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일과 사랑, 다 잘할 수 없을까?
[문화광장] 일과 사랑, 다 잘할 수 없을까?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6.05.2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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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 여자들만 애태우는 고민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현모양처가 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일과 사랑 모두 중요시하는 그녀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리고 그녀는 고민 끝에 결국 기찻길에 몸을 던지고 만다.

위의 영국영화 <분홍신>을 화두로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를 감독한 헐리우드 배우 로잔나 아퀘트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일과 사랑, 다 잘할 수 없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점점 일거리가 떨어지고, 연기에 대한 애정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점에 말이다. 이때 로잔나는 그 해답을 전성기에 헐리우드에서 은퇴한 데브라 윙거에게서 찾으려 한다. 로잔나는, 데브라는 대체 왜 은퇴했으며 헐리우드 중년 여배우들이 일과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내 기사를 본 사람들은 나더러 안됐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남자 때문도 일 때문도 아니다. 순전히 발견 때문이다.”(맥 라이언)
“마흔이 되고 나니까 몸이 편해졌다. 배우로서의 재능도 더 풍성해졌고 그 재능을 쓰고 싶다.”(홀리 헌터)

패트리시아 아퀘트, 캐서린 오하라, 기네스 팰트로, 제인 폰다, 샤론 스톤 등 37명의 헐리우드 여배우들은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여배우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함과 고민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로잔나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과 함께 연대해서 펼쳐진다. 그녀들이 젊고 성적 매력을 지녔을 때는 여신으로 추앙받고 영화에서 비중도 컸지만, 나이가 드니 누구의 어머니나 심지어 할머니 역할만 맡게 된다. 또한 영화계의 관습에 따르지 않으면 쉽게 도태되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 관습과 타협하지 않았던 데브라는 결국 은퇴했다. 맥 라이언은 육아를 위해 1년에 영화 한편만 찍기로 했다. 우피 골드버그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일을 선택했지만, 지금까지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녀들의 직업이 헐리우드 배우라는 것만 제외하면,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젊을 때 취직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출산과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관두고, 나이가 들어 취직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일을 선택한 여성 역시 자식에 대한 미안함에 어머니로서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실제로 2004년 자녀가 있는 여성 중 결혼 후 취업 중단 경험이 있는 사람은 38.4%였다. 취업 중단 이유로는 자녀양육이 64.9%, 출산에 따른 직장에서의 불이익이 12.6%, 가사일 전념이 8.4%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녀가 있는 여성의 미취업 사유 가운데 23%가 ‘일을 하고 싶으나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처럼 가정 내에 가부장적인 행태가 남아있는 한, 가정 대신 일 혹은 일 대신 가정 하나에서 성공한 여성이어도 그 위치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현실 속의 모순이며 양성의 역할을 규정함으로써 생기는 여성에 대한 불합리성이다. 즉, 성의식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로잔나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은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현실의 괴리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나이든 여성은 일할 수 없다는 편견이 없어져야 하고, 여성 자신들이 일과 사랑 모두 잘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그녀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배현아 기자
pearcci6@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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