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보다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할 때
머리보다 몸을 먼저 움직여야 할 때
  • 이상묵 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9.05.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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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한 소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알프스에서 길을 잃었다. 험한 눈보라에 지도를 잃고, 현재 위치도 파악할 수 없었던 이들은 오직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유서를 쓰려던 한 병사가 배낭 바닥에서 지도를 발견하고, 이들은 벅찬 희망에 하산을 결심한다. 지도가 있더라도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지만, 고난 끝에 산에서 내려와 본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적적인 귀환에 감격한 부대장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지도를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소대원들이 의지했던 지도는 사실 히말라야의 지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히말라야의 지도로 알프스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저명한 조직이론가인 칼 와익 교수는 이것을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이라 설명한다. 눈보라 치는 알프스에서 심사숙고한다고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올바른 계획에 필요한 정보를 입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획보다 먼저 행동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뿐이다. 행동 이전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얻은 정보로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올바른 계획이 사후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물론 계획이 없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라는 것은 아니다. 병사가 갖고 있던 지도는 비록 히말라야의 지도였지만 출발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이 됐고, 시행착오를 통해 현재 위치를 수정해간 점이 무모한 시도와는 다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중대한 변화들은 이러한 사후적 합리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졸업 후의 진로가 어떤 것인지 학생 때 제대로 파악하기 매우 어려우며, 급변하는 환경에서 조직의 미래를 담보하는 사업방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계획이 없으면 실행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눈보라 치는 알프스에서 구조될 요행만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런 요행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칼 와익 교수는 그럴 때 다소 위험하더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대안을 먼저 실행해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실행을 통해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 정보로 실행 방법을 개선하길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극도로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불확실한 계획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철저한 준비로 가능한 문제들에 대비를 해 두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원칙이라는 상식은 물론 옳다. 문제는 이런 준비가 불가능한 상황이 우리의 삶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심사숙고를 통해서도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변하지 않고 있음을 인식했다면, 이제 머리가 아니라 몸을 먼저 움직일 때가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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