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이후 전망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이후 전망
  • 박하순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 승인 2021.03.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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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는 얘기지만, 자본주의는 그 탄생 이후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해온 것이 아닌 변천에 변천을 거듭했다. 1996년 3월 18일, 한국경제가 IMF 위기를 겪기 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우선주를 포함해 5% 남짓이었는데, 25년이 지난 2021년 3월 18일에는 25%를 넘어섰다. 시가총액으로 본 삼성전자의 코스피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25년 만에 5배로 높아진 것이다. IMF 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 자본주의를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긴 하지만 독점자본의 지배력 강화는 각국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10% 미만이었지만 2018년에는 4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무려 55.6%에 이른다. 정부지출 비중이 10% 미만인 자본주의와 40~50%대의 자본주의를 같은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자본주의를 혼합경제나 수정자본주의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 등 예전 자본주의와 다르게 봐야 할 이유다.

  세계 ‘헤게몬’인 미국의 자본주의는 대체로 세 차례의 구조위기와 함께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 19세 기후반 장기불황(Long Depression) 이후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로 변했고, 1930년대 대불황(Great Depression) 후에는 케인즈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변했다. 1970~1980년대 초반의 위기는 케인즈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바꿨다. 앞서 언급한 대위기들은 장기에 걸친 이윤율 하락의 결과인데, 이런 자본주의의 단계적 변화 과정은 산업혁명 과 이에 수반하는 착취증대를 통해 장기에 걸쳐 약간의 이윤율 상승을 이뤄 내거나 더 이상의 이윤율 하락을 멈춰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모한 자본주의에서도 자본 축적은 지속됐고 그 결과 다시 장기에 걸친 이윤율 하락을 겪곤 했다.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 하락이다. 결국, 최근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라 규정한다.

  케인즈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말기인 1970년대 실업률 상승과 물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신자유주의는 이를 비판하며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는 그 색조와 내용이 조금씩 다른 판본들이 있지만, 대체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완전고용이라는 정책목표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즉 정부정책은 물가를 속등시키지 않을 정도의 실업률(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을 추구하는 데 그쳐야지, NAIRU보다 낮은 실업률 혹은 완전고용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물가를 속등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가상승을 초래하며 실업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재정 정책을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노동조합이라는 제도가 경쟁을 저해해 실업률을 높인다며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 초기, 관제사 파업을 진압한 것은 이런 신자유주의의 교리에 충실한 법집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성적표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성장률은 낮아졌고 부익부빈익빈은 심화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공황은 여전했고, 금융세계화로 인해 각국 경제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피해 회복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원유 등 일부 산업의 과잉생산 조짐에 더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인한 록 다운까지 발생하며 일어난 이번 경제위기까지 신자유주의의 위신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요 19개국 대표 경제단체와 국제기구 경제협의체를 대상으로 한 ‘A.D.(After Disease) 1년, 포스트 코로나 세계전망’ 조사 결과다. 출처/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요 19개국 대표 경제단체와 국제기구 경제협의체를 대상으로 한 ‘A.D.(After Disease) 1년, 포스트 코로나 세계전망’ 조사 결과다. <출처/연합뉴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 칭한 버니 샌더스의 두 번에 걸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돌풍,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경찰에 의한 타살 이후 벌어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의 장기에 걸친 대중시위, 기후위기 대응 운동조직 활성화 등을 거치면서 미국 일부 정치인들과 젊은이들은 대중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을 전개했다.

  한편 최근에는 미국에서는 재난구제와 경기부양을 목표로 1조 9천억 달러(우리나라 4차 재난기금의 약 100배 규모)에 이르는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구제계획안(구제·부양 패키지)’을 두고 논쟁이 일었다. 이번 미국구제계획안의 규모의 적절성과 관련해서 래리 서머스(오바마 정부 재무장관), 올리비에 블랑샤(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계획의 규모가 *산출 갭에 비해 너무 커서 물가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크루그먼(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옐렌(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현 재무장관)은 그렇지 않다며 물가가 2% 이상으로 올라가도 큰 문제없고, 정부가 이를 억제할 정책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1조 9천억 달러(한화 약 2천 140조억 원) 규모의 초대형 경기부양 법안에 서명했다.출처/MBC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1조 9천억 달러(한화 약 2천 140조억 원) 규모의 초대형 경기부양 법안에 서명했다.<출처/MBC뉴스>

 

  사실 민주당 내 경제학자 혹은 고위관료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2008년부터 이어져 왔다. 전자는 월가의 눈치를 보는 새 케인즈주의자(민주당판 신 자유주의자들)에 가깝고 후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본래의 케인즈주의에 더 가까운 입장을 가진 인사들이다. 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구제금융 및 경기부양 규모를 더 작게, 후자는 더 크게 하자는 입장이었다. 결과는 전자의 안이 관철됐었다.

  그런데 이번 바이든의 구제·부양 패키지는 2008년과는 달리 본래의 케인즈주의자들에 가까운 인사들이 주장한 안이 반영된 결과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 패키지는 규모가 엄청날 뿐만 아 니라 ‘부양아동가족부조’를 두고 ‘큰 정부(복지국가)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케인즈주의 시기인 1970년대 부양아동가족부조에 비해 그 액수가 적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복지국가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수당과 인프라 투자도 늘려서 수요 부족으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제·부양 패키지에 대해 공화당원들조차도 지지가 높다는 것도 빼놓지 않고 지적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 대상인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197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두 차례에 걸친 석유위기라는 외부충격과 다소 무절제한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함의는 수요 부족이 문제인 시기에 인플레이션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지 말고 정부지출을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판 신자유주의가 끝났다는 크루그먼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정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로의 복귀는 가능한가? 인플레 우려를 접어둔다 해도 남는 문제는 있다. 바로 ‘정부부채’다. 이자율이 매우 낮아 이자 지불부담이 그리 크지 않지만 현재와 같은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때문에 대자본과 자산계층에 대한 증세가 필요한데 이것이 가능할지 생각해보면, 대대적인 대중운동 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로 성공적으로 복귀해 자본축적이 활발해지고 완전고용을 달성해도 남는 문제는 또 있다. 활발한 자본축적은 그 자체가 이윤율의 추가적인 하락과 구조위기 심화의 계기인데 케인즈주의는 이 구조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1970~1980년대 초의 구조위기가 케인즈주의 시행 결과였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노동과 자본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도 미해결의 과제로 남는다. 결국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로의 복귀 가능성이 열린다 하더라도 케인즈주의 이후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출처 / freed.stlouisfed.org
<출처/ freed.stlouisfed.org>

 

*산출 갭: 실제 국내 총생산(a)과 잠재 국내 총생산(b)의 차이를 잠재 국내 총생산으로 나눈 비율. (a-b)/b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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