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정책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일·가정 양립정책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 김령은 기자
  • 승인 2023.05.2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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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접근성 높이고 성평등 인식 확산해야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2016년부터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1년 기준 OECD 38개 국 중 31위를 기록해 일·가정 양립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현행 정책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봤다.

 

있으나 마나 한
일·가정 양립정책

  일·가정 양립정책은 근로자가 직장생활과 임신·출산·육아를 포함한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현재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에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2005년, 우리나라는 여성 1인당 1.08명의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고 여성의 경제참가율은 50%를 넘어서 전체 가구 중 맞벌이 부부가 1/3을 차지했다. 이에 부모가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일·가정 양립정책은 고용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한 이후 여성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했다. 고용노동부는 2008년 제4차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기본계획을 수립해 여성고용률을 5년 이내 OECD 평균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5대 핵심 전략으로 △여성 역량 제고 및 일자리 확대 △여성 근로자 중심의 육아 지원제 마련 △가정과 조화되는 근로제도 정착 △남녀 차별 없는 일터 정착 △사회 합의에 기반한 고용 인프라 확충을 제시했다.

  이처럼 정책은 남녀 고용 평등을 실현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저출생을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마련했다. 현재 일·가정 양립정책은 △산전·후 휴가제도 △배우자 출산휴가 제도 △육아 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보육서비스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6년부터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2018년에는 1명 미만인 0.98명, 지난해는 0.78명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인구 유지에 적절한 합계출산율이 2.1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가 심각함을 증명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1년 기준 59.9%로 OECD 국가의 평균인 64.8%에 못 미친다. 그래프로 나타내면 20대에 정점을 찍은 뒤 30대에 하락하고, 40대에 다시 상승하는 전형적인 ‘M’자형 모습을 뚜렷하게 띈다. 결혼·출산이 여성의 경제활동에 있어 장애물인 것이다. 현행 정책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아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인경 연구위원(이하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저조한 것은 현행 일·가정 양립정책의 낮은 접근성과 관련이 있다”며 “정책에 존재하는 사각지대와 수직적인 회사 분위기로 인해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이 어려워 출산을 기피하고 경력단절이 생긴다”고 말했다.

G5 국가와 비교했을 때 뚜렷하게 나타나는 ‘Mʼ자형 곡선 <출처/연합뉴스>

 

성평등 의식 제로,
여성의 부담만 배로

  여성의 집안일 부담을 해소해 노동시장에 참여하도록 돕는다는 일·가정 양립정책의 목표가 무색하게 우리사회의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성 몫이다. 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평일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10분인 반면 남성은 48분에 불과하다.

  일·가정 양립정책의 대표 제도인 산전·후 휴가와 육아 휴직의 수혜자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2008년 이후 도입한 배우자 출산 간호 제도로 남성도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자녀가 6세가 될 때까지 부부의 교대 육아 휴직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해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률은 4.1%에 그쳤다. 육아 휴직으로 일·가정 양립정책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높여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줄여야 한다. 휴직제도의 휴직 일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현행 일·가정 양립정책은 여성과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을 조장하지 않고 여성이 쉽게 가사노동과 양육을 하기 위한 정책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의 낮은 육아 휴직 사용률
우리나라 남성의 낮은 육아 휴직 사용률 <출처/서울경제>

 

  일·가정 양립정책의 문제점은 성평등 의식 부재다.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다영 교수(이하 송 교수)는 “우리나라의 일·가정 양립정책은 성평등 의식을 반영하지 못해 정책의 실효성이 낮다”며 “현행 일·가정 양립정책은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과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의 삶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가사노동을
쉽고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는 여성이 일과 가정생활을 모두 잘해야 한다는 이중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도 존재해

  산전·후 휴가와 육아 휴직 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만 대상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자료에 따르면 여성 임금 노동자 10명 중 5명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45세 비정규직 여성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6.3%이며, 특히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5.6%에 불과하다. 즉, 여성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으나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낮아 산전·후 휴가와 육아 휴직 급여를 못받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종서 연구위원(이하 박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속한 여성들은 일·가정 양립정책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 <출처/오마이뉴스>

 

  고용보험에 가입했음에도 사업주가 출산 전·후 휴가를 제공하지 않아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6년 6월부터 스마트 근로감독 제도를 실시해 임신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 한해 △출산휴가 미부여 △출산휴가자 수 대비 육아 휴직 사용률 부진 △임신·출산·육아에 따른 부당 해고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2016년에는 535개 사업장 중 66개의 위반 사업장을 적발했다. 김 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의 스마트 근로감독제도를 통해 적발한 사업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근로감독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활동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려면

  일·가정 양립정책은 선별적인 휴가 정책과 보육 정책으로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단순히 보육료를 지원하고 휴가 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성립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원인을 해결하려면 △평등한 가사노동 환경 구축 △직장 문화 변화 등이 함께해야 한다. 송 교수는 “일차원적인 제도 개편에서 벗어나 사회·문화 현상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정책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에 대한 적용도 필요하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고용보험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임을 강조해 자발적 가입을 높이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문화에 따라 육아 휴직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도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기업에 의존했던 기존 시행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고 올바른 기업 문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 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정책을 원활하게 시행한다면 경력단절 없이 가정생활과 여가생활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지속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의 자유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일·가정 양립정책을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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