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해결책으로 떠오른 법관탄핵
사법개혁 해결책으로 떠오른 법관탄핵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0.11.1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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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변호사 “한 번의 실현이 큰 파장 일으킬 것”

  대한민국 사법부는 자정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법관이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거나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법개혁 해결책으로 주목받는 법관탄핵 역시 사법부의 폐단을 바로잡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유명무실한 상태다.

 

  “판사를 탄핵하라”
  깊어진 국민의 사법 불신

  지난 7월, 사법부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송환을 거부했다. 국민의 법 감정과 맞지 않는 판결에 담당 재판관 강영수 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 만에 33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작년 12월, 서울중앙지법 오덕식 부장판사(이하 오 판사)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오 판사가 불법 촬영 성관계 영상 유포와 폭행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불법 촬영 영상을 재생하는 등 ‘가해자 중심의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나 사법행정권 남용 등을 이유로 법관의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7일, 여성의당여성의당 당원들과 시위 참가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출처/newsis
지난 7월 7일, 여성의당여성의당 당원들과 시위 참가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동문 앞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출처/newsis>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하 이 의원)은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탄핵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 4일 SNS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 사법부의 법관 인사를 총괄했던 서울중앙지법 김연학 부장판사(이하 김 판사)를 법관탄핵 검토 대상 1순위로 지목하며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해당 게시글을 문제 삼으며 이 의원을 협박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고발 사실이 알려지자 SNS를 통해 홍보한 이 의원 후원계좌에 사흘간 430명의 후원자로부터 총 1,830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이 의원은 “법관탄핵의 필요성을 느낀 국민들이 국회에서 법관탄핵을 제대로 추진해달라는 취지로 후원한 것 같다”며 “사법농단 법관탄핵 공약의 실현을 위해 의원들을 설득하고 지도부와 상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법관탄핵 둘러싼 공방
  개혁이냐, 사법독립 침해냐

  법관탄핵 담론에서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은 빠지지 않는 쟁점이다. 사법 독립은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법관탄핵이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해 판결에 외부 권력이 관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일, 양승태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판사는 “이 의원이 판사 시절 좌천된 것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서가 아니라 업무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고 증언했다. 이 의원은 “사법개혁 차원에서 법관탄핵을 추진하겠다”며 “김 판사는 검토 대상 1순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SNS에 “법관탄핵이 자의적으로 오용될 수 있음을 이 의원이 몸소 보여줬다”며 “법관탄핵을 사적 복수의 수단으로 삼는 이 의원 등을 국회에서 치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삼권분립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이 법관을 탄핵하는 것만이 아니라 법관들도 국회의원을 탄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23일,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사법농단 사태 해결 촉구 2차 시국회의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국회의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 △특별법 제정 △국정조사 실시 △사법농단에 책임있는 법관탄핵소추를 요구했다. 출처/금속노동자
지난 8월 23일,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사법농단 사태 해결 촉구 2차 시국회의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국회의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 △특별법 제정 △국정조사 실시 △사법농단에 책임있는 법관탄핵소추를 요구했다.<출처/금속노동자>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법관탄핵을 진행할 수 있어 국민 여론을 이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혐의를 확정하기 전부터 위법 행위를 주장하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을 보장하는 법치주의에 반한다. 보수 언론은 이를 ‘여론 탄핵’이라며 크게 조명한 바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와 형사처벌은 분명히 다르다. 무죄추정원칙은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을 보호한다. 위법 공무원의 신속한 파면을 위한 탄핵심판에서는 해당 원칙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 탄핵소추 사유의 사실 여부는 탄핵심판에서 밝히면 된다. 고위공무원의 탄핵은 대법원 자체 조사보고서나 관련 피의자의 공소장 내용만으로도 소추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 때 사용한 근거들도 수사를 통해 확정된 사실이 아니었다.

 

  유명무실한 법관탄핵,
  실제 시행 한 건도 없어

  우리나라 헌법은 고위공무원이나 신분을 강력히 보장받는 법관 등에 대해 탄핵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일반 사법절차를 통한 처벌이 어렵기에 국회의 소추를 통해 파면할 수 있도록 한다.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1/3 이상이 발의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탄핵소추 의결 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9명이 심사하고 이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탄핵이 이뤄진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법관탄핵이 이뤄진 사례는 아직 없다. 1985년과 2009년, 법관탄핵소추안을 발의했으나 국회에서 부결 또는 자동 폐기됐다.

  헌법 제106조에 따라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고는 파면할 수 없고 헌법 제65조를 통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탄핵 사유를 한정하고 있다. 즉,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만 받지 않으면 재판관직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무상 중대한 과실이나 부당행위를 저질러도 해당 법관을 파면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18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법관탄핵 해외자료-미국과 일본 사례’에서 “미국은 15명의 연방법관이 탄핵소추 돼, 8명이 파면됐다”고 밝혔다. 탄핵소추 사유로는 △권한 남용 △자의적·고압적 재판 지휘 △재판 거부 △소송 당사자와 부적절한 사업상 관계 △위증 혐의 △뇌물요구 모의 혐의 △허위진술 △절차방해 △성폭력 △탈세 △정신 불안 △재판 중 주취 상태 등 우리나라보다 인정 범위가 넓다.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 각 10명으로 재판관소추위원회를 구성해 직권 또는 일반 국민, 최고재판소 청구로 탄핵심판을 개시할 수 있다. 국민의 공무원 파면권을 인정하는 일본은 탄핵소추 건수에서부터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 재판관 탄핵소추 청구 건수는 최고재판소가 8건, 변호사가 2,666건, 일반 국민은 89만 4,243건에 달한다. 재판관소추위는 이 가운데 1만 9,814건을 수리한 뒤 9명을 소추했고 총 7명이 탄핵됐다. 이들의 파면 사유는 △심각한 직무태만 △뇌물수수 △여성에 대한 스토킹 및 성적 내용을 담은 이메일 발송 △아동성매매 △전철 내 성추행 등이다. 우리나라의 탄핵 사유 범위가 비교적 좁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가 직무에 관한 위헌·위법 행위만을 탄핵 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미국과 일본 등은 더 폭넓게 인정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사례를 참고해 사법 독립원칙을 지키면서 사법 권력 남용을 제대로 견제하는 실효성 있는 법관탄핵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초의 법관탄핵,
  실현 가능성과 파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신 서기호 변호사(이하 서 변호사)는 “탄핵소추는 국회의 역할이라 여야 간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정치적 공방으로 흘러가기 쉬워 법관탄핵 활성화가 어려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탄핵심판 청구 사유가 충분한 경우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해야 하지만 피청구인인 법관의 행위가 이 ‘사유’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도 법관탄핵을 어렵게 한다. 서 변호사는 “탄핵심판을 맡는 헌법재판관들이 대부분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같은 판사의 탄핵을 결정하기 꺼린다는 구조적 어려움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법농단 혐의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 형사재판에서 연달아 무죄판결을 받으며 징계조차 불가능해졌다.

  서 변호사는 “법관탄핵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만큼 최초의 법관탄핵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며 “지금까지 견고했던 법관이라는 지위가 사실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파면될 수도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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