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 하니?” 물음에 “놀 곳 없어” 답하는 노인들
“놀면 뭐 하니?” 물음에 “놀 곳 없어” 답하는 노인들
  • 주세린 기자
  • 승인 2022.03.02 0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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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주체적인 여가 공간을 마련해야

  서울시 종로구의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탑골공원을 찾는다. 노인들이 제대로 된 여가 공간이라 볼 수 없는 탑골공원에 계속해서 방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나

  서울시가 지난 2018년 3월 4~10일간 만 65세 이상 시민 교통 빅데이터 57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남성 노인들의 종로3가역 방문 건수가 5만 9,490건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하철 한 바퀴를 돌아 ‘지하철 여행’을 한 뒤 종로3가역 탑골공원에 방문한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하문식 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탑골공원을 찾는다. 아침 식사를 무료 제공하는 장점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식사를 마친 뒤 발걸음을 옮긴 곳은 지하철이다. 1호선에 탑승한 후 종점인 소요산역에 도착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탑골공원과 지하철로 향하는 이유는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사는 이영직 씨는 이동하는 데 세 시간 가까이 소요됨에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매일 아침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그는 수원시나 인천광역시 등 자신과 비슷하게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근처에는 갈 곳이 없어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돌다가 탑골공원에 방문해 다른 노인과 교류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탑골공원 북문에서 근무하는 한 봉사자는 일일 평균 300여 명의 노인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날씨가 따뜻하면 그보다 더 많은 노인이 찾아와 무료 배식을 받고 시간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탑골공원 북문은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식사를 배급한다. 첫차를 타고 이곳을 찾는 노인들이 많은 이유다.

  탑골공원을 오가는 노인들은 이 장소를 현재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로 여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온 유병성 씨는 식사를 마친 뒤 탑골공원 바깥 돌담길에서 다른 이들과 장기를 둔다. 식사 공간 외 노인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은 방역 지침을 이유로 개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장기를 두거나 같은 처지인 이들과 대화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그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어 경로당과 복지회관을 이용하지 않는다. 탑골공원은 청년 시절에 잘 알았던 공간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무료 식사 덕에 돈을 적게 쓸 수 있기에 좋다고 답했다.

  유병성 씨와 함께 장기를 두는 고봉하 씨는 인근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한다. 종일 그곳에서 TV 프로그램만 보고 있으면 무료하고 삶이 감옥살이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에게 왜 집 주변의 복지회관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사람이 많고 공간이 좁아 불편하다고 답했다. 게다가 인근 노인 복지 시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전부 폐쇄한 상태다. 그는 “내가 시간을 보내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며 “나와 비슷한 노인들을 구경할 수 있는 탑골공원이 유일한 여가 공간이다”고 말했다.

탑골공원 바깥 돌담길에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
탑골공원 바깥 돌담길에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

 

  노인 여가 활동,
  TV 프로그램 시청이 전부?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국민여가활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년층의 여가 시간은 평일 6.7시간, 휴일 8.6시간이다.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30~40대의 평균 여가 시간이 평일 3.2시간, 휴일 5.3시간인 점을 고려하면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반면 여가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노년층의 여가활동 유형화 및 영향요인 분석’에 따르면 노인 인구의 76%가 여가 생활에서 두드러지는 활동 패턴을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여가 활동을 향유하는 대신 TV 시청과 라디오 청취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 관람이나 창조적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1%에 그쳤다.

  윤영범 씨는 경로당과 지역 복지 시설의 운영 중단으로 탑골공원을 찾았다. 그는 경로당에서 주로 TV 프로그램을 보며 앉아 있거나 다른 노인과 바둑을 둔다고 전했다. 경로당에서 보내는 일과가 답답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매일 방문한다고 덧붙였다.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임진섭 교수(이하 임 교수)는 “경로당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시설이고 전국적으로 없는 곳이 드물다”며 “노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TV 시청, 화투 등 가벼운 여가를 즐기기 좋은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경로당이 가진 한계를 지적했다. 소극적이고 정적인 여가 활동 측면에서는 경로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나 △평생학습 △문예교실 △스포츠활동 등의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여가 활동은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탑골공원으로 온 박경일 씨는 경로당이나 복지회관에서 진행하는 스포츠활동과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해본 적 없다. 노인 여가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노인들이 모여서 할 게 뭐가 있냐”고 답했다. 임 교수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노인 복지 시설이 여가 활동에만 집중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추첨을 통해 일부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여가 기회를 주는 복지관이 많은데, 더 많은 노인이 주체적인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정적 인식 개선해
  노년기 문화 정착 도모해야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가 발표한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3.3세로 OECD 국가 평균 기대수명보다 2.3년 길다.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퇴직 후 노년기의 여가 시간 또한 늘어난다.

  임 교수는 “노인들이 증가하는 여가 시간을 의미 있고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노인 여가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부정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우리 사회의 노년층과 타 연령층 모두 노인 여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며 “단순히 수동적인 형태의 여가 활동보다 목공과 서예, 연주 등 노인의 수준 높은 여가 활동 증진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인 여가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중요성을 알려 새로운 노년기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적 여가 활동을 위한
  제도적 노력 필요

  임 교수는 “노인 여가 활동 활성화를 위해 여가 공간 내에서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관련 기관을 적절히 활용해 여가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지자체는 노인 여가 공간 증진 사업을 확장하며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중계 온마을센터’는 노인이 주체적으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내부에는 어르신당구클럽을 마련해 운동 참여형 여가 활동을 운영하며, 휴게 쉼터에서는 각종 문화공연과 강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충청남도 공주시 미나리 공원은 국내 최초 노인을 위한 놀이터다. 미나리 공원은 단순한 노인 운동 시설을 넘어 노인을 운동지도 인력으로 배치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세웠다. 전라북도는 노인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고 즐거운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 노인문화여가토탈서비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미술·공예·공작·음악 활동을 통해 노인의 창조적인 여가 활동을 지원하고 치매 예방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 노인문화여가토탈서비스는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지역사회서비스 우수 사례 발표대회’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전국 최초 어르신 놀이터 ‘미나리 공원’에서 노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전국 최초 어르신 놀이터 ‘미나리 공원’에서 노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기존 우리나라의 복지는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 상대적으로 여가에대한 제도가 부실하다. 임 교수는 “다양한 사회복지 기관이나 민간 기관에서 노인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복지 영역에서 여가가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삶의 질 향상과 밀접하게 연관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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