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학술문예상 시부문 심사평
제31회 학술문예상 시부문 심사평
  • 윤지관 교수
  • 승인 2005.11.19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31회 학술문예상 시 부문 심사평>

-윤지관(영어영문) 교수

 올해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은 언어구사에서나 주제의식에서나 치열함이 부족하였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상투화된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언어의 고투를 동반하는 것이다. 일상의 굳은 벽을 깨고 나오거나 아니면 보일 듯 말 듯 금을 내거나 간에, 이 싸움이 없고서는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 응모된 작품들은 아주 습작단계에 있는 작품도 있고 어느 정도 세련된 시어를 구사하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청년학도다운 패기가 부족하였다. 깊지도 않은 감정을 곱게 치장하려고 하거나 감상에 빠져서 쉽게 감정을 내비치거나 눈에 스치는 일상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시가 목표하는 어떤 충격을 줄 수 없다. 시를 쓰고자 하는 학생들이여, 이게 무슨 시냐고 야단맞을지언정 한번 언어의 실험 속으로 돌진해보라. 모호한 수사의 안개 속으로 숨지 말고, 자기가 살면서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한 것을 똑 부러지는 구체적인 말이나 비유로 들이밀어 보라. 그럴 때 비록 거칠고 미숙하더라도 시에 근접하는 무엇이 나올 것이다.

 하여간 우수작을 찾지 못한 것이 심사자로서는 아쉬웠다. 그렇지만 투고된 11명의 시 총 44편의 시 가운데서 시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징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없지는 않았다. [아버지], [신발], [사진 속 그 여고생], [검은 달팽이], [쌀 씻는 날] 등이 그것이다. 특히 눈이 갔던 것은 일상의 사물에 대한 애정 어린 응시가 돋보이는 [신발]이었다. ‘깨진 발톱처럼’ 쉬고 싶어 한다는 신선한 비유로 신발의 존재성을 되살려 놓았고 이를 삶에 대한 이해에 결합시켰다. 그렇지만 신발에 화자의 슬픔을 별 이유 없이 너무 실어놓아서 역시 감상벽을 노출한 것이 흠이다. [검은 달팽이]도 눈여겨보았는데, 달팽이의 행태를 삶의 길과 유비하여 보여주려 하면서, ‘꽃잎이 가라앉는 시간’, ‘빗방울이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는 시간’ 같은 멋진 언어구사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모호하고 추상적인 대목들이 많아서 아직은 다듬을 구석이 많았다. 결국 투고작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시적’이라고 여겨지는 [신발]을 가작으로 추천하여 격려키로 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