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탑시다, 함께 탑시다
지하철을 탑시다, 함께 탑시다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2.04.11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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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으로 들여다보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오이도역 참사 발생 2달 후인 2001년 3월에도, 바로 지난달인 2022년 3월에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있었다. 두 시위의 간격은 20년이 넘지만, 장애인 이동권 실정과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사는 23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에 동행해 대한민국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선로에 누운 사람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해 이용 중이던 장애인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리프트 설치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된다. 전국 65개 단체가 조직한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가 출범했다. 이들은 저상버스 도입,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과 관련된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고(故)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에 당시 투쟁 과정이 담겨 있다. 공권력은 책임에는 미온적이었으나 진압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찰을 동원해 난생처음 버스를 타기 위해 모인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시위 천막을 해체하고 시위자들을 끌고 갔다.

  정치권의 고의적인 책임 회피가 이어지자 투쟁은 더욱 극렬해졌다. 경찰이 진압하지 못하도록 사다리에 목을 끼운 채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 손잡이에 쇠사슬로 몸을 묶은 장애인들은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고 외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점거와 39일간의 단식투쟁, 마포대교 횡단 등을 거치고 나서야 성과가 나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했고,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됐다. 2002년 발산역에서 또 한 번의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한 이후였다.

2001년 오이도역 참사 이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
2001년 오이도역 참사 이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

 

  20년의 외침,
  23번째 출근

  지난 3월 2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23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을 전개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에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을 지나 혜화역까지 가는 것이다.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을 시작했으나 22번째 행동을 기점으로 잠정 중단했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 당시 전장연은 모든 후보에게 대선 후보자 TV 토론회(이하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을 발표해줄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언급했고 이에 전장연은 3차 대선 후보자 토론 전까지 잠시 시위 활동을 멈추고 다른 후보들의 입장을 지켜보기로 했다.

  전장연이 다시 지하철역으로 출근한 것은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하 윤 당선인) 때문이다. 전장연은 22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을 중단하며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3월 23일까지 면담을 통해 밝혀달라며 구체적인 날짜와 방법까지 제시했으나 윤 당선인의 인수위는 명쾌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인수위 원일희 수석부대변인은 “장애인차별철폐는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당연한 과제고 인수위에서 당연히 중점 과제로 다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에 전장연은 “그 어떤 정부도 21년 동안 장애인차별철폐와 장애인권리보장이 중점 과제가 아니라고 대놓고 부정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말만 중점 과제일 뿐 책임 있게 예산 반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수위의 언급은 이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원론적인 ‘립서비스’ 답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열차에 타기 앞서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선전이 진행됐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이하 박 대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하 장 의 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박희은 부위원장(이하 박 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 대표는 “이동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며 “교육받고 일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량한 시민들이
  주장하는 시위의 TPO

  경복궁역에서 충무로역으로 가는 동안 다른 시민들과의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시민들은 전장연에게 욕설을 뱉거나 심지어는 몸을 부딪쳐 위협하기도 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에서는 한 시민이 시위대를 향해 “시민들을 볼모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라며 시위대에 화를 낸다. 2022년 3월 24일 충무로역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도 비슷한 비난이 빗발쳤다. “선량한 시민들한테 피해 주고 뭐 하는 거야”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한꺼번에 타고 내리는 것에 분노를 표출했다. 전장연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출근 시간대를 피해’, ‘국회 또는 청와대로 가서’, ‘합법적으로’ 시위하라는 것이다.

  이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지하철에 타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20여 년 동안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장애인들은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국무총리 등 관련부처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묻고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각자 책임을 떠넘기기만 할 뿐 이들 중 어떤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이날 불만을 표하는 승객들을 향해 박 대표는 “저희 100번 욕하셔도 좋습니다”며 “그중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윤 당선인에게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23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 중인 전장연
23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 중인 전장연
혜화역에서 선전 중인 전장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포스터가 훼손돼 있다.
혜화역에서 선전 중인 전장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포스터가 훼손돼 있다.

 

  책임 대신 선택한 방법
  : 갈라치기와 화살 돌리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있을 땐 말하지 않던 것을 지난 대선 기간을 기점으로 윤 당선인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진영 문제로 왜곡했다. 투쟁의 본질은 지우고 새로운 집권 여당에 대한 과격한 반항으로 해석한 것이다. 해당 주장은 틀렸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년 안에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은 약속이었고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2015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2022년까지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임기 중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3%에 그친다. 어느 정권에서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약속은 지켜진 적 없었다.

   시민과 시민을 대립 구도로 만드는 이른바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것은 이 대표뿐만이 아니다. 시위대가 지하철에 승하차하는 내내 승강장에서는 전장연의 단체 탑승으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반복됐다. 안내방송에서는 장애인들이 다른 시민의 편의를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들의 요구를 묵살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경찰 또한 전장연의 시위는 불법 행위라며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시민들이 우리를 보고 혐오표현을 던질 때마다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 마음이 아프다”며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장, 윤 당선인이 있는데 시민들끼리 부딪히며 갈라지는 이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산물이지만 현재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고객, 어린이 등 다양한 교통약자가 함께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결국 교통복지 증진의 일환이다.

  박 부위원장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교통약자가 될 수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쟁취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 투쟁은 장애인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지만 모든 시민을 위한 싸움이다”며 “장애인이 권리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어떤 시민이라도 이 권리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진 정해인·주세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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