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복지지원에서 권리보장까지
예술인 복지지원에서 권리보장까지
  • 고유미 기자
  • 승인 2022.09.1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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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 모색해야

  꿈을 좇는 예술인 중 많은 이가 생활고에 허덕인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와 2015년 배우 판영진 씨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사망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창작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하는 예술인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예술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매우 적은 상황에서 복지 혜택 역시 받을 수 없다. 항상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이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예술인에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예술인도 노동자다
 예술노동자의 어두운 현실

  지난 5월, 예술인들의 권리보장에 앞장서는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예술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회와 정부는 문화예술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적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예술인 2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계약 형태로 일하는 프리랜서 비율은 78%에 달하며, 서면계약서 체결률은 48.7%에 불과했다. 예술인은 일자리를 잃을 위험과 고용 불안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불규칙한 수입과 빈번한 실업으로 인해 예술인은 법적 근로자로 분류될 수 없다. 월급제 노동자가 중심인 노동관계법은 프리랜서가 다수인 예술인을 보호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예술인들은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외되며 비정기적 창작자라는 이유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고용보험 가입을 통한 실업 급여 제공이 가장 필요하지만 근로기준법상 활동증명이 어려운 예술인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예술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예술인들은 영감을 얻기는커녕 생활고에 시달린다.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른 예술활동 현황
‘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른 예술활동 현황<출처/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 특성 고려한
 법안 마련해야

  2010년 인디밴드 ‘달빛요정’ 이진원 씨와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사망은 예술인의 열악한 처우를 세상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한 창작 활동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설립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활동증명제도를 전담하는 기구로 진출했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인이 업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이며 이를 거쳐야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20년 12월 시행한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의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의 근간을 마련했다. 실직한 예술인이 24개월 중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고 재취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경우를 인정받으면 120~170일간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타 직종 노동자의 경우 스스로 직무를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으나 예술인은 일정 수준의 소득 감소로 계약을 중단하면 재취업 노력에 따라 자격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은 고용안 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던 예술인을 안정적인 삶에 다가가게 했다.

  일각에서는 아직 보완되지 않은 제도적 공백을 우려한다. 예술인에게 필수적인 예술활동증명과 예술인 고용보험이 예술인의 실상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공연예술문화학과 김윤경 겸임교수(이하 김 교수)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발전하고 있지만 예술인의 특수한 노동 형태 를 충분히 고려한 제도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계 내부의 목소리를 파악해 제도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문체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복지정책 주요 과제안’에 따르면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률은 25.1%로 타 직종 노동자 고용보험 가입률인 68%에 비해 2배 이상 적었다.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실질적인 예술 활동을 증명해야만 고용보험의 대상자로 선정되는 예술노동자에게 맞춤형 고용보험을 제공해야 한다.

 

 불공정한 계약 관습
 표준계약서로 확인해야

  문체부가 도입한 문화예술계 표준계약서는 △불공정 계약 예방 △직업으로서의 예술인 권익 보호 △복지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한다.

  2019년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에 진출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제작 과정 당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해 예술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는 문화예술계에 만연했던 계약서 미작성 문제와 부당 계약의 문제를 선도적으로 타파한 것이다. 이후 영화계는 표준근로계약서 안착을 통해 영화계 근로자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시간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2021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조사한 2020 영화 스태프 근로 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서로 계약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83.9%로 2018년 보다 9.1% 증가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관습으로 인해 예술계 전체 표준계약서 체결률은 여전히 낮으며 민간 업계의 표준계약서 사용현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국회는 표준계약서 정착을 위해 2020년 6월 이후 서면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필수 기재사항이 빠진 서면계약을 체결할 경우 신고하도록 법안을 개정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한 영화 기생충 촬영현장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한 영화 <기생충> 촬영현장<출처/영화 기생충 스틸컷>

 

  이 과정에서도 허점은 존재한다. 인맥을 통해 작업물을 의뢰받거나 교육 활동으로 둔갑한 노동 일감을 얻는다면 불공정한 계약서 작성 및 구두계약을 통한 부조리한 계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공연예술학과 이동연 교수(이 하 이 교수)는 “공연계의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출연 횟수에 맞춰 임금을 나눈다면 추후에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학연으로 고용된 후배나 제자들은 표준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계약서는 계약 당사자를 사후적으로 보호할 수 있고 위반 시 법적 근거가 될 수 있어 예술계의 표준계약서 정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예술 환경 조성해야

  2021년 9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권리보장법)’이 제정돼 오는 25일부터 시행된다. 권리보장법은 기존에 미비했던 예술인 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규정했다. 권리보장법은 예술 활동을 이루는 창작 인력과 예비예술인까지 포함한 예술인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이는 직업 예술인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박소현 교수는 “예술인의 숙원으로 제정된 권리보장법은 법 제정의 취지와 조항의 의미를 숙지해 충실히 이행했을 때 그 실효성이 발휘된다”며 “정책 당사자인 예술인의 참여와 소통으로 권리보장법의 취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권리보장법이 통과됐다
2021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권리보장법이 통과됐다.<출처/뉴시스>

 

  예술인의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 사회적으로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예술인을 위한 정책은 시혜적 차원의 예술인 구제 정책을 넘어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따른 ‘정산’이 아닌 창작 활동의 조건을 마련하는 ‘투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술인이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간접적인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며 “제도에 관심을 가지면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저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다양한 예술인과 예술단체들이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며 “예술생태계 전반의 활성화와 다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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