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우리 지역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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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1.03.02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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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비수도권 지역

  우리나라는 모든 영역의 자원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런 초집중화 현상에 ‘서울공화국’, ‘서울민국’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언론 역시 이 구조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7월, 부산에서 홍수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어떤 언론사도 성의 있는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서울에서 재해가 일어났을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지방을 위한
  한국은 없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등록센서스 방식 집계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수도권 인구는 2,58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0.0%를 차지했다. 전국 국토의 11%에 불과한 면적에 인구 절반이 사는 것이다.

통계청의 인구총주택조사 집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50%가 서울에 산다.출처/통계청
통계청의 인구총주택조사 집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50%가 서울에 산다.<출처/통계청>

  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1970년 전체 인구의 28.7% 수준이었으나 꾸준히 늘어나 50년 동안 21.3%p 증가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세종시와 혁신도시 입주가 활발해지며 2011~2013년에는 일시적으로 정체하기도 했으나 후속 정책의 부재로 2016년부터는 다시 상승했다. 수도권의 지속적인 인구수 증가에 반해 서울 인구는 1992년부터 줄고 있는데, 이때 감소한 인구는 경기와 인천으로 퍼졌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는 많은 데 비해 그 반대는 턱없이 적은 상황이다.

  인구 불균형은 경제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GRDP(지역내총생산) 1900조 70억 원 중 수도권의 GRDP는 984조 6300억 원으로, 전체 GRDP의 51.8%를 차지한다. 인구와 경제력이 수도권에 편중한 만큼 주요 인프라도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공공기관 △문화시설 △요양시설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있으며 특히 서울에 집중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형적인 지역 불균형을 보이는 한국을 ‘서울공화국’이나 ‘서울민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흐름이 지방에 배타적일 정도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사람은 서울에만 사나
  극과 극 재난방송

  지난 7월 부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시간당 강수량이 86mm로, 1920년 이후 10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만조 시간까지 겹쳐 이날 부산 전 지역에서 물난리가 났고 도로와 지하철역 침수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침수 발생 다음날인 24일 5시 기준, 피해 신고가 1,200건이 넘었으며 24건의 인명구조에 출동해 79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중 3명이 다치고 3명이 사망했다. 부산 경찰청도 피해 신고 705건을 받았다.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큰 재해였으나 방송사는 조용했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침수가 일어난 23일 밤, 속보 대신 정규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영하고 호우 관련 보도는 하단 스크롤 자막 방송으로 다뤘다.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의무 소홀이라는 비판이 일자 KBS는 재난방송 단계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KBS뿐 아니라 타 방송사에서도 부산 침수와 호우 피해를 보도하지 않았다.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부산 폭우 당시 KBS의 보도행태를 지적하며 제재를 요청하는 청원이 게시됐다.캡쳐/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부산 폭우 당시 KBS의 보도행태를 지적하며 제재를 요청하는 청원이 게시됐다.<캡처/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지역 차별성이 짙은 재난 대응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강원도에서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언론들은 몇 시간이 지나고 특보를 내보냈다. 산림청이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뒤였다. 심지어 내보낸 보도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등 함량 미달 재난방송이었다.

  같은 재난이라도 수도권 지역과 비수도권 지역일 때 언론의 태도는 보도의 수부터 선명한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9월 한 달간 태풍 ‘타파’와 ‘링링’이 각각 영·호남지역과 수도권을 강타했다. ‘타파’의 피해가 심각했던 22일, MBC는 정오와 오후 3시 두 번만 뉴스특보를 배치했다. ‘링링’ 당시 7일 새벽 5시부터 오후 8시 45분까지 거의 하루 종일 뉴스특보를 편성한 것과 대비된다. SBS도 ‘링링’ 뉴스특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차례 보도한 데 비해 22일에는 한 번도 ‘타파’ 뉴스특보를 내보내지 않았다. ‘타파’ 상륙 당시 영향을 받은 지역 주민들은 SNS에 ‘1시간에 한 번씩 재난문자가 오는데 정보를 얻을 방송사 뉴스가 없다’, ‘링링 땐 하루 종일 특보를 내보내더니 이번에 조용해서 기상청 정보를 확인했다’ 등의 의견을 게시했다.

  재난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현장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민들에게 대피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재난 발생 이후에는 재난 피해 수습과 관련한 후속보도를, 나아가 지자체의 대응, 피해를 키운 법과 제도를 심층 취재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언론이 지역의 재난을 외면할 시 지역민의 안위와 재산이 위협받을 뿐 아니라 다음 재해의 대비가 어려워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표준 단위
  ‘서울’을 소개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시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하는 사회적 힘이 있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객관적인 사실 자체라기보다 사실에 기반해 기자가 구성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기자가 사건을 취재하면서 주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사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리고 독자는 기자가 보도에서 강조한 주제를 전달받기도 한다.

  강원도 산불 발생 당시 많은 언론이 화재 피해 면적을 서울 여의도 면적으로 표시했다. 이때만이 아니라 서울과 관련 없는 지방의 사건이라도 면적을 표기할 때 여의도를 단위로 사용한다. 태풍의 경로를 보도하는 기사에 ‘다행히 서울은 빗겨가’ 같은 제목을 짓거나, 부동산 문제를 다룰 때 언제나 서울 부동산 상황이 표준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서울을 만물의 척도로 여기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수도권 중심주의의 증거다. 동시에 지방을 수도권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고착화하고 재생산한다.

 

  지역 언론의 황폐화,
  지역 주민의 알 권리는 어디로

  지역 언론은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언론보다 가까이 지역 현안을 다루고 체감 가능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지역 언론이 제공한 정보를 지역민들이 활발히 공유할 때 공동체적 가치와 내부 응집력이 형성되고 이는 지역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수도권 초집중화 현상으로 지난 수십 년간 지역 언론을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2019년 5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역 언론 차별·배제를 규탄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주축으로, △전국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지역언론학회 △지방분권전국회의 △지역방송협의회 등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 모였다. 네이버는 당시 모바일 서비스를 개편해 이용자가 44개 언론사 기사를 구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중 지역 언론사는 한 곳도 포함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네이버가 지역 주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시정과 개선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난 현재, 지역 언론은 △강원일보 △부산일보 △매일신문 세 곳뿐이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이하 강 교수)는 “중앙권력이 예산과 인사를 무기로 지방을 식민지로 종속시켜 온 탓에 지역 언론이 지역 주민이 아닌 중앙권력을 향해 말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지역 언론은 해당 지역의 소식을 다룰 때 소외와 낙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 언론마저 지역 주민이 아니라 중앙권력을 겨냥해 보도한다. 이는 균형발전을 위한 정치적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지역민의 무력감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강 교수는 지역 언론의 활성화를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민원해결 저널리즘’을 제시한다. 큰 비리를 고발하는 것보다 주민으로부터 지역 내 민원을 접수받아 관련 내용을 취재하는 것이다. ‘민원해결 저널리즘’은 실질적인 지역 발전과 지역 언론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강 교수는 “지역 문제를 인식하고 소통하려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다”며 “지역 주민들에게 조금의 재미와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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