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드라마는 인간, 곧 나다
[초록] 드라마는 인간, 곧 나다
  • 배현아 기자
  • 승인 2006.11.11 2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리이타의 삶이여 유유히 흘러가거라

드라마는 인간, 곧 나다
자리이타의 삶이여 유유히 흘러가거라

드라마는 처음 접할 때 다른 문학 장르와 상당히 비교됩니다.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면 방송작가로서 일하기에 상당히 힘듭니다. 그래서 좋은 작가가 될 재목들이 방송가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방송가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 일에 미처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립니다.

여기서 방송가에 대한 편견 하나. ‘방송가는 무섭다.’ 이곳이 유난히 치열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가장 인간적인 곳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가가 지극히 상업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 더 배려할 수 있어요.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이, 적어도 인간과 인간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울 생각을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편견 둘. ‘돈을 많이 번다.’ 3년여 전 방송협회 조사 결과 방송작가 중 1% 정도가 연 억대를 번다고 합니다. 그리고 97% 정도는 연 2천만원 미만의 수익을 벌구요. 어떤 직업이나 상위 1%는 돈을 많이 벌어요. 세상이 거기서 거기지 방송작가라고 특별하지 않죠. 때문에 방송가는 돈을 벌기 위해 올 곳은 아니에요.

편견 셋. ‘공식이 있다.’ 불치병 및 기억상실,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재벌 2세의 등장, 극중 인물의 연관관계, 착하고 예쁘고 가난한 여자 등장, 우연한 만남 등 흔히 인기드라마에는 특별한 공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 공식을 써서는 흥행이 별로 되지 않습니다. 확률로 따졌을 때 성공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이죠. 차라리 작가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성공률을 높여요.

- 작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날 제게 글 쓰는 것은 엄청난 핑계거리였어요. 술 먹어도 글 쓰니까, 돈 안 벌어도 글 쓰니까, 사고 쳐도 작가니까 경험삼아 괜찮다고 생각했죠. 이처럼 ‘작가니까’라는 생각은 제 인생 최대의 무기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집에 온 어머니 친구의 ‘딸이 다 컸는데 집에서 잠만 자냐’는 말에 어머니가 조용히 ‘밤에 글 쓰다가 피곤해서 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사실 글을 쓰지 않았던 당시 제게 ‘너는 뭐고 누구에게 진실할래’라고 물었죠. 그 후 저를 가장 믿고 사랑해주었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 특별히 드라마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요?
원래 소설을 썼어요. 소설은 어렵고 어둡고 현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고3병을 앓으며, 제 글을 제가 읽어도 모를 정도로 어렵게 썼죠. 골이 아팠어요, 정말. 그러다 드라마 극본 쓰기를 배우러 갔는데 글을 그냥 사는 대로 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지금도 드라마는 제게 쉽고 재미있는 거예요. ‘드라마는 인간이다. 인간은 곧 나다. 내 얘기를 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 작가님 드라마를 보면 여성이 매우 강한 이미지로 나와요. 반면 아버지(남성)는 매번 어머니 혹은 가정을 버리는 역할이고, 연애관계에서는 여성에 끌려가는 우유부단한 역할이에요. 그런데 요즘 들어 남성의 역할이 강해졌다고 봅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남성이 약자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가요?
모르고 썼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아버지와 일년에 한 번도 안 봤을 정도에요. 아버지가 실제로 「내가 사는 이유」의 박성달 같았거든요. 그런데 3~4년 전 ‘너는 다른 사람에게 화해하라고 하면서 네가 화해하지 못한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래’라는 생각이 큰 화두가 되었어요. 어떻게든 아버지와 얘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 후 화해했고, 그동안 제가 아버지를 제 식대로 바라본 것을 깨달았어요. 요즘에는 아버지와 40년 동안 못했던 얘기로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예전에 저는 아버지가 저를 그저 저로 봐주길 바랐는데, 아버지도 그랬구나 느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어요. 최근 제 작품을 누가 분석했는데 남성의 위치가 커지고 있다고 해요. 이런 생각들이 저도 모르게 작품을 통해 드러났나 봐요. 남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이 보통 드라마를 엔터테인먼트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아요. 드라마에는 오락성이 있어요. 드라마를 통해 옷 스타일과 화젯거리를 파악하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어요. 방송작가라면 이런 오락성을 드라마에 포함해야 하고,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제 경우 저는 재미있다고 쓰는데 보는 사람은 괴로워 하니까 이 점에 있어서는 아직도 불가사의에요. 나도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늘 숙제입니다.

- 시청률 때문에 조기종영하거나 중간에 이야기를 바꾸어야 할 때 어떤가요? 그리고 혹시 시청률에 연연하나요?
작가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외부적으로 볼 때 방송사의 약속 위반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작가 스스로 내 작품이 정말 시청률 때문에 종영되었나 고민해야 합니다. 시청률 때문에 드라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작품을 볼 가치가 있느냐를 따집니다. 그리고 시청자의 구미에 맞추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당연히 공급자로서 해야 할 일이죠. 또 저도 시청률에 연연해요. 제 자신이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청률도 높고 시청자에게 감동도 주고 싶어요. 여전히 욕심이 많아요. 이런 것에서 벗어나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욕심인 것 같아요.

- 글을 쓰기 위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면 자신을 소모시킬 수도 있는데 힘들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글쓰기는 끌어내는 것이고 그러면서 무언가 쌓이기도 한다고. 그런데 이제는 조금 바뀌었어요. 제 안의 한가지로 다른 사람과 얘기하며 살을 붙이고 떼기도 해요. 외부와 나의 만남, 그것이 글쓰기인 것 같아요. 즉 바깥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토론의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 작가로서의 노력과 사명감은 무엇인가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저는 7~8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정한 시간에 조금씩 글을 씁니다. 그리고 아는 척 잘난 척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고 노력해요. 사명감은 없어요. 예전에는 작가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존경하는 스님의 ‘너도 다른 사람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너를 대단하게 볼 것 같은가’라는 말에 작품에 대한 큰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할뿐이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에요.

-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가장 크게 우선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매순간이 선택의 순간이에요. 제 모든 것의 잣대는 ‘내가 좋은가? 결정한 것도 좋은가?’입니다. 자신에게 질문할 때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고, 선택한 것이 나중에도 좋은가 생각해야 해요. 또한 자리이타, 즉 내가 좋고 남도 좋은지 생각해야죠. 이 기준이 제 삶의 기준이에요.

-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것이 있나요?
대학생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사랑해도 슬퍼, 돈도 없어, 앞날은 불안하지. 그래도 굳이 돌아간다면 사랑했던 사람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는 거예요. 희망에 상처 줬던 것에 미안해하고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웃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또, 나는 할 수 있다고 단 하루라도 믿어서 신나게 경쾌하게, 그렇게 한번 걷고 싶어요.

정리=배현아 기자 pearcci6@duksung.ac.kr
사진=김윤지 기자 heaven0424@duksung.ac.kr

● 노희경(방송작가)
95년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세리와 수지」로 데뷔
96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97년 「내가 사는 이유」 98년 「거짓말」 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2000년 「바보 같은 사랑」 01년 「화려한 시절」 02년 「고독」 04년 「꽃보다 아름다워」 06년 「굿바이 솔로」 등 다수 작품 집필
96년 백상예술대상 대상, 97년 문화방송 작가상, 99년 한국방송 작가상, 04년 한국방송 연기대상 작가상 등 수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