지만 나는 치매 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간병인으로서 어떤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오늘도 난 어제와 같이 고되고 힘든 하루를 반복한다. 시어머니가 죽지 않는 이상 이 전쟁과도 같은 간병은 계속되겠지.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이명선 명예교수 외 2명이 지난 2004년에 발표한 논문 <여성가족간호자의 치매노인 돌봄경험: 여성주의적 접근>의 일부 내용을 재구성했다.


  고령화사회가
  빚어낸 비극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국내 노인 인구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의료 분야의 지식과 기술이 발전해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7년에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비율이 9.9%에 달해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20년에 15.7%에 이르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와병 생활을 해야 하는 환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치매 환자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2025년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 수는 70만 5,473명으로 작년보다 4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춰봤을 때 고령의 치매 환자가 와병 상태인 기간과 간병인이 그 환자를 간병하는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의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족이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경우가 많다. 2013년에 발표된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이명선 명예교수(이하 이 명예교수) 외 1명의 논문 <부양부담과 가족극복력이 치매노인 부양가족의 적응에 미치는 영향>(이하 논문)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72%를 가족이 간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간병 교육을 받거나 간병을 해본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가족 간병인은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논문에 따르면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가족 간병인은 △피로 △건강 악화 △체력 소진과 같은 신체적 문제와 △불안 △우울 △사회활동 제약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같은 심리사회적 문제를 겪는다. 이러한 문제들은 가족 간의 갈등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도 이어져 치매 환자를 부양하는 가족은 총체적인 어려움에 내몰리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부모에 대한 효 사상이 돌봄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 여겨진다”며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환자를 간병하는 강도가 강해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면서 가족 간병인의 간병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서울신문
출처/서울신문
출처/서울신문
출처/서울신문

  죽어야 끝나는 전쟁
  간병살인

  가족 간병인은 과도한 간병 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홀로 그 부담을 짊어지는 ‘독박간병’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가족 간병인이 본인이 간병하던 환자를 살해하거나 환자와 함께 목숨을 끊는 ‘간병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간병살인은 1980년대 일본에서 투병 중인 환자를 간병한 환자의 가족이 환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유래됐다. 오늘날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간병살인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간병살인이 발생하면서 열악한 가족 간병 환경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던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그는 10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아버지를 간병했다. 그러다 최근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된 것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이철호 교수(이하 이 교수)는 “가족 간병인과 환자의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몸과 마음에서 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서 비롯된다”며 “가족 간병인이 겪는 고통이 덜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간병살인과 같은 간병범죄가 지속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출처/SBS
출처/SBS

  열악한 간병 시스템을 개선해
  간병인을 보호해야 해

  SBS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동반 자살한 가해자를 포함한 간병살인의 사망자 수는 213명에 달한다. 이는 적지 않은 수의 환자와 간병인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전문가들은 간병범죄를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의 열악한 간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치매를 비롯한 중증환자의 간병 문제를 개인의 효심에 의존해 해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증환자를 관리해 가족 간병인의 간병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간병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보호자 없는 병원’처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인 대신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괄 간호 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며 “더불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 범위를 넓히고 간병인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족 간병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족 간병인의 우울증, 심리적 불안 등과 같이 가족 간병인의 심리적 문제가 간병범죄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 명예교수는 △가족 간병인 가족모임 △환자와 가족 간병인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 △질병과 간병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 명예교수는 “가족 간병인은 주로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들의 희생적인 간병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가족 간병인에 대한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따뜻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병인이 아프지 않은
  건강한 간병 시스템

  마지막으로 이 명예교수는 간병에 대한 구시대적인 사회적 관념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현재 많은 사람이 요양병원에 환자를 보내는 것을 ****고려장과 흡사하게 여기곤 한다”며 “이러한 구시대적 효 사상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사회적 관념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는 더 나은 간병을 받고 가족은 간병의 부담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가족들은 요양원에 간 환자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느끼지 않도록 자주 방문해야 하고, 요양원에서는 가족들의 돌봄 욕구를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화사회 :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
**고령사회 :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
***초고령사회 :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
****고려장 : 늙은 부모를 산에 버려뒀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풍습으로 현대사회에서는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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