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활용’될 수 없다, 빈곤 포르노의 실체
가난은 ‘활용’될 수 없다, 빈곤 포르노의 실체
  • 주세린 기자
  • 승인 2023.03.06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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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구호 단체에서는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키는 광고를 만든다. 이들의 현실에 개입한 유명인은 타인의 가난을 자신의 미담으로 승화하려 한다. 우리는 빈곤층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카메라 뒤에 숨겨진 인권유린과 아동학대의 현장을 간과하고 있다. 이제는 진정성 있는 자세로 수혜자를 바라보고 모금 광고를 수용해야 한다.

 

  마케팅 수단이 된
  빈곤 포르노

  빈곤 포르노는 모금을 유도하기 위해 수혜자의 가난을 강조한 영상과 사진 촬영물 등을 말한다. 구호 단체가 개발도상국 빈민을 지원하는 후원금을 모으려 이들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드러내 시청자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적 자선 캠페인이 성행하던 1980년대 영국의 한 방송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앙상한 몸에 파리떼가 붙어있는 장면을 연출해 수억 달러를 모금했다. 이후 다른 구호 단체들도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무기력한 모습과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신체 부위를 영상으로 노출하며 전형적인 빈곤 포르노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호 단체가 빈곤 포르노 방식으로 광고를 제작하는 원인은 모금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의 이광재 상임이사(이하 이 상임이사)는 “기부금으로 수혜자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의 경우 다양한 유·무료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경험을 통해 수혜자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인식한다”며 “방송사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에 수혜자의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 충분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사진작가의 작품 꿈의 음식
이탈리아 사진작가의 작품 <꿈의 음식><출처/월드프레스 포토 인스타그램>

  자극적 연출,
  진정한 공감 이끌까

  빈곤 포르노는 수혜자를 일종의 스펙터클로 취급해 그들의 삶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극적인 효과를 노린다. 인권유린과 아동학대는 이에 따른 문제점 중 하나다. 2018년 이탈리아의 한 사진작가는 세계적인 보도 사진 공모전 ‘월드프레스 포토’에 본인의 작품 <꿈의 음식>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사진 속 인도 어린이들은 음식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음식은 사진작가가 준비한 모형이며 어린이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상상해보라고 주문한 사실이 드러나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이외에도 피부질환이 있는 아이를 찍으며 붕대 풀기를 요구하거나 식수난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썩은 물을 마시게끔 지시하는 등 수많은 방송사와 구호단체에서는 자극적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촬영을 빙자한 아동학대를 자행했다.

  국내 NGO 단체들의 연합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와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 구호 단체는 이와 같은 상황에 자성하는 마음으로 2014년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은 △아동의 존엄성과 권리 존중 △사실에 기반을 둔 촬영 △미디어 관계자의 사명과 책무 준수 등을 권고하고 있다. 아동학대가 이뤄진 부적절한 사례와 능동적인 주체로서 아동을 묘사했던 광고를 바람직한 사례로 비교해 빈곤 포르노 광고를 지적했다. 방송통신심위위원회 관계자는 “시청자가 빈곤 포르노 광고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마련했으나 강제성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며 “온라인상에 게시한 빈곤 포르노 광고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빈곤 포르노가 유명인의 긍정적 이미지 창출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매년 최악의 자선 광고상을 선정하는 노르웨이의 비영리단체 SAIH는 2017년 영국 유명 연예인들의 구호 캠페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캠페인 영상 속 백인 연예인이 아프리카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장면이 제국주의적이며 후원 대상자를 타자화해 우월감을 확보한 연출 방식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일정에 동행했던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병 환아와 찍은 사진을 대통령실에서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빈곤 포르노 논란에 대통령실은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국민과의 소통이며 김건희 여사는 양국 관계에 필요한 행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국제개발협력 청년활동가 단체인 공적인사적모임 오의석 대표는 “어둡고 비극적인 환아의 모습을 연출한 대통령실이 아동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살피는 등 사전 조치를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캄포디아 프놈펜의 심장병 환아 가정을 방문한김건희 여사
지난해 10월, 캄포디아 프놈펜의 심장병 환아 가정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출처/대통령실>

 

  편견 고착화 아닌
  긍정적 메시지 전달해야

  쪽방촌 거주민의 삶을 단편적으로 다루는 언론에 지적한 이들도 있다. 거주민의 일상을 보고 동정심이 들도록 유발한 일종의 빈곤 포르노라는 것이다.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에서 진행했던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 역시 문제였다. 2015년 인천 동구청은 쪽방촌 ‘괭이부리마을’을 활용한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계획했으나 실질적으로 거주민을 도울 복지제도 개선에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한 빈곤층의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모습은 단순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우리’와 ‘그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들’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동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조장한다. 이는 빈곤이 우리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수혜자가 고통과 배고픔을 느끼는 연출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임이사는 “비영리단체 모금 광고를 본 시청자들의 기부 의도를 조사한 결과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고착하는 광고가 아닌 능동적인 모습의 수혜자를 연상하는 광고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어 “긍정적 프레이밍의 모금 광고는 기부하는 데 도움을 주고 브랜드에 대한 태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SBS 성영준 사회공헌부장은 “수혜자가 고통받는 면모만을 강조하던 기존 기부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빈곤 포르노는 지속될 수 없으며 시청자들의 기부 효과를 높일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수혜자를 강조한 모금 광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수혜자를 강조한 모금 광고<캡처/Plan UK>

 

  광고 문화의
  전략적인 변화 필요해

  2020년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가 발표한 『기빙코리아2020』에 따르면 국내 기부자 중 ‘사회적 책임감’을 기부 원인으로 꼽은 이들이 30.8%로 가장 많았고 ‘동정심’이 29.3%로 뒤를 이었다. 구호 단체는 사회적 책임감으로 수혜자에게 모금했던 이들에게 수혜자가 변화한 결과를 제시해 기부 효과를 증진해야 한다.

  이 상임이사는 “모금은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후원 단체의 사명을 수행하고 수혜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며 “돈이 목적이 되어 수혜자의 상황을 인위적으로 비추면 단기간 성과는 볼 수 있으나 수혜자들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빈곤 포르노 광고 방식으로 모금 활동을 하는 ‘펀드 레이징’이 아닌 ‘프렌드 라이징’으로 우리사회에 올바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서울시 청년의 다차원적 빈곤실태와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39세 이하 청년 중 86%가 △교육 △노동 △주거 등 분야에서 빈곤한 것으로 나타났다.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 광고는 대부분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해 빈곤의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는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는 오류를 낳는다.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 주택, 건강, 교육, 공공서비스 등 복합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복지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다차원 빈곤으로서의 접근은 빈곤계층이 아님에도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를 찾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상임이사는 “기존에 빈곤 포르노 방식을 강조하던 광고 문화의 전략적 수정이 필요하다”며 “기부자가 후원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것은 기부 문화 및 우리사회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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