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황은 고민과 갈등이었다
내 방황은 고민과 갈등이었다
  • 양정호 교수
  • 승인 2007.05.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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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었던 방황’이란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가 겪었던 방황이라···. 나한테 그런 게 있었나?’ 시간이 지나도 머리에 떠오르는 방황의 추억은 없고 인생 참 밋밋하게 살았다 싶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는 대뜸 “당신은 방황해 본 적 없잖아?” 했다. 만난 지 20년이 된, 그래서 어떨 땐 나보ek 나를 더 잘 아는 아내의 말이 그렇고 보니 아무래도 이 글은 못 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냥 못 쓴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방황’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다. 사전에서 ‘방황(彷徨)’을 찾아보니 ‘일정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헤맴’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었다. ‘아하! 방황은 일정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어야 하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방황을 할 수가 없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 학과에 들어가리라는 목표가 있었고, 대학에서는 대학원에 진학에서 학자가 되리라는 목표가 있었고, 결국 지금까지 그 길을 가고 있으니 방황을 할 수 없었던 게다. 여자 문제로 방황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대학 3학년 때 만난 여자와 연애해서 지금 같이 살고 있으니 그런 방황도 할 수가 없었던 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노라니 내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게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이나 방향 없이 헤맸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민이나 갈등도 없지 않았다. ‘고민(苦悶)’과 ‘갈등(葛藤)’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괴로워하고 번민함’과 ‘상반(相反)하는 것이 양보하지 않고 대립함’이라고 쓰여있었다. 돌이켜보면 목적과 방향이 없는 방황이 없었을 뿐 갈등이나 고민도 없었던 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몇 년 지내는 동안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막막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면서 차마 아내에게도 말 못할 ‘고민’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 여름인가에는 일본의 한 대학 한국어과에 교수로 와 줄 것을 제안 받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3년은 재직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은 한국 대학에서의 교수 초빙에 지원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내 ‘갈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학 교수직을 수락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다행히도 그 3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에 우리대학으로 오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런 고민과 갈등이 얘깃거리가 되고,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방향이 없어서 겪어야 했던 작금의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해 준다. 고민과 갈등이 인생에 무용치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양정호(국어국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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