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무환경, 고통받는 간호사들
열악한 근무환경, 고통받는 간호사들
  • 정지원 기자
  • 승인 2019.04.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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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의 악순환 이어져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맡은 환자만 20명 남짓,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내게는 다음이 있어도, 환자에게 다음은 없으니까. 이런 와중에 얼마 전 들어온 후배의 교육을 맡게 됐다. 내 일을 처리하기도 바쁜데 후배에게 차분히 업무를 알려줄 시간이 없다. 그저 따라다니며 보고 배우기를 바랄 뿐. 그 후 현장에 투입된 후배가 실수를 저질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라고 화를 냈다. 사람들은 모르면 실수할 수 있지 않냐고 타박한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이 나를 몰아세운다. 이런 상황을 버티기 위한 내 처절한 몸부림,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권희선 작가의 저서 <어느 간호사의 고백 2>의 일부 내용을 재구성했다.



  오늘도 나는 태워진다
  지난 1월 5일,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던 故서지윤 간호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유서에는 ‘병원 사람들의 조문은 받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 병원 내 괴롭힘과 스트레스가 그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JTBC에 따르면, 故서지윤 간호사가 힘들어한 건 병동에서 간호행정부서로 옮긴 지난해 12월 18일부터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29일에 집에 와서 ‘지금까지 간호사 ‘태움’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가하는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 직업 특성상 사소한 잘못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 간의 위계질서와 엄격한 교육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력과 욕설, 인격 모독 등이 가해지면서 간호계에 ‘태움 문화’라는 폐단이 자리 잡았다. 2017년 12월 28일부터 지난해 1월 23일까지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7,275명의 응답자 중 40.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괴롭힘의 구체적 사례로는 ‘고함을 치거나 폭언하는 경우’가 1,866건으로 가장 많았고, △본인에 대한 험담이나 안 좋은 소문(1,399건) △일과 관련해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1,324건) 등이 뒤를 이어 괴롭힘의 범주가 업무적 측면을 넘어서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의료연대본부>


  무엇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는가
  태움 문화가 간호계에 뿌리내린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한다. 실제 우리나라는 고질적인 간호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2017년 ‘OECD Health stat’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의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53.8%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간호 가능 인력이 적은 것은 아니다.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뎌낼 간호사가 많지 않을 뿐이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간호사 면허를 보유한 사람이 18.4명으로 OECD 평균인 12.8명보다 높은 편이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는 의사와 대등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3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환자를 관리한다”며 “현행 노동법에 따라 간호사 역시 하루에 8시간씩 근무하는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돌발 상황·응급 상황으로 인해 하루 근무시간이 평균 10시간 이상에 달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근무환경은 결국 간호사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는 5.4년, 전체 이직률은 12.4%다. 특히 신규간호사의 1년 이내 이직률은 33.9%인데, 이를 통해 숙련된 간호인력과 신규 간호인력 모두 부족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높은 이직률로 인해 간호사들이 더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병원간호사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일반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1명이 19.5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이는 △일본 7명 △미국 5.4명 △캐나다 4명 이하로 담당 환자 수가 법제화된 국가에 비해 현저히 많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전직 간호사인 이민화(38. 여) 씨(이하 이 씨)는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감과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간호사는 이미 정신이 무너진 상태다”며 “이에 작게는 동료 간호사를 배려하지 못하고 크게는 태우는 상황에까지 이른다”고 말했다. 간호인력 부족과 높은 업무 강도, 둘 중 어느 것이 원인과 결과인지 가늠하기 힘든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 해결에서 비껴간 정책들
  최근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는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1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직장 내 괴롭힘으로 위협받는 간호사의 생명을 구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자는 “해당 개정안에는 사용주의 조치의무와 이를 위반할 시의 처벌 조항이 있을 뿐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며 “외국의 입법사례를 검토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상세히 명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해당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를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해 직장 내 괴롭힘에 ‘정서적 고통’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이 씨는 “예전에는 차트로 때리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태움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분위기와 같이 심리적 폭력의 형태로 태움이 발생한다”며 “정서적 고통이 괴롭힘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태움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3월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통해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현장에서 인권을 침해한 가해자의 면허를 정지시키는 등의 처분 규정 추진 △신규간호사 교육을 전담하는 간호사 배치 △간호대 입학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 간호인력 확충 등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직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태움 가해자의 면허를 정지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로 간호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받는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채 사람만 확충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규간호사를 확충하는 것도 좋지만 경력 간호사를 먼저 잡아야 한다”며 “간호사 이직률이 높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한 다음, 경력자인 *유휴간호사를 다시 일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0일, 간호사연대와 전국간호대학생연합 등이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1월 20일, 간호사연대와 전국간호대학생연합 등이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news1>


  따뜻한 봄을 맞이할 그 날까지
  간호사는 의사를 도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돌본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인력의 부족은 간호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만성 질환이 증가하는 등 질병구조가 변화하고 있어 특히 간호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그들의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한다.

  이에 대해 이 씨는 “간호사 1인당 맡는 환자의 수가 줄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사안을 병원에 자율적으로 맡기지 말고 정책으로 시행해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사에게는 정당한 보상과 근무환경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때 중요한 것이 수가다”며 “하지만 현재 간호행위에 기반한 독립된 간호 수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의 고유 업무에 대한 수가가 제대로 보장돼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간호인력 법정기준 개선 △지역 간 간호인력 격차 해소 △간호사 이직 방지를 위한 관련 법·제도·환경의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끊임없는 관심과 병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러한 방안들을 실천하고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유휴간호사 : 간호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으나 현재 일하고 있지 않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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