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콤한 그녀
살콤한 그녀
  •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 승인 2007.03.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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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그 달콤함이 주는 유혹
 

“오빠? 어디야? 나 이제 수업 끝났는데 데리러 와.”

“그래. 오빠 학교에서 너희 학교로 가는 데 한 시간쯤 걸리니까 기다리고 있어. 우리 애기~”

대학교 1학년 첫 미팅 때 남자친구를 만났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내리 4년을 그와 연애했다. 대학만 가면 지긋지긋했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법한 킹카를 만나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나에게 그는 정말이지 ‘백마 탄 왕자’가 돼 줬다.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멋진 남자친구를 만났느냐’며 질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고, 그때마다 재벌가에 시집 간 사모님마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도, 취업에 목숨을 걸 이유도, 학과 이외의 활동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준다했으니까,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행복하니까 다른 건 필요하지도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그건 일종의 중독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자가 되어가는 것은 날 소파에 누워 TV를 감상하는 일처럼 편안하고 일상적인 것이었기에 서서히 중독돼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우린 4년 간의 만남에 종지부를 찍고 이별했다. 한동안 극심한 이별 후유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지하철에서 멍하니 서있다 내려야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여러 번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 무섭고 두려워.’

그와의 ‘이별’은 이별 그 이상의 고통을 선고했다. 그건 그와 동일시됐던 내 자아를 되찾아오는 고단한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한 남자의 여자가 아닌 개별화된 여성으로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애, 그 달콤함이 주는 유혹은 때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디자인해야 할지 어떤 여자로 성장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게 한다. 그리하여 삶의 방향키는 온 데 간 데 없고 현실에만 안주하는 ‘소심한 여자’로 퇴보하게 만든다.

“넌 버스 운전사야.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누군가를 만나 도움을 받고 조언을 얻을 순 있지만 네 버스의 운전사는 바로 너라는 걸 잊어선 안돼. 그 어떤 사람도 그 버스를 대신 조종해주거나 네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전해주지 않아. 연애가 주는 달콤함은 버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 같은 것뿐인데 음악소리에 정신을 놓고 있다간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어. 자! 핸들을 꽉 잡고 음악 소리는 낮추고...기분 좋게 출발!”

서른이 되고 보니 이제야 보이는 연애의 달콤하지만 잔인한 유혹에 대한 회상. 그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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