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기
학생수기
  • 박미
  • 승인 2007.05.12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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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심에서 생존을 외치다!

 

으라차차! 동경에서 살아남기 1

 

내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신주쿠 역을 헤매던 게 며칠 전 같이 생생한데 이제는 길가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까마귀를 봐도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고국을 너무 사랑하는 나의 친인척들이 일본에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일본이라는 낯선 생물체는 나를 길을 잃은 꼬마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난 철저히 혼자였던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이기 때문에 어학교 등록도 하지 않았으니 한국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정말 첫 한 달은 쓸쓸함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쌓이는 스트레스가 날 식탐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먹지도 않았던 초콜릿이며 과자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한 것이다. 꼭 내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초콜릿 좀 보내 달라고 칭얼대던 것처럼 나도 전화통을 붙잡고 “ABC 초콜릿”을 외쳐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쓸쓸한 감정에 젖어서 허우적거릴 수만은 없었다.
일본에 들고 온 돈(우리나라 돈으로 3백만원)으로 3개월치 기숙사비를 내고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계속해서 돈을 까먹다가는 금방 바닥을 들어낼 것이라는 불안감에 아침부터 무작정 길을 나섰다.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기까지 2주 정도가 걸리지만 나에겐 2주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가는 검은 넥타이의 범람에 섞여 어슬렁어슬렁 거리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조그만 라면가게였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일본냄새가 풀풀 풍기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염원이 불안감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인스턴트 라면이 아닌 일본라면을 만드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번호만 냉큼 적어서는 기숙사로 급히 돌아왔다.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 모집광고가 붙어있어도 함부로 가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먼저 전화를 건 후 면접 날짜를 잡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일본에 온 지 5일째. 일본어로 전화를 건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몇 번을 혼자 연습한 후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착신음이 끊기고 경쾌한 일본어가 내 귀를 흔들어 놓았다. 더듬더듬 거리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점장을 바꿔 주었다. 정말 필사적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뽑아내듯 말을 만들어 냈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라도 동문서답을 했다가는 절대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압박이 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겨우 간단한 질의응답이 끝이 났다. 끝으로 점장이 면접 날짜를 알려주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순간 난 하얗게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어제 막 산 거라 전화번호를 미처 외우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도 점장은 그러면 내일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말만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순간 식은땀이 사악 날아갔다. 길고 길었던 몇 분이 끝났다. 일본에서의 첫 면접이자 후에 나의 첫 아르바이트 장소가 된 라면가게. 이렇듯 나의 본격적인 일본생활은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시작되었다.
박미 (영어영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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