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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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7.09.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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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끝으로 찍어내는 추억

 

오랜만에 서랍 안에서 엄마의 오래된 앨범을 꺼내보았다. 그 속에는 수동카메라로 찍은 흑백사진이 들어있었다. 학교 앞에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많은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 색깔은 없지만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친구와 다정하게 경복궁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었다. 사진을 통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련한 추억의 향기가 느껴졌다.

바야흐로 1인 1미디어 시대가 왔다. 이제는 흑백사진이 아닌 총천연색의 추억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앨범을 대신하는 자신의 미니홈피 속 사진첩에 차곡차곡 사진들이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그 속에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관심사와 일상을 공개한다. 클릭 한번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계를 벗어나서 이제는 일촌이라는 명분하에 파도에 휩쓸려 다니며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상도 알 수 있다. 오로지 그 사람이 제공한 정보에 의해서만 말이다.

 

얼마 전 한 TV시트콤에서 상사가 후배직원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는 장면이 나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만나냐는 말에 상사는 인터넷 주소창에 그녀의 미니홈피 주소를 입력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가로세로 20cm도 되지 않는 화면을 통해 그녀에 대해 알게되었다. 시트콤 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정보의 공개가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순기능의 '공유'를 나타내지만은 않는다. 하나 둘씩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모두의 미니홈피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제는 어느 미니홈피에 가든지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찍은 사진들이 한 장씩은 꼭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진첩에는 친구와 공강 중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씩 마신 자판기 커피의 사진은 없다. 또 일기장에는 사랑과 이별처럼 ‘특별’해 보이는 문장은 담겨있지만 그들의 진정한 하루는 없다. 자신이 보낸 하루가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사진첩을 없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추억을 기록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나의 일상과 나의 추억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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