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밤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수유 밤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7.05.12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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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 수유에서 만난 사람들
 

 

 


강북에서 손에 꼽히는 유흥가로 알려진 수유역 일대. 그곳은 낮보다 밤에 더 분주해지는 상인들과 언제 다시 수유를 찾을지 모르는 수많은 행인들로 가득 찬다.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화려해지는 거리 속 그들에게 다가갔다. 수유가 일터인 이들과 수유가 제2의 고향인 이들 그리고 지나가다 잠깐 들른 이들까지. 수유와 얽힌 소소하고 웃음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 등을 저마다 다른 그들을 통해 들어보자.


삶이 묻어나는 수유

수유 밤거리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3년째 24시간 ㅈ편의점에서 일하는 심훈보(27세)씨만큼 수유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심씨는 수유에서 일하면서 지루한 일상은 없다고 했다. 매일 같이 눈이 번뜩일 만한 사건과 사고가 그를 졸리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특히 여기는 미성년자도 많아요. 그래서 더 철저하게 민증검사를 하죠”라며 이어 “한번은 너무 어려보여서 끝까지 민증 확인을 요구했는데 76년생이더라고요. 그분도 황당했고 저도 당황했지만 아직도 저는 투철하게 검사합니다. 위조 여부까지요”라며 웃었다. 하루도 지나치지 않고 들리는 취객들과의 말다툼도 이제는 가볍게 넘기는 그지만 다툼이 커져서 경찰서도 몇 번 가본 전력(?)을 말할 때는 머쓱해 했다. 수유 밤거리의 특징에 대해 물으니 “다른 곳은 새벽이 되면 조금씩 정리가 돼가는 듯 하는데 여기는 24시 술집들이 즐비해서 아침 7시까지도 해롱거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말하느라 계산하느라 바빴다. 갑자기 수유의 밤에는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지 궁금하여 물어봤더니 “담배죠. 담배가 한 박스에 500갑인데 하루에 두 박스가 팔리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편의점 옆에는 번화가 중심부에 위치한 ㅈ약국이 보였다. 병원에서도 조금 떨어진데다가 수많은 주점과 음식점 사이의 약국이라…. 조심스레 약국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물었다. 약사의 대답은 놀라웠다. “약국 문을 1982년에 열었으니 1985년에 개통된 수유역보다 오래 되었지!” 이 거리의 최고 고참뻘인 약사는 15년 전부터 술집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지금의 수유 밤거리를 형성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과거에는 주택가가 있어서 주민들의 푸념도 들어주고 상담도 해줬는데 지금은 마치 내가 빨리빨리 필요한 물건만 주면 되는 판매원이 된 것 같아.” 특히 그는 “수면제나 최음제 같은 것은 아예 들어놓지 않아. 보다시피 미성년자들도 많이 돌아다니니까….”라며 수유의 다소 향락적인 문화를 경계하고 있었다. 유흥업소의 네온사인을 보며 변해버린 수유가 야속하기라도 한지 말하는 내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흥메카? 주말만 반짝일 뿐.

편의점 건물 5층에 자리잡은 ㅁ주점의 사장 조득래(41세)씨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다.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힘들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유 상권이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푸념을 한다. 강북 최고의 유흥메카에서 이것이 사실일까? 건너편에서 떡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진석(59세)씨도 “오픈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에 있던 강남지역에 비해 매출이 많지 않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수유는 이동인구가 대부분이어서 주말만 특수를 이룰 뿐 나머지 5일 특히 낮에는 매출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매상을 올릴만한 대상의 부류가 없다. 그리고 번화한 수유에서 주택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노원과 미아에 각각 대형 백화점들이 들어서고 영화관이 자리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수유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매출이 늘기는커녕 점차 줄어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 수유에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문화적 공간과 현재의 상가들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상권을 다시 살리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수유 밤거리의 불청객

수유역 6번출구와 7번출구 사이에는 수유의 밤거리를 만끽(?)할 수 있는 번화가가 있다. 바로 그 앞에서 2년 전부터 만두 노점을 하는 박윤주(56세)씨는 수유 밤거리에 대해 “뭐, 밤거리가 다 똑같지. 잔다툼이 비일비재하지”라고 말했다. 취객들끼리의 다툼, 차와 사람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2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봐 온 광경이었다. 위험하고 무서울 것 같다고 건네는 말에 “그래도 여기는 전에 장사하던 창동이나 노원쪽에 비해 번영회가 잘 꾸려져 있어서 안전하다. 수시로 번영회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관리를 한다”며 대답했다. 상가와 노점이 많은 수유의 먹자골목은 상가번영회와 노점번영회 등 각각의 관리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 보였다.

밤거리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이들은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건네는 호객꾼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유난히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서 살며시 전단지를 건네는 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골목 안쪽에 있는 ㄷ횟집의 사장이었다. “우리 가게는 번화가를 무심코 지나면 두걸음에 지나쳐 버려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보니 이렇게 전단지로 홍보를 하고 있는 중이죠”라며 전단지 한 장을 건넸다. 전단지가 정말 많다라는 기자의 말에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전단지를 뿌려대니까”라고 말했다. 현재 강북구청에서는 전단지 배포를 신고한 가게에 한하여 한달에 천장의 전단지를 배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단지 뒷면에는 ‘검’도장이 찍혀 있다. 그러나 업주들은 신고세가 부담스럽거나 번거로움을 이유로 불법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었다. ㄷ횟집 사장은 “가끔 지구대가 순찰을 돌다가 불법 전단지 적발을 꽤 하는 것 같은데 별로 효과가 없다. 그러니까 길이 온통 전단지 투성이지”라며 혀끝을 찼다. 그 날도 여러 명의 호객꾼들이 나눠준 전단지가 길바닥에 수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약국에서 만났던 약사도 무분별한 전단지(특히 야한 전단지)의 배포가 아침만 되면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했다. 아침만 되면 넘쳐나는 전단지들 때문에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몇 번 신고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라며 혀끝을 찼다.


네온사인 같은 현란한 사연이 아닌 각양각색의 소소한 사연들이 주된 얘깃거리이자 고민인 그들. 수유는 가끔 언론이나 혹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그저 향락과 퇴폐적인 문화만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그곳을 일터로 안식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향락과는 거리가 먼 그냥 수유동네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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