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피운 새싹의 푸름을 바란다
고통이 피운 새싹의 푸름을 바란다
  • 박은순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20.04.0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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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햇볕이 무척 따스하다. 빛나는 봄 햇살은 산책하고픈 마음을 일으킨다. 누가 말했던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새로 싹을 틔워 고난의 삶을 시작하는 계절이라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두려운 고통이라고.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받아들인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투옥됐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그는 수용소의 잔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젊거나 건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목적과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봄이 왔는데, 해가 밝고 바람도 살랑이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삶의 풍경은 녹록지가 않다. 우리는 이 힘든 시간을 어찌 이겨나갈까 씨름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너도, 그들도, 모두 다 같이. 그러니 혼자만 힘들고 외롭다고 생각하며 더 고통스러워지지 말자. 텅 빈 교정을 보며 젊은 날의 스산한 초상을 일부러 그리지는 말자. 오히려 고통을 넘어서서 또다시 빛나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할 날을 주문해 보자.

  19세기 전반 조선 서화계를 호령했던 추사 김정희는 당대의 세도가이자 왕실의 인척인 안동 김씨 집안 출신이었다. 가문과 실력, 재능을 갖춘 김정희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 그가 중년기에 정치적인 수세에 몰려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귀양을 가는 처지였음에도 해남의 대흥사에 이르렀을 때 사찰의 여러 전각을 장식한 글씨에 대해 품평하는 여유를 부렸다. 김정희는 대웅전의 현판을 보면서 글씨가 너무 속되니 바로 떼어내라고 했다. 사찰은 현판을 내려 김정희의 글씨로 대체했다. 내린 현판은 18세기 서예의 대가인 이광사의 글씨였다.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대가들의 글씨를 직접 접하면서 서체를 익혔던 국제파인 김정희의 눈에 조선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굴곡진 삶을 산 이광사의 글씨가 촌스러워 보인 것이다.

  이후 10년간의 귀양살이를 끝낸 김정희는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대흥사에 들렸다. 그는 자신의 글씨를 떼고 이광사의 글씨를 올리라고 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김정희는 귀양살이 중 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했다. 높은 자부심을 다 내려놓아야만 했던 고통 속에서 김정희는 인생을, 예술을 다시 보았다. 격조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광사의 글씨 속에 고통으로 점철했던 일생이 녹아 있음을 인정한 것일까. 자신도 처음 겪는 고통 속에서 더 높은 인격과 넓은 도량을 이뤘기 때문일까. 사람이 변했고, 자 신이 변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봄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했고 시간은 가고 있다. 어떤 시련도 끝이 있는 법이니 우리 모두 숨을 크게 쉬고, 하늘을 보며 힘을 내자. 우리는 어떠한 고통도 이겨낸다고, 곧 행복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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