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빨간 장미, 프리지아 향, 그리고 사람
봄비, 빨간 장미, 프리지아 향, 그리고 사람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03.31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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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 봄내음을 찾아서, 양재 꽃시장

 

올해는 3월 중순이 되어도 쌀쌀한 날씨의 연속이다. ‘봄이 오기는 왔나’ 싶을 정도로 봄에 대한 설렘은 둔해지고 있다. 그래서 설렘이 사라지기 전에 직접 봄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 곳은 매일 봄이어서 설렘보다는 익숙함에 물든 사람들이 있고, 빨간 장미와 프리지아 향이 가득한 곳이다. 봄비가 내려 봄내음이 더 진했던 지난달 24일 토요일 새벽 양재 꽃시장을 찾았다.   

#1. AM 01:00 “허~이야”
‘쭈삣쭈삣’ 교무실 들어가듯 경매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거대한 경매장 안에는 열명 남짓 되는 중도매인들과 몇몇 흩어져 서있는 운반원들이 전부였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그들은 무관심했지만 그저 민망한 기분에 경매장을 들어서는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토요일 새벽의 경매장은 TV속 시끌벅적함을 무색하게 만드는 적막함만이 흘렀다. 1시가 되자, 전광판에 불이 켜지고 알림종이 울렸다. 동시에 “허~이야”라고 외치는 경매사의 구호가 적막을 깬 순간이다. 중도매인들의 눈과 손은 전광판에 집중되었다. 전광판에는 꽃의 재배지, 재배자, 꽃이름, 색깔 등과 등급이 표기되어 있었다. 경매사 구호에 전광판의 눈금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낙찰된 원가에 깜빡이고 다음으로 지나갔다.
이미 경매를 끝마친 중도매인 유병일씨는 “월수금은 큰 장, 화목토는 작은 장이야”라며 기자의 손에 들린 수첩과 펜을 보고 말을 건네 왔다. 유씨는 빈 자리를 보며 “대목이 지나서 경매하러 많이들 안 왔네. 하긴 화이트데이 시즌에는 12,000원이던 장미가 지금은 3,000원이니…. 여기 분위기는 시세에 달려 있어. 나도 장례식장에서 쓰는 국화만 사고 관뒀어.” 상인들의 요즘 사정을 듣는 동안 경매가 끝났고 30분 만에 매장용과 폐기용이라는 꽃의 갈 길이 정해졌다. 양재 꽃시장에서 처음 들른 경매장에는 상자 한 가득 담긴 꽃 때문에 그윽한 향이 돌았다. 그러나 그 향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날의 시세에 울고 웃을 상인들의 표정이었다.

#2. AM 01:43 “7시에나 와요”
가동, 나동 두 개의 분화 온실을 지나 생화도매시장에 도착했다. 경매장만큼은 아니었지만 도매시장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까 낙찰되었던 꽃들이 각각 주인을 찾아 가느라 바쁘게 이리저리 운반될 뿐이었다. “거기! 학생 비켜요!” 통로 한 가운데에서 상인들의 하루 시작을 카메라에 담으려다가 한순간에 눈치 없는 장애물로 전락했다. 그 때, “사진 찍으려면 7시에나 와요. 지금은 뭐 그림 되는 게 있나….” 판매대 위에서 한창 꽃을 정리하던 상인의 우려 섞인 목소리. 그리고 한산함에 젖은 꽃시장. 여기 저기 떨어진 비에 젖은 꽃잎과 나뭇잎들. 새벽의 ‘그림 되는 게 없는’ 풍경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3. AM 07:49 “그냥 1500원에서 잘라, 나 단골이잖아.”
다시 생화도매시장으로 가는 길. 비는 계속 내렸지만 들어서기 무섭게 상인과 손님의 흥정소리가 반겼다. “그냥 1,500원에서 잘라, 나 단골이잖아!” 손님의 당찬 목소리에 상인은 투덜거리면서도 벌써 꽃을 신문지에 다 말았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아무리 대목이 아니더라도,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라도 꽃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층에는 장미, 프리지아, 튤립, 히야신스 등이 사람들의 눈과 코를 사로잡았다. 취미가 꽃꽂이라는 이영선씨는 “일부러 작은 장을 찾아요. 사람들이 많아서 붐비면 사는 동안에 꽃도 잘 상하고. 가격도 작은 장이 더 싸고요”라며 색색의 장미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눈치 빠른 상인이 “이 색이랑 저 색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예쁘죠?”라며 이씨의 고민하던 마음을 읽은 듯 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생화보다는 조화와 말린 꽃 그리고 꽃꽂이 재료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매년 3월이면 양재 꽃시장 자체적으로 무료 생활 꽃꽂이 강좌를 마련한다. 3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꽃다발, 부케, 꽃바구니 장식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올해는 실내용 미니 정원 가꾸기 콘테스트와 꽃꽂이 전시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기념일이나 졸업, 입학 때만 몰리던 소비자들을 평소에도 꽃과 더 가깝게 하기 위함이 행사의 의도란다. 특히 꽃꽂이 강좌는 꽃시장의 상인들도 손님이 더 늘어 좋고 소비자들도 단순 구매뿐만이 아닌 문화생활까지 즐길 수 있어 1석 2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4. AM 08:30 “이봐, 이리와서 밥 먹고 해!”
봄을 더 빨리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을 봄비도 막지는 못했나 보다. 봄맞이 겸 프리지아를 사러 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노란색만큼이나 진한 향기가 방에 은은하게 퍼지는 프리지아. 현재 양재꽃시장 매출 1순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하얀 카라를 잔뜩 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상인에게 물으니 얼마 안 있으면 부활절이라서 교회에서 하얀 꽃 종류를 많이 사가는 것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기념일을 다 꿰고 있었다. 우리는 특별함으로 기념일을 챙기지만 그들에게는 어느 꽃이 잘나가는 대목으로 기념일을 챙기고 있었다.
프리지아 향으로 가득한 틈에 어디선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봐, 이리와서 밥 먹고 해!”라고 누군가를 크게 불렀다. 꽃들이 놓인 선반 안쪽에서 그들의 소박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서 먹는 아침은 화려해 보이기보다는 그들이 먹는 된장찌개처럼 소박함만이 묻어났다.
그렇다. 여기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한 양재동 꽃시장이다. 그리고 여기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유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양재동 꽃시장이다. 봄맞이 외출을 이  곳으로 한다면 봄도 느끼고 사람들의 훈훈함까지 느끼고 돌아오게 될, 여기는 양재동 꽃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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