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 홍혜미(문헌정보 4)
  • 승인 2022.11.21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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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분의 1 파동>

  태초에 세상은 평화로웠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 적당한 온도, 서늘한 그늘.

  생명체라고는 오직 풀만을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 세상이었다.

  ‘내’가 북적거리는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가끔 상상해보고는 한다. ‘나’를 뭐라고 지칭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풀과는 다른 그런 존재. 내 기억의 시작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에게 풀이 뭔지, 햇살이 뭔지, 바람이 뭔지, 그늘이 뭔지를 가르쳐 준 존재였다. 그리고 ‘내’가 북적거리는 세상에 대해서도.

  “옛날에는 세상에 말이야, 우리가 많았대.”

  “아니, 다 똑같이 생긴 건 아니고. 조금씩은 다른데 우리처럼 비슷하게 생겼대.”

  “물론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해. 우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싸움도 많아진다고 했던가. 세상도 무너져간다고 그랬어.”

  “지금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 아니게 된대. 뜨겁고, 춥고, 어둡고, 날카로운 세상이 된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적게 남은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나’의 말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자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기 전에 또 다른 내가 있었고, 또 다른 내가 살기 전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는데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니. 내가 아는 건 고작 우리 둘의 삶뿐인데. 그리고 이제는 ‘나’ 혼자만의 삶뿐이고. 우리 중 ‘내’가 떠나갔을 때, 내 인생은 또 새롭게 시작이 되었다. 하루하루 달라진 건 없었지만, ‘내’가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을 잘 살아가라 말했으니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혼자가 된 삶은 나쁘지 않았다. 먹을 것을 나눠 먹지 않아도 되고, 잠도 내가 편할 때 그냥 자면 됐으니. 심심할 때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무작정 나아갈 수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면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해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 하늘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조금은 시린 바람을 맞으며 하늘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있는 세상은 말이야, 흙과 풀밖에 없지만. 파란밖에 없는 세상이 있대.”

  “나도, 가본 적은 없어. 본 적도 없고. 그냥 들어보기만 했어.”

  “그 파란의 세상에 가면 다른 ‘우리’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혼자 남겨지고 나니 이전에 듣고 넘겼던 이야기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파란은 무엇일까. 세상이 온통 파랗다는 건, 세상이 온통 하늘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다 세어보았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별밖에 없는 세상이라 말이지.... 나는 내일 그곳을 가봐야겠다.

  파란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파란의 세상에 가면, 다른 ‘우리’를 만날 수 있을까? 다른 ‘우리’를 만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떠나간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일까? 떠나간 ‘나’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매번 달라지는 하늘을 ‘나’도 봤는지. 다시 물을 수 있다면, 혹시 파란에 가기 위해 사라졌던 건지. 그런 것들을 알고 싶었다. 혼자인 삶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조곤조곤 들려오던 말소리가 바람소리보다도 더 좋았다는 것을 몰랐다. 이렇게 길을 걸을 때, 다리가 아프다며 바닥에 주저앉으면 그런 나를 안고 길을 가주었던 것도. 이런 마음을 어떻게 부를 수 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아무리 햇볕이 내리쫴도 서늘한 바람이 가슴 속에서 부는 것만 같다고 정의했다. 먼지를 폴폴 날리며 걷다보니 해가 저물어갔다. 아직 눈앞에 보이는 건 흙과 풀뿐인데,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컴컴해져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피곤한 몸을 풀 속에 숨기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늘이 가득한 세상에 있으면 좋겠다고.

  눈을 감았다 뜨니 초록이었다. 잠에 든 동안 풀숲을 뒹군 모양이었다. 축축해진 몸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파란을 볼 수 있을까?

  “세상에 생명체는 풀밖에 없어.”

  “햇살도 눈에 보이고, 별도 눈에 보이고, 바람도 느껴지지만, 살아있는 건 풀밖에는 없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매일매일 지켜봐. 풀은 매일 달라지거든. 어제는 바닥에 자잘하게 붙어있던 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기도 하고, 오늘까지만 해도 푸릇했던 것이 내일은 흙처럼 변하기도 해.”

  “그렇게 변하는 걸 살아있다고 한대.”

  “그래서 세상에 살아있는 건 풀밖에 없다는 거야. 생명을 느끼고 싶으면 풀과 언제나 함께 있으면 돼.”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 정말 특별한 존재 같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존재. 물론 나도 바람과 모래, 햇살 속에서도 잘 서 있지만, 푸릇하지 않기에 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풀과 함께 있으면 나도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파란을 향한 여정에도 풀이 함께하길 바랐다.

  ‘우와....’

  그런 내 눈앞에 파란보다도 초록이 먼저 펼쳐졌으니 믿을 수 있을까. 생경한 기쁨이 온몸을 감쌌다. 이곳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아야!’

  섣불리 다가서다가 미끄러졌다. 쿵하고 부딪힌 엉덩이가 아파서 문질거리자 물기가 묻어났다. 내가 넘어져 초록이 벗겨진 부분은 처음 보는 빛깔이었다. 흙이라기엔 흩어지지 않았고, 풀이라기엔 특유의 푸릇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파란인가? 파란이라기에는 하늘같지 않았다. 마치 커다랗고 판판한 돌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돌 위에 서 있는 걸까?

  “있잖아, 파란에 가면 움직이는 아주 거대한 돌이 있대. 파란에는 풀이 없는 대신에 돌이 살아있다는데, 정말 궁금하지 않아?”

  상기된 ‘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였다. 풀이 없는 대신에 돌이 살아있다면, 그냥 평소 보는 풍경과 같은데 역할만 바뀐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의 말이 다시 떠오른 건 이유가 있어서였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끝없이 펼쳐진 초록이 있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초록을 헤쳐보면 돌이 있었다. 또 한 걸음 나아가 초록을 헤치고, 또 한 걸음 나아가 초록을 헤치고, 헤치고, 헤치고.... 나는 이윽고 예전의 ‘나’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거대한 돌이라면 이곳이 곧 파란인가? 자리에 앉아 손바닥으로 돌을 짚어보았다. 움직이고 있다면, 느껴지지 않을까?

  한참을 가만히 눈을 감고 세상을 느껴보았다. 하늘에서 수영을 할 때처럼 눈을 감고, 돌으로, 초록으로 빠져들었다. 움직이고 있는 걸까? 나는 파란에 도착한 걸까?

  그날 밤은 움직이는 돌 위에서 보내기로 했다. 돌 위에 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멈추지 않고 불었기 때문에, 나는 이 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파란에 가본 적이 없다더니 정말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다. 파란에는 풀이 없다더니 이곳은 풀 천지였다. 평소에 보던 풀보다도 더 촉촉하고 미끄러운 풀. 아니면 이것이 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초록인 것이 풀만이라는 확신은 없으니. 내가 알고있는 것은 ‘내’가 알려준 것과 같았다. 그러니 ‘내’가 몰라서 가르쳐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 알려준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파란에 가보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제 파란에 도착한 내가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 셈이었다. 아니지, 만약에 정말 ‘내’가 사라졌던 것이 파란에 가기 위해서였더라면? 움직이는 돌 위에서 벗어나 파란을 발견했을 때, 그곳에 있을 우리에 ‘내’가 먼저 함께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나’보다 더 아는 것이 아닐 텐데.... 아쉽긴 하였지만, 움직이는 돌을 본 건 심지어 그 위에서 지내본 것은 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건 분명했다. 움직이는 돌 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초록이 있었으니, 내가 가려는 파란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정말 한번도 보지 못했던 우리가 있을까.

  움직이는 돌은 끝이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움직이는 돌뿐이었다. 이 돌은 모양이 아주 들쭉날쭉해서 내 키가 훌쩍 넘어 태양까지 가리는 것도 있었고, 신비하게 생긴
것도 있었다. 이곳저곳 금이 가 있거나 돌 사이로 무언가 길쭉한 것이 튀어나온 것도 있었다. 내 몸에 달린 팔다리와 같은 것인가 생각해봤지만, 움직이는 돌의 거대한 몸뚱어리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기에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움직이는 돌의 위는 내가 이때까지 봐온 세상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움직이는 돌 위를 걸으면 걸을수록 파란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다. 눈앞에 흙이 가득했다. 분명 움직이는 돌은 파란에 있다고 했는데. 둥글게 쌓인 갈색 모래가 나를 맞이했다. ‘내’가 말해준 것 중에 또 틀린 것이 있었다니! 움직이는 돌은 아무래도 파란을 벗어날 수도 있나 보다. 둥글게 쌓인 모래를 탓하며 괜히 퍽퍽 쳐봤지만 달라지는 건 모래 모양밖에는 없었다. 심술이 나서 그날은 그냥 모래에 기대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보면서 생각하니 움직이는 돌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파란 근처에 도착한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그래, 여기 앉아있어 봐야 주야장천 모래만 볼 것이다. 내일은 다시 걸음을 옮겨 꼭 파란에 도착하고 말 것이다.

  둥근 모래를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이 푹푹 모래 속으로 박히는 감각이 생경하면서도 다리를 저리게 했다. 파란을 찾으러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도 험하다면 ‘내’가 사라져버린 것도 이해가 됐다. 이 길을 뚫으려면 한참을 가야 했으니 먼길을 떠난 게 분명했다. 이제는 파란을 보러 가는 것인지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인지 불분명해졌다. ‘내’가 있을지도 모르는 파란을 향해 가는 건지, 파란에 있을 ‘나’를 찾으러 가는 건지. 가슴 속에 여전히 부는 시린 바람의 감정은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이 고개를 넘어 눈에 가득 차는 것이 파란이라면 나는 수많은 별을 뛰어넘어 ‘나’에게 다시 말할 수 있을까.

 

 

  <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제46회 학술문예상 소설 부문에서 수상하게 된 홍혜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얼떨떨하고 너무나도 기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을 써서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 오랜만이거든요. 그래서 먼저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덕성여대신문사 측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학기에 기후변화에 관련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멸망에 대해 가금씩 생각해보곤 하는데, 처음 생각이 들었던 건 당연히 부서진 건물들과 그 사이에 낀 이끼, 끝없이 작열하는 사막, 생명이 살 수 없는 추위였습니다. 보통 인류의 멸망을 지구의 멸망과 연결 짓곤 하죠. 하지만 인간이 척박하게 만들어가는 지구인데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단어는 ‘평화’였습니다. 인간의 불행이 지구에는 평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기존의 틀을 벗고 나니 마지막 단 하나의 인류에 대한 서술도 달라졌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모르는 게 많은 어린아이와 같은 주인공이 생겨났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명명하지 못하고, 그저 지구에 표류하는 존재가 말이죠. 그 존재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글입니다. 글 내내 찾아 헤매는 ‘파란’이란 무엇일까. ‘파란’에 도착하면 정말 희망과 ‘내’가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글 안에 머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무엇이든 ‘파란’이 될 수 있습니다. ‘파란’에 도착하면, 아니 도착할 수 있다면 희망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글을 읽고 읽어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어쩌면 그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파란’과 ‘움직이는 돌’, 끝없이 펼쳐진 ‘초록’. 자연을 담은 이야기에 ‘나’를 툭 얹어놔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글입니다. 저의 글을 재밌게 나름대로 즐겨주신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를 스스로 설명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해치는 것 같아 소감에서도 글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빼고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격동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은 아닙니다만, 덤덤하고 평화로운 글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필요했던 분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미온의 감정을 찾았으면 하네요.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남은 학기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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