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방황하는 투명인간, 여성 노숙인
거리를 방황하는 투명인간, 여성 노숙인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1.06.08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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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에서 벗어난 성인지적 복지 정책 마련해야

  우리는 길에서 종종 노숙인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중 여성으로 보이는 노숙인은 극히 드물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숨거나 여성임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때문이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조차 설 곳을 잃은 사람들, 여성 노숙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 여기 있어요”
  통계의 사각지대

  현행 보건복지부령은 노숙인을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 거리에서 생활하거나 그에 따라 노숙인 쉼터에 입소한 만 18세 이상의 자’로 정의한다.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생활하는 ‘거리 노숙인’뿐만 아니라 보호시설을 이용하는 ‘보호시설 노숙인’, 쪽방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주거취약자’도 포함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10월 기준 전국 노숙인은 1만 1,340명이다. 이중 여성 노숙인은 2,929명으로 전국 노숙인 규모의 25.8%를 차지한다. 노숙인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시의 ‘2019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내 3,353명의 노숙인 중 집계 가능한 여성 노숙인은 678명이다. 노숙인 4~5명 중 한 명은 여성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 수치가 과소 집계일 가능성도 있다. 여성 노숙인의 경우 거리 노숙 비율이 극히 낮다. 대중목욕탕이나 만화방, PC방 등 적은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을 주요 노숙 장소로 선택한다. 이를 고려했을 때, 집계보다 실질적인 여성 노숙인의 규모가 클 수 있다.

 

  ‘여성’ 노숙인
  무엇이 다른가

  여성 노숙인과 남성 노숙인은 노숙 유입 계기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인다. 여성 거리 노숙인 43.3%, 시설에 입소한 여성 노숙인 63.3%가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문제로 노숙을 시작했다. 실직 및 사업 실패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주원인인 남성 노숙인과는 사뭇 다르다. 여성의 노숙 원인으로는 가족 해체와 실직뿐 아니라 가정폭력, 친족간 성폭력, 정신질환과 관련한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성 노숙인은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노숙인 중 알코올·약물 중독, 우울증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노숙인의 비율은 여성이 47.6%, 남성이 22.9%였다. 장애 진단을 받은 비율도 여성 집단에서는 55.4%, 남성 집단에서는 27.3%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 정신질환을 가진 노숙인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도 질병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질병 자체를 부정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거리 여성 노숙인의 63.3%가 가정폭력, 불화, 장애로 인한 갈등 등 가족관계 어려움으로 노숙을 시작한다. 남성과 달리 여성 노숙인의 노숙유입 계기는 복합적으로 해석해야 한다.<출처/서울시노숙인 지원정책의 성별만족도 조사결과>

 

  여성 노숙인의
  길거리 생존기

  2010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영향평가’에 따르면, 여성 노숙인의 26.7%가 주요 노숙 장소 선택 이유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조용하고 안전해서’라고 답했다. 같은 항목에 응답한 남성 노숙인은 12.8%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여성 노숙인이 남성 노숙인보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에 비해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안)’에 따르면 노숙 생활 중 구타 및 가혹행위, 성추행을 겪었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노숙인보다 여성 노숙인이 6.7%p 컸다. 2017년에는 여성 노숙인이 동료 남성 노숙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성 노숙인을 위협하는 주요 상대는 대부분 남성 노숙인이다.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에 비해 힘이 약하며, 여성 노숙인의 다수가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갖고 있어 저항이 더욱 힘들다. 피해를 겪어도 공권력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렵기에 지속적인 위험에 놓일 수 있다.

  여성 노숙인은 직접적인 폭력 외에도 여성으로서 각종 불편함을 겪고 위험에 놓인다. 월경권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숙식조차 해결하기 힘든 여성 노숙인들은 생리용품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생리대 가격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비싸기에 거리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휴지나 천으로 대신한다. 비위생적인 생리용품이 부인과 질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여성 노숙인에게 월경권은 생존과 직결한 문제다. 그러나 남성중심적인 우리나라의 복지제도에서 여성의 월경권 문제는 인권 사각지대에 속해 제대로 된 제도적 지원이 부재하다.

 

  복지도 남성중심주의,
  성인지적 복지정책은 언제쯤

  전국 노숙인 시설은 130여 개다. 성별에 따라 수면 공간을 분리하지만 그 외 생활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남녀생활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이상 여성 노숙인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남성에 의한 위협을 우려하는 여성 노숙인은 혼성시설 이용을 꺼린다. 특히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2년 광주에 위치한 혼성 노숙인 시설에서 남성 입소자가 여성 입소자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2018년 기준 여성 노숙인 전용 시설은 전국 12곳이다. 이마저도 △서울 9개 △인천 2개 △경기 1개로 수도권 지역에만 위치한다.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노숙인은 사실상 전용 시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시설 정원은 총 961명으로, 전체 여성 노숙인의 34.2%만 수용할 수 있다.

  자녀를 동반하거나 임신한 여성 노숙인은 입소 가능한 시설을 찾기조차 어렵다. 가정폭력이 노숙 유입에 큰 요인인 만큼 가정폭력을 피해 자녀와 함께 탈출했거나, 노숙 생활 중 임신 및 출산한 경우도 있다. 중학생 이상 남자아이나 생후 7개월 이내 자녀를 동반한 경우 시설입소 자체가 어렵다. 여성 노숙인과 그 자녀가 입소할 수 있는 ‘모자 시설’이 있긴 하지만 서울시 △강서구 △관악구 △은평구 등 3곳에만 몰려 있다.

  정신질환자 비율이 높다는 여성 노숙인의 특성 역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스스로 병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인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노숙인이 응급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국공립병원이 거의 유일한데, 이곳도 여성 병상이 부족한 실정이다.

<출처/경향신문>

 

  홀로서기를 꿈꾸는
  여성 노숙인

  미국에서는 주정부가 연방정부로부터 홈리스 지원 사업 예산을 받는다. 가정폭력으로 주거 유지가 불가피한 사람, 청소년·아동, 장애인, 퇴역군인 등 노숙인을 세분화해 각각의 지원정책을 수립한다.

  노숙인의 자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거와 일자리 마련이다. 특히 여성 노숙인의 경우 주거 문제를 가장 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성 노숙인의 경우 일자리가 생기면 주거는 비교적 쉽게 마련하는 데 비해, 여성 노숙인은 주거지가 안정적이어야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떠오른 해결책 중 하나가 지원주택이다.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여성 노숙인이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높은 복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녀를 동반한 여성 노숙인에게는 안정적인 양육 공간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지난 2015년, 열린여성센터와 서울시는 핀란드의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를 벤치마킹해 지원주택 정책을 시행했다. 하우징 퍼스트는 주거 우선 정책으로 노숙인에게 영구 주택을 제공해 노숙생활을 청산하도록 돕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주거 공간과 생활관리를 지원하고 입주 후 사례관리까지 병행해 온전한 자활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 노숙인에게 지원하는 일자리는 용접이나 건설현장 노동 등 남성중심적인 분야가 대부분이다. 노숙인 일자리 참여도를 보면 여성의 참여도는 60.9%로, 65.8%인 남성보다 낮다. 이중 남성의 43.2%가 고임금 건설일용직에 근무하는 반면 여성의 43.6%가 서울시 제공 일자리에 참여했다. 서울시 제공 일자리에 동일하게 참여해도 남성은 자활근로의 비율이 높은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공원 청소나 복지 업무 보조에 참여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2010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에서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의 성별 형평성 확보를 위해서는 성별 관련성을 고려한 ‘일자리 갖기 사업’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장애, 고령 등의 노숙인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발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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