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그랬다?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
사랑해서 그랬다?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
  • 정지원 기자
  • 승인 2019.05.09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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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마련돼야 해

  지난해 3월 22일, 부산에 거주하는 여성 A 씨는 그의 SNS에 그가 3개월간 교제한 남자친구 B 씨로부터 데이트폭력을 당한 장면이 담긴 CCTV 영상과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A 씨는 B 씨에게 폭행당한 뒤 정신을 잃고 옷이 벗겨진 채 강제로 엘리베이터와 계단 등에 끌려다녔다. 평소에 폭력을 일삼던 B 씨가 두려웠던 A 씨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이에 B 씨가 A 씨를 찾아가 그에게 감금 및 무차별적 폭행을 가한 것이다. 당시 ‘부산 데이트폭력’으로 불리는 해당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사면서 데이트폭력은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3월 22일, '부산 데이트폭력' 사건의 피해자 A 씨가 자신이 남자친구 B 씨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출처/A 씨 페이스북>

  일상에서부터 뻗쳐오는
  데이트폭력의 마수

  데이트폭력은 과거부터 꾸준히 그 문제가 제기됐지만, 최근 여러 사건으로 인해 심각성이 더해지면서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지난해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 형사입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데이트폭력으로 경찰에 형사입건된 건수는 △2014년 6,675건 △2015년 7,692건 △2016년 8,367건 △2017년 10,303건 △2018년 8월까지 6,862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때 조사된 혐의는 △폭행·상해 △체포·감금·협박 △살인(기수/미수) △성폭력 △경범 등 기타(스토킹/주거침입/명예훼손/지속적 괴롭힘 등)로 대체로 중범죄에 속한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은 교제 중인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성적, 언어적 폭력뿐만 아니라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등 정서적, 경제적 폭력까지 폭넓게 발생한다.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의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자료(이하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 1,017명 중 61.6%가 최근 데이트관계에서 폭력을 당했다고 밝혔으며, 그중 62.6%가 통제를 경험했고 △48.8%는 성적 폭력 △45.9%는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18.5%는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 이때 통제는 △누구와 함께 있는
지 확인 △옷차림 제한 △연락이 닿을 때까지 계속 전화 시도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하기 △일정 통제·간섭 △휴대폰 점검 등을 포함한다. 이에 대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홍영오 범죄예방·처우연구실장은 스냅타임에서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데이트폭력의 시발점이 된다”고 전했다.

 

<출처/머니투데이>

  악마가 된 연인
  방관하는 국가

  그렇다면 데이트폭력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하 표 의원)은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가해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은 집착과 소유욕이 강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하거나 자신을 거부·무시하면 이를 자신의 인격에 대한 거절과 무시로 받아들여 극단적 폭력을 휘두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표 의원은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데, 미국과 유럽에서는 데이트폭력의 예방 정책을 마련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왔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해 여전히 끔찍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으로 데이트폭력의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이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서울시 여성의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58.78%가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을 데이트폭력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정의당 권수정 의원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안심사 회의에서 “최근 일가족 살인과 무자비한 폭행 등 데이트폭력의 심각한 피해사례가 대두되면서 데이트폭력이 공론화됐지만, 폭력보다는 데이트에 초점이 맞춰져 데이트폭력 범죄의 위험성과 극심한 피해 정도에 대한 인식은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위한 정책도 부재한 실정이다”며 “가해자 조사 역시 사례별로 접근됨에 따라 범죄의 심각성이 축소될 소지가 높은 만큼 구체적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당할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데이트폭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다른 폭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트폭력이 일어난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데이트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개인의 적극적 대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을 당한 여성 응답자 대다수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데이트폭력을 당한 후에도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등을 이유로 관계를 유지했다.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 특성상 데이트폭력을 당한 뒤에도 단호히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폭력을 가한 뒤 피해자에게 사과하면 피해자는 ‘나도 잘못한 것이 있나?’, ‘나 때문에 그런 건데 내가 신고해서 상대방에게 벌을 줘도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어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말하는 상대방에 마음이 약해져 어떤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갈 수 있다.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
수(이하 이 교수)는 KBS TV 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좋아한다고 믿고 평등한 관계라고 믿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가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며 피해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구나’라고 상황을 정당화한다”고 전했다. 또한 이 교수는 “피
해자는 *이타적 망상을 통해 자신이 가해자의 폭력적 행위를 받아주는 것을 그 사람의 상처를 안아주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가해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확인한다”며 “이것 또한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표 의원은 추적 60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폭력은 있을 수 없다”며 “폭력을 저지르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닌 범죄고,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전했다.

<캡처/추적 60분>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강경하게 대응해야 해

  데이트폭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다.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영국은 클레어법을,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을 시행하며 데이트폭력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2014년부터 시행된 영국의 클레어법은 데이트 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가정폭력 전과 또는 폭력 관련 전과를 조회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해 한국범죄학연구소 김복준 연구위원(이하 김 연구위원)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오태훈의 시사본부’에서 “클레어법이 개인정보 보호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이 법을 시행하는 것은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방증한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에서도 여성폭력방지법에 가정폭력과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함으로써 법을 강화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이로 인해 처벌을 가중·감경하지 않고 일반 형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며 “오히려 해당 사건은 연인 관계에서 사소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해외 사례에서 특별법을 따로 제정한 것은 관련 사건을 처벌하거나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례를 두는 것이다”며 “데이트폭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그에 맞는 법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표 의원은 추적 60분에서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일반 폭력보다 더 위험한 범죄로 바라본다”며 “해당 범죄가 상습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있어 이를 조치하지 않고 넘어갔다가는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고 전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트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적 대응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7월 2일부터 데이트폭력 ‘삼진아웃제’가 시행되고 있다. 삼진아웃제는 △같은 피해자에게 3번 이상 범행 시 원칙적으로 정식 기소 △피해자와 합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사건도 삼진아웃에 포함 △두 번째 저지른 범행이라도 처음보다 죄질이 나쁘면 구속·기소 고려 등을 골자로 한다.

  해당 제도는 사람들에게 ‘두 번까지는 가해자를 방관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판이 ‘삼진아웃’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오해며 초행범이라도 폭행 정황과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해 폭행죄로 기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해당 제도를 통해 앞으로는 데이트폭력 관련 전과가 없어도 입건 기록까지 삼진아웃에 포함돼 가해자에 대한 더 강력한 처벌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직 이와 관련해 양형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그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발의된 ‘데이트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 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포함해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되고 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결국 데이트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루빨리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제도를 마련해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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