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공정할까
시험은 공정할까
  • 김유진 국어국문학전공 교수
  • 승인 2021.09.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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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야담집  <청구야담(靑邱野談)>에는 ‘시골 선비를 속여서 박영성이 과거에 오르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여기서 ‘박영성’은 암행어사 이야기로 유명한 박문수다. 이 글은 조선 후기 과거 시험의 타락상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18세기 초 과거 시험의 현실을 폭로한 글이라 할 수도 있겠다. 주인공은 과거 시험 답안지를 대작시킬 ‘거벽’이나 대서시킬 ‘서수’를 고용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장에 모입한 자를 협박하고 갖은 술수를 부려 과거에 급제한다. 여기서 박문수가 실존했던 인물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거 시험장의 실제 모습이다.

  조선의 과거 시험이 한 번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과거 시험은 문과를 기준으로 유교 경전에 대한 ‘강경’과 ‘의의’, 문학적 자질을 확인하는 ‘논’, ‘표’, ‘부’, 마지막으로 국가 운영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하는 ‘책문’의 순서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실시했다. 현 시각으로는 쓸데없어 보이겠지만, 당시에는 실무적 능력을 측정하는 효율적인 형식의 제도였다. 유학이 국시였던 조선에서 유교 경전의 내용을 묻는 일은 국가 이념을 확인하는 절차였고, 문과에 합격한 선비가 곧장 투입될 자리는 학술과 문장 관련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문신의 관직이었다. 당장 일에 뛰어들 수 있는 엘리트를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었던 것이다.

  과거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완전히 폐지됐다. 나라가 근본적으로 바뀌면 기존의 제도는 쓸모없어진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도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의 눈으로 직접 검증해 표를 행사하는 선거 이전에 시험이라는 형식을 통해 능력과 자질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민의 감식 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불손하게 보인다. 시험만이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 오만하게 느껴진다. 더는 쓸모없어진 과거제와 비슷하게 시험을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퇴행이라 할 수 있다.

  시험이 효율적이고 공정하며 평등한 제도라고 여길 수는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 시험을 도입하는 것은 △제도적 비효율 △절차적 불공정 △결과적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조선의 과거 시험에는 양반 사대부만 응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민에게도 과거 응시의 기회가 주어졌으며, 갈수록 감소했지만 평민 출신의 합격자가 꾸준히 배출됐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포섭된 사람이 있으면 배제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사회의 울타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앞서 온갖 부정으로 과거 시험이 변질된 사례를 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절반만 양반으로 인정받았던 서얼은 문과에 응시조차 못했다. 과거 합격자는 서울에 집중됐으며 일부 지역 출신은 뽑지 말아야 한다는 차별도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과거에 응시하거나 급제한 여성은 없었다. 과연 시험은 공정한 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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