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페미니즘이다
그것은 페미니즘이다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1.03.0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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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해를 끼치는 대상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행위는 금기였다. 우리 민속에서는 천연두를 ‘마마’ 또는 ‘손님네’라고 불렀고, 호랑이는 ‘산신령’이나 ‘영감’ 등으로 높여 칭했다.

  이렇듯, 두려운 대상의 이름을 멀리함으로써 화를 피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호환 마마만큼이나 페미니즘을 무서워하는 듯 보였다. 비록 민간 신앙이나 주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떻게든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는 점이 매우 비슷하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여러 가지가 있다. 편향된 정보로 쌓인 편견이 작용 했거나 단순히 페미니즘의 정치적 메시지가 싫거나, 또는 페미니즘에 대해 말을 꺼낸 뒤 여성우월주의자라고 비난받을까 몸을 사리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페미니즘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성평등도 반대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하는 단편 만화 한 편을 인상 깊게 읽었다. 주인공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 속에서 갈등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그 작품에 달린 댓글이었다. 단순히 작품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글은 놀랍지 않았으나 그보다 작품의 메시지에는 동의하면서도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반응이 많이 보이는 것은 신기했다. 개중에는 주인공의 고뇌가 여성주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찌나 필사적으로 애쓰는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언제나 표준은 남성이고 여성은 이 남성성의 변이인 제2의 성으로 여겨진다. 우리사회는 남성에게 예속되지 않는 여성과 남성이 말을 얹을 수 없는 여성 의제를 금기한다. 반면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는 폭력, 성적 물화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 남성의 성애적 대상이 아닌 여성의 삶 등 남성과의 관계 밖에서 존재하는 여성을 조명한다.

  간혹 눈앞에 페미니즘을 들이밀어도 ‘이건 페미니즘이 아니라 양성평등 아니야?’라며 기를 쓰고 다른 말로 바꾸려드는 사람이 있다. 이런 치환은 지나치게 단순하며 용어의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여성혐오 범죄는 묻지마 폭행으로, 탈코르셋은 자유주의로 탈바꿈했다. 4B운동(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은 3포세대의 일종으로 바라본다. 여성 고유의 부당한 경험이나 두려움은 지워지고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으로 바뀐다. 여성의 애환을 말하고 싶으면 공평하게 남성의 것도 알아줘야 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가부장제는 면죄부를 얻고, 약자인 여성이 강자인 남성의 ‘아픔’까지 보듬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페미니즘을 지우려는 시도는 분명 답답하고 속이 쓰리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금기화는 그 영향력이 점점 강력해 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호랑이처럼 사람을 물어가지도 않고 마마신처럼 전염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차별과 혐오를 찢고 더 많은 여성에게 자유를 전파할 뿐이다.

  존속을 위협받는 가부장제는 페미니즘을 금기시하려 애쓰겠지만, 속지 마라.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의 이름을 부를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에게 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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