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교수님과 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교수님과 나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03.31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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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연결된 사이 아닌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사이 되야

 

열아홉 시절 대학생활에 대한 막연하지만 달콤한 상상을 했다. 고등학교의 몇 배가 넘는 캠퍼스를 누비며, 선배들 동기들과의 즐거운 동아리 활동, 두근거리는 미팅 그리고 교수님과 나누는 담소….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 꿈꾸던 환상이 하나 둘 현실로 바뀌는 쌉싸름한 맛을 느낀다. 학교는 넓어서 걸어 다니기 힘들고 동아리 활동이 가끔은 노동으로 느껴지며 미팅이 언제나 설레지는 않더라. 하지만 더 차가운 현실은 교수님과 나의 인사가 형식적인 냉랭한 대면이라는 것과 혹은 ‘설마 나를 알겠어?’ 하며 지나치는 모습이다.
모든 대학의 홍보 책자를 보라. 교수님과 학생들이 환한 얼굴로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게다가 든든함이 느껴지는 어깨동무까지 하고 있으면 책자 속 사제지간은 칙칙한 열아홉 소년, 소녀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훈훈하게 한다. 그런데 왜 대학 입학 후 훈훈한 사제지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걸까? 우리대학의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우는 “전공과목 교수님에게 가장 최근에 해본 말은 ‘수강정원 늘려주세요’이다. 꼭 필요한 말 외에 교수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아직 상상불가”라고 말했다. 올해 졸업한 박현범(동국대 경영 00)씨는 “교수님과 특별한 담소를 나눈 적은 졸업 전에 한두 번 정도뿐이었다. 교수님과 살갑게 지내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어색했다”고 회상했다.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교수님과의 짧은 인사보다 수강신청을 위해 질문한 경우가 많은 요즘 대학생들.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님과 나는 어색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는가?

학점 줄때만 불나는 교수님의 씁쓸한 핸드폰
수도권 D대의 한 교수님은 성적정정기간이 되면 쉬지 못하는 핸드폰이 안쓰럽다고 했다. “학기 중에는 수업만 끝나면 등 돌리고 나가던 학생들이 정정기간에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교수와 친근하게 지내면 학점을 잘 받기 위한 아부로만 보는 것도 어색한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한다”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구백(이십대의 90%가 백수)’이 넘쳐나는 취업난 속에서 현재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점관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성적 정정기간에 학생들은 한단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교수님에게 자연스레 전화와 문자를 수도 없이 하기도 한다.
요즘 대학생들의 이러한 행동을 문화평론가 권경우씨는 오히려 “과거에 비해 엄정해진 학사관리가 대학생들과 교수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구조적 이유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결을 비롯해 상대평가의 도입으로 학생들은 부쩍 수업시간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학생들의 긴장감은 교수님과의 안 보이는 심리전으로 표출 되었다. 이것은 곧 교수님은 숫자를 주는 사람, 나는 그 숫자를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졌고 열아홉에 꿈꿨던 교수님과의 인간적인 담소도 점점 학점에 밀려났다.

그래도 사제의 정은 죽지 않았다!
수업시간의 형식적인 만남에 교수님과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기에 왠지 부끄러운 대학생들. 그러나 학점 앞에서는 웃음도 눈물도 때로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까지도 교수님들에게 서슴없이 보여준다. 물론, 그들이 일부러 또는 의도해서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취업난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숫자에 얽매여 인간미 없는 세대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점점 심화 되어가는 교수님의 씁쓸함도 대학생들의 심난함도 대학 당국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대학에서 사제의 정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행사를 주최하여 관계회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특별한 입학식을 통해 새내기들에게 아직 환상을 간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올해 우리대학의 경우 입학식에 앞서 신입생 1,500명이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환영의 포옹을 받았다. 타 대학에서는 입학식에서 각 학과장이 학과 대표 신입생에게 스승으로서 최선의 교육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글귀와 조언 등을 적은 학습 노트를 선물했다. 이에 신입생은 교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주는 학연식을 열어 교수님과 학생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국민대의 경우 ‘사제동행세미나’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교수님과 봉사, 연구, 토론 등을 할 수 있고 수업외적으로 식사, 등산, 다과회 등의 모임으로 자주 만나면서 사제지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사제동행세미나’ 본지 520호 참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으로 모든 것이 수치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 그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 대학생들과 교수님과의 옅어진 사제관계일 것이다. 취업을 잘하려면 대학이라는 ‘도구’를 통과해야 하고, 이 대학을 잘 통과하려면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현실. 그 사이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은 어색해져 가고 있었다. 이제 변화해야 할 때가 왔다. 교수님을 나에게 학점을 주는 사람이라는 메마른 생각을 버리고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같이 고민해 줄 조력자로 바라봐야 한다. 그 첫걸음은 수업 시작과 끝에 나누는 짧은 인사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서로를 향한 미소 머금은 인사가 캠퍼스를 훈훈한 ‘정’이 느껴지게 다시 돌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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