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은 생존권입니다”, 21년째 소외된 외침
“이동권은 생존권입니다”, 21년째 소외된 외침
  • 주세린 기자
  • 승인 2022.04.11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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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육·탈시설의 기본인 이동권 보장해야

  “당신, 나 과연 다를 게 무엇이오? 어디를 가든 똑같은 손님이고 어디를 가든 자유로운 인간이오. TV 속 드라마에 나오는 그곳을 한 번 가보는 게 우리들 꿈이라오. 이대로 우린 살 순 없소.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2005년 가수 ‘클론’이 발표한 <소외된 외침>의 가사다. “이동권은 생존권 이다”며 21년째 소외된 외침 속에 사는 이들이 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
  그 시작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한 부부가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 철끈이 부러져 추락했다. 이 사고로 아내가 사망하고 동행했던 남편은 중상을 입었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후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 연대)가 출범해 본격적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시작했다. 이동권 연대의 농성은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 제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교통약자법 제정 이후에도 지하철 리프트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2017년 신길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던 장애인이 계단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호출 버튼과 가파른 계단을 가까이 배치한 설계가 문제였다. 이후 장애인 단체는 서울교통공사에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제소했다. 이들은 “리프트를 이용하면 시간이 2배 이상 걸리고 공중에 서 멈추거나 휠체어가 뒤로 쏠리는 등 위험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이하 이 변호사)는 “법에 나온 내용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집행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며 “해당 상황을 차별로 판단해 소송했을 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원고의  요청을 기각했다”고 전했다.

  이동권 연대를 전신으로 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2005년 교통약자법을 제정했음에도 정부는 16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행동을 전개했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평 생교육법 제정 △특수교육법 개정 등 4대 입법을 요구했다. 이 변호사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도입하면 그동안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2002년 서울 시청역에서 활동가들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외치며 선로에 들어갔다. <출처/노들바람>
2002년 서울 시청역에서 활동가들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외치며 선로에 들어갔다.<출처/노들바람>

 

  역사 내 복잡한 동선
  실천 불가능한 계획만 밝혀

  전장연의 시위가 이어지자 지난 1일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전 역사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1역사 1동선을 확보하지 않은 서울 지하철 역사는 모두 21곳이다. 이에 전장연은 “엘리베이터 설치에 최소 21개월이 걸리는데 2024년까지 1역사 1동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원역의 경우 환승 구간에서 휠체어를 탄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역사 외부로 나가야 한다. 7호선 고속터미널역은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로 접근하지 못한다. 3호선과 9호선 방향으로 돌아가 진입하더라도 역사 내부 엘리베이터는 없다.​​​​​​​

  노들자립센터 유진우 활동가는 “명동역에는 역사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며 “명동역을 갈 때는 충무로역이나 회현역에서 내려 20분 넘게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권 실태 모르는
  허점투성이 교통약자법

  지난해 12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동지원센터 설치 자금을 일부 지원할 수있다”는 법안을 “설치·운영자금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전장연은 ‘지원할 수 있다’가 아닌 ‘지원해야 한다’는 명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집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국비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은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해 지역마다 편차가 존재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0 장애인 콜택시 전국 통합 체계마련을위한연구’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 사이트의 명칭이 다르고 신청 기준과 심사도 상이했다. 장애인 콜택시 이용자 중 51.8%가 ‘배차 시간이 길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으며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응답이 24.6%로 뒤를 이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수단 실태조사’에서는 저상버스에 대한 불편함을 보고한 바 있다. 거주지근처에저상버스가없거나, 탑승과정이 불안하고 힘들어 탑승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지나친다는 응답도 있었다. 백석대학교 최윤영 사회복지학부 교수(이하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50%를 넘지 않고 대도시가 아닌 곳은 20%로 떨어진다”며 “저상버스 보급을 확대하고  차로와 보도를 개선해 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두 번의 약속 파기,
  이동권에 무감한 서울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이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에는 전장연이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를 하지 않았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들어선 후로 시위가 과격해졌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주장과 달리 장애인 단체는 오세훈 서울시장 선출 이전에도 시위를 지속했다. 2018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당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신길역 추락 참사 후 68일간 ‘지하철 그린라이트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을 막아서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이 대표의 발언에 전장연 박경석 대표(이하 박 대표)는 “이 대표가 문제의 본질은 보지 않고 정파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46개 역사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2015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역시 2022년까지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표는 약속을 두 번이나 파기한 서울시를 “이는 한 시장의 문제가 아닌 서울시 전체의 무책임 문제다”며 “서울시의 약속 불이행은 장애인의 목숨을 앗아간 사기극이다”고 규탄했다.

지난 4일 시민 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촉구를 위해 국회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진행 했다. <출처/뉴스클레임>
지난 4일 시민 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촉구를 위해 국회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했다.<출처/뉴스클레임>

 

  소외된 외침에서
  배리어프리 국가로

  헌법에서는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 접근권과 이동권은 이를 기초로 한다. 박 대표는 “이동권은 다른 권리를 연결하는 기본권이다”며 “장애인이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평생을 격리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지극히 평범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삶, 이동할 때 떨어져 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은 “전국 기초단체 240여 곳 중 100군데는 특수학교가 없어 거주지에서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대중교통마저 원활하지 않다면 이동에 발 묶인 장애인의 교육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배재현 대의원은“이동을 해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다”며 “이동과 교육, 노동은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정치권의 대립과 무관심, 혐오 표현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며 “정책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을 장관하는 부처에서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제시해 장애인 단체와 당사자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모인 시민 단체들은 “전장연이 요구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은 노인과 임신부, 유아차 이용자와 같이 모든 교통약자를 위한 필수 시설이다”며 “교통약자를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제거하고 배리어프리 국가로 나아갈 시점이다”고 전했다.


*1역사 1동선: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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