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처벌법, 그 사각지대를 파헤치다
스토킹 처벌법, 그 사각지대를 파헤치다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1.09.2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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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폭력이라는 인식 정착하고 피해자 보호 방안 마련해야

  올해 3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스토킹을 경범죄로 분류하던 이전과 달리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미흡한 법안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스토킹 범죄가 내포한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처벌 수위가 낮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22년간의 여정,
  세상 빛 본 스토킹 처벌법

 

  지난 3월 24일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스토킹 범죄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생활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접근해 지속적·반복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로 정의한다.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시작으로 이미 여러 번 스토킹 처벌법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입법 계획이 번번이 무산됐다.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스토킹을 경범죄의 일종인 ‘지속적 괴롭힘’에 포함했다. 제재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 등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부터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요청 또는 직권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유치장에 가해자를 구류하는 조치도 가능하다.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의결됐다. 이날 스토킹 처벌법은 △찬성 235인 △반대 0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 〈출처/연합뉴스〉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의결됐다. 이날 스토킹 처벌법은 △찬성 235인 △반대 0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출처/연합뉴스〉

  스토킹 처벌법이 최초 발의 이후 22년 만에 국회 문턱을 통과한 배경에는 스토킹이 살인, 성폭행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다. 전국적으로 크게 보도된 노원 김태현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태현도 피해자를 2개월간 스토킹하다가 피해자의 주거지까지 찾아가 피해자와 그의 모친, 동생까지 살해했다.

 

  불안감 증명해야 하는 피해자,
  빗나간 책임 소재

  스토킹 처벌법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 조항을 두고 있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도입한 조치이나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다. 특히 스토킹 범죄는 또 다른 반의사불벌죄인 폭행, 협박과 차이가 있다. 스토킹 범죄는 여성에게 불리한 젠더 구조상에서 나타난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성폭력안전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스토킹 가해자의 85.2%,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가해자의 97%가 남성이었다.

  스토킹 범죄는 아는 사이 간 발생할 확률이 높다. 실태조사에서도 스토킹 가해자의 82.1%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중에는 연인 등 친밀한 관계도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이나 관계 파탄을 우려해 신고를 망설일 위험이 있다. 이는 피해자가 다시 범죄에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에서 스토킹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선 피해자의 입증이 필요하다. 가해자의 행동이 자신의 의사에 반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느낀 공포감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개최한 ‘스토킹 처벌과 피해자 보호: 스토킹 처벌법을 중심으로’ 토론회에서는 이 점을 지적했다. 요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동의를 얻었는가’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여한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혜욱 교수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 유발에 있어 스토킹 행위와 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스토킹 행위 자체를 범죄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하는 온라인 스토킹
  한참 뒤처진 입법 수준

  디지털 기술과 통신매체의 발달, 온라인 플랫폼이 증가한 만큼 스토킹 범죄 범위를 현실 공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2021년 ‘온라인 스토킹의 실태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대 여성 응답자 903명 중 79.2%인 715명이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사생활 캐내기 △원치 않는 글·이미지 등 전송 △허락하지 않은 용도로 개인정보 사용 △개인정보 유포 △당사자 사칭 등 다양했다. 다른 범죄에 개인정보 이용(14.6%)이나 개인정보 유출해 제3자 범행 부추김(7.5%)과 같이 다른 범죄의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 사례도 조사됐다.

〈출처/한겨레〉
〈출처/한겨레〉

  그러나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명시하는 온라인 스토킹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 글과 음향, 이미지를 당사자와 가족에게 전송하는 행위에 그친다. 온라인에서 피해자의 사진을 수집해 제삼자에게 보내는 행위 등은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스토킹 처벌법에 따른 처벌이 불가능한 행위 중 SNS 등에 올라온 개인정보와 이미지 조작 등은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 가능하다. 그러나 처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스토킹 처벌법과 비교했을 때 수위가 현저히 낮다.

  미국은 네브라스카주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사이버 스토킹을 다루는 법령을 두고 있다. 영국도 1997년 특별법의 형태로 ‘괴롭힘 방지법’을 도입 및 개정하며 온라인상의 스토킹 범죄를 제재하고 있다.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하는 국가의 공통점은 온라인 스토킹 범죄를 개별 유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접근금지는 2개월?
  미흡한 피해자 보호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모범 스토킹 방지법’을 제정해 스토킹을 중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상대방과 그의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 정서적 고통을 주는 행위까지 포함하며, 정신적 고통을 줄 것이라고 합당하게 예상되는 경우에도 스토킹 범죄로 인정한다. 기본적으로 가해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나아가 피해자가 사망했을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해당 사항은 전자메일, 컴퓨터 또는 전자통신 서비스, 전기통신시스템을 이용한 스토킹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또한 2000년부터 법무부의 협력하에 범죄 피해자 국립센터 내 스토킹 대책센터를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스토킹 피해자가 경고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해당 경고명령을 위반하면 도도부현공안위원회가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갱신제를 함께 도입해 1년마다 갱신하고 위반 시 처벌이 가능하다.

  타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현 스토킹 범죄 처벌법은 아직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이 부재하다. 2개월에 그치는 접근금지 등의 응급조치와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는 유치장 구류 등의 조치가 정말 실효성 있는 방안일지는 의문이다. 예외적으로 접근금지는 연장할 수 있으나 이마저도 2번으로 한정해, 최대 6개월까지만 가능하다. 반복성 또는 지속성 요건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스토킹 범죄로 인정하지 않아 일회성 스토킹 처벌이 어렵다는 허점도 존재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처벌법 관련 법·제도 개선 토론회 개최에 앞서 스토킹 피해 경험 및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스토킹 처벌법의 피해자 보호조치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제재하기에 충분한지 묻는 문항에 응답자 8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스토킹 범죄 없는 사회,
  향후 개선 방향은?

  스토킹 처벌법 대표 발의자인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카메라 등 디지털 촬영을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법 안에서 규정하지 못한 점, 피해자 보호명령 및 신변안전조치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은 향후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며 “최소한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을 준용해 피해자 신변 보호 조치를 규정하는 것부터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보호법을 제정하는 것까지 후속 입법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한 여성 폭력 피해자 보호 체계 아래에서 이뤄졌다. 여성가족부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와 동일하게 스토킹 피해자에게 숙식 및 상담 제공, 의료지원과 법률지원을 연계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 보호체계지원은 별개의 범죄인 스토킹 피해자에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스토킹 범죄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관계에서, 심지어는 범죄 자체를 목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성폭력 등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범주 내에서 스토킹 범죄를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토킹 예방과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관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신변 보호 관련 조치로 일시보호, 주거이전비 등을 지원하고 스토킹 범죄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은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 방안 등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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