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황은 즉흥곡이다
내 방황은 즉흥곡이다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7.03.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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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와 취업은 요즘 대학생들에게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에 들어갈 무렵 온통 대학에서 무얼 할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불과 4년 후면 졸업하고 또 다른 삶의 단계에 진입해야 하지만 그것은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었고, 4학년 선배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는 어른으로만 느껴졌다. 어쩌면 그만큼 당시에는(1985년) 취업에 대한 압박도 크지 않았고, 뭔가 좋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오만한 기대도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생활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허용해준다는 점에서 한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완전한 자유는 결코 아니었고, 심지어 교련 과목조차 2년간 교양 필수이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대학 입학 이후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한 가지 뚜렷한 삶의 원칙이 드러난다. 어떤 도덕적 원칙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부끄럽다면 부끄럽다고 할 원칙이다. 내가 정해놓고 그 원칙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이 나를 강력히 지배해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그것은 즉흥적 선택의 원칙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하기 싫은 일은 어떻게든 피해 다녔고, 그때그때 하고 싶다고 느낀 것은 별 생각 없이 선택했다. 그 선택이 가져올 장기적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깊은 생각도 없이. 그렇게 해서 내가 다니던 법과대학의 300여명이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한 예외 없이 매달리던 국가시험을 학생운동도 하지 않는 주제에 포기해버리고 인문대 수업을 기웃거렸고, 오지 말라고 말리던 경험자의 간곡한 고언은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독문과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대학원에서는 책 한 권에 빠져서 그 책의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을 찾아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로 유학을 떠났다. 왜 독문학을 하면서 영어권 국가(호주)로 가느냐는 주변의 오해에 시달리면서.
그러다가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서 학위논문을 제출했는데, 그 학위논문이 통과되던 순간까지만 해도 바로 그날 밤 다시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될 줄은 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불필요하게 박사 학위를 중복으로 지니게 되었으니, 이것도 나의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삶의 태도가 낳은 부작용인 것이다. 즉흥적인 성격 때문에 이루지 못한 것도 많다. 예를 들면 하기 싫은 것을 꾹 참고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늘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살다 보니 낭비도 많았고, 후회도 많았다. 세상이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여기는 점은 한 가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길을 그냥 따라갈 정도로 생각 없이 살지는 않았다는 것.


김태환(교양교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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