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여성을 찾아서] 이옥봉, 비운의 여류시인
[역사 속 숨은 여성을 찾아서] 이옥봉, 비운의 여류시인
  • 박성은 기자
  • 승인 2006.05.2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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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연모의 정
꿈속의 넋(夢魂) -이옥봉-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近來安否問如何)
달 비친 사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月到紗窓妾恨多)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若使夢魂行有跡)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걸(門前石路半成沙)

이옥봉(李玉峰)은 16세기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한 조선 선조 때 시인으로,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 대표적인 여류시인이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름은 숙원이고 옥봉은 그녀의 호이다. 옥천 군수 이봉(李逢)의 서녀로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는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소실은 정실에 비해 문학이나 음악, 춤 등의 여기를 드러내도 축출의 이유가 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이었다. 소실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정실과는 다른 사회적 기대의 차이가 오히려 옥봉에게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옥봉은 첩살이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결혼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포기했던 그녀도 서울의 명사인 조원이란 선비를 만나 사랑에 빠져 스스로 그의 첩이되기를 청하였다. 조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면서 아녀자로서 더 이상 지아비의 얼굴에 먹칠하는 시 짓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하고 옥봉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이상 그리하겠노라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에게 손을 좀 써 달라는 것이었다.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시 한수를 써 보냈는데 이 재치에 탄복한 파주목사는 산지기를 풀어 주었으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조원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10년 가까이 시혼을 억눌러오다가 산지기를 위해 한수 지어준 일로 쫓겨나다니. 옥봉으로서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봉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후에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이옥봉 시집》을 보게 되었는데, 이옥봉은 바로 아버지의 첩으로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 시집은 수십 년 전 온 몸에 자신이 쓴 시를 노끈으로 감고 발견된 여인의 시체에서 나온 것으로 종이에는 빽빽이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고 한다.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 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셈이다.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이옥봉은 이 시대 여인들의 최대의 한이라 할 수 있는 남성에 대한 일방적인 기다림, 기다림에서 오는 외로움과 정조를 보여주었다. 요즘시대에 옥봉과 같은 한 남성에 대한 기다림과 정조를 우리는 찾아볼 수 있을까. 사랑에 꺾인 애달픈 시심, 옥봉이야말로 한국여인의 사랑과 소망을 읊은 로맨티스트요 사랑의 여류시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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