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MZ세대의 가능성에 대하여
북한 MZ세대의 가능성에 대하여
  • 최선경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사
  • 승인 2021.10.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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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MZ세대’가 있다면 북한에는 ‘새세대’가 있다. 그들은 어떤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온 집단일까. 그리고 북한 당국은 변화하는 새세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북한의 새세대는 과연 어떤 한 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까?

 

  북한의 MZ세대란?

  세대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특정 연령대의 집단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종종 회자되는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다. 80년대생인 필자가 필자의 수업을 듣는 90년대생들과 하나의 세대로 묶인다는 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세대’는 기성 세대와는 구분되는 특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 유용한 범주라고 볼 수 있다.

  북한도 한국의 MZ세대처럼 ‘새세대’라는 집단이 있다. 북한의 새세대는 최악의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아기 또는 유년기를 보낸 세대로, 국가의 공급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집단이다. 국가의 배급을 받지 못하고 시장을 친숙한 생활 공간으로 삼으며 자라왔다. 국내 미디어에서는 북한의 새세대를 북한 변화의 원동력으로 조명하기도 한다. 국가의 부재를 경험했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에 어쩌면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 MZ세대가 공유하는 경험

  그들은 발육 부족 등 영양부족의 흔적이 몸에 남아 있기도 하고, 경제난으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가족의 해체를 겪기도 했다. 학교에 적만 걸어두고 어깨너머로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장사하는 법을 배우면서 성장하기도 했다. 북한의 새세대들은 어쩌면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난을 거치며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 등장한 새세대는 ‘돈이 최고’인 세상을 살고 있다.

2019년,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밥줄인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모습이다.<출처/조선일보>

  새세대는 이전 세대들에 비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빠른 편이다. 2009년 이동 통신 서비스 이후 오름세를 나타내는 핸드폰 사용자 수의 중심이 청년층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최신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고 당국의 단속과 차단에도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당국은 최근 출시한 핸드폰 기종에서 SD 카드 사용을 막아놓는 등 통제를 강화했다. 그럼에도 대학생들은 ‘인증 회피 프로그램’을 개발해 암암리에 음악, 영화, 게임 등 불법적인 외부 콘텐츠를 즐긴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여러 대의 핸드폰을 보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시성 소비는 전통적 가치나 평등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의 물질과 부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청년절 행사가 열렸다.<출처/RFA 자유아시아방송>

 

  북한 당국의 대응

  김정은 정권은 2012년 공식 출범 이래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일환으로 ‘사회주의문명국’ 건설을 강조해 왔다. 사회주의문명국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김정은 시대 발전 담론이다. 전체인민이 △높은 문화지식 △건강한 체력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니고, 가장 문명한 조건 및 환경에서 사회주의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리며, 온 사회에 아름답고 건전한 생활기풍이 차고 넘치는 선진적인 국가를 의미한다. 해당 담론은 ‘이밥(쌀밥)에 고깃국’, 즉 먹는 문제 해결을 넘어서 △문화 △레저 스포츠 △과학기술 △관광 관련 시설 건설로 이어졌다.

  이와 같이 소비 문화를 장려하고 도시 경관의 혁신을 지향하는 것은 국가 배급을 경험하지 못한 새세대, 즉 시장 메커니즘에 기반한 청년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흡수해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동시에 국가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수렴해 새롭게 떠오른 문화 현상을 반영하면서 이를 비정치적 영역으로 길들이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 당국은 새세대의 복합적인 욕망을 반영한다. 이들의 세대 정체성에서 정치적 성격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변화에 발맞추는 것이다.

  한편, 올해 들어 북한 당국은 남한 말투나 옷차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동향은 북한식 사회주의 고수를 위해 최소한의 한계점을 찍어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소분홍’의 교훈

  MZ세대와 비슷한 연령인 중국의 ‘소분홍(小粉紅·Little Pink)’에서 참조점을 찾을 수 있다. 소분홍 세대는 부모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성장해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하며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 청년 세대는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배타적 애국주의를 표출하는 네티즌들로 성장했다. 이들은 중국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집단이나 중국에 반하는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인터넷상에서 신랄한 비난을 쏟아놓는다. 미중 갈등 이후 자국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 풍조를 전파시키는 등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변화를 뒷받침하는 주요 지지층이 되고 있다.

  북한의 새세대는 어떠한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은 연령층은 20~30대다. 이들은 새로운 문물에 민감해 스마트폰과 최신 기기를 받아들이고 외래 문화를 접해 스타일과 언어습관 등의 유행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이 반드시 외부 세계 동경이나 내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시장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개인주의적인 가치에 길들여진 세대지만 시장 활동에 있어 국가와 결탁하지 않고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북한 MZ세대의 (불)가능성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서 저항하지도 않는 북한의 MZ세대. 이들은 국가에 충성심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의존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당원이 되고 싶은 정치적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동시에 새로운 기기와 남한의 유행을 가장 먼저 소비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필자가 만났던 다양한 북한 출신 청년들에 따르면, “남한 영상물을 보는 것이 체제 저항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불법 장사나 영상물을 보는 것에 있어 “저항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불법을 그만두지 않은 것도 소극적 저항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북한의 MZ세대는 합법과 불법, 사회주의 체제와 시장 경제라는 이중 구조 내에서 안주하며 소위 ‘비사회주의’적인 균열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적 실천이 체제전복적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들이 생산하는 국가와 시장 사이의 일상이 북한 체제에 어느 정도 포섭돼 있는지 진단해야 할 것이다. 새세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전의 것들이 경합하고 타협하는 양상이 북한 사회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세대가 가지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새세대 안에 존재하는 △지역 △계층 △젠더 내부적 차이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MZ세대가 현실안주적 성격을 띤다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권력 기반과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새세대의 의식 및 행동 양식 변화를 당국의 정책에 수렴해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새세대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실천은 새로운 사회 규범을 형성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북한의 MZ세대는 시장화와 정보화가 교차하는 북한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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