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2
[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2
  • 강효성(독어독문 4)
  • 승인 2007.11.20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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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해볼께요. 치마로 갈아입고 저기 누우세요. 속옷까지 다 벗으셔야 되요.”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의사라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발가벗고 다리까지 벌려야 하는 것이 너무 창피해서 연신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어째 처음으로 나의 은밀한 곳을 공개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히스테리가 세포를 이룰 것 같은 바늘 같은 여자라니 뭔가 엄청 억울해졌다.

 

“다리 힘 빼세요. 아~하고 소리 내 봐요.”

이 여자는 일년 삼백 육십오일 다리를 벌리고 아~소리를 내는 여자들의 자궁을 들여다보는구나 생각하니 날카로운 은테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가 가엾게 느껴졌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검사가 끝나고 의사가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검사결과를 말해주었다.

“윤정희 씨, 지금 화면으로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혹이 있어요.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큰 병원 가보세요.”

어김없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맹이가 날아왔다. 좀 잠잠하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날아오는 속도나 크기를 봐서 이번엔 좀 센놈이다.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치겠다. 하도 기가 막혀서 의사만큼 태연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나오는데 미연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갓 뽑은 커피만큼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미연이와 나는 한참동안 서럽게 울었다. 묻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병원 옆 골목에 세워진 파란 트럭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삭혔던 눈물을 원 없이 쏟아냈다. 우리가 그려온 이십 대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제법 술을 하는 우린데 이것은 한잔 술로 쿨 한 척 들이키기엔 너무 썼다. 이 비극 앞에서 더 이상 어떤 ‘척’도 할 수없다. 당장이라도 “나 못하겠어요! 관둘래요!” 하고 싶지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하는 우리는 이제 ‘어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미연이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일주일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고, 병원에 다녀 온지 삼일이 지난 나는 아빠와 어색한 발검음을 유지하며 나를 죽였다 살려줬다는 대학 병원으로 가고 있다. 처음 집에 와서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부엌으로 가서 무를 썰었고 아빠는 ‘끙’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자식의 비보 앞에서 생각보다 조용한 반응이었다. 수세미를 팽팽하게 잡아 당여 놓은 것 같은 아빠의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더 푸석해 보였다.

침묵이 어색해서가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장엄한 부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불편해서 나는 사랑스러운 것 까진 아니더라도 무뚝뚝해 보이지는 않을 정도의 넉살로 아빠한테 말을 걸었다.

“전화했어? 오늘 오래?”

뻔히 아는 얘기를 다시 묻는 걸 보니 상냥한 딸래미 역할로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응. 오늘 가기로 했어.”

7년 전,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아빠는 병원 부원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입원시켰다. 같은 병력으로 생존한 사례가 없는 나 같은 특별한 경우는 다른 병원은 갈래야 갈수도 없다. 장기가 모두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 때 나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저승사자가 잘려나간 내 창자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서 있을 것 같았다. 살 떨리는 공포 속에서 정신을 잃어가며 나는 나를 죽였다 살려준 병원을 저주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몸을 맡기러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아빠는 내 몸이 고장 날 때마다 새로 부임한 병원장을 찾아가 이십년 전 악몽을 고스란히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러면 황당무개한 사연을 듣고는 안 그래도 바쁜 업무에 가해진 잡무 때문에 대학병원의 아무 죄도 없는 21세기 직원들은 잔뜩 짜증에 차서 먼지 쌓인 차트를 찾고 수속절차를 밞아준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풍채가 좋은 부원장은 병원의 실질적인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미리 소식을 들은 부원장은 나를 보더니 “예쁘게 생겼구나.” 하고는 웃는 데 번쩍이는 금니가 온몸에 소름을 심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 근육이 마비 되서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곳이다.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두꺼운 허벅지를 애물단지인 양 매만지고 있는 부원장의 행동에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빠의 갈색 남방이 부원장의 잘 다려진 흰 와이셔츠와 금니만큼이나 번쩍이는 넥타이핀과 대조되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왜 하필 저런 우중충한 걸 입고 온 건지, 흥부네가 놀부네 쌀 한말 얻으러 온 장면이 떠오르며 흥부 딸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똑똑한 애였다면 적어도 지 아빠를 꼭 빼닮은 표정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에 나는 끝까지 미소를 지어보이지 않았다.

 

부원장은 산부인과에 미리 알려놓았다며 바로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말하면서 산부인과 의료진이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원래 예약하지 않으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대단한 선심 앞에 아빠는 깊이 허리 숙여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 쑥 나온 엉덩이를 밀어버리고 싶다. 이게 감사할 일인가? 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 것이다. 무료 진료를 시켜주는 것이 무슨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끝까지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하는 부원장의 태도에 애꿏은 손톱만 씹어댔다. 나는 지금 어느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다. 의연하고 성숙한 태도로 삶을 받아드리려 했던 내 모습이 결국 어른 행동을 모방하는 어린 애의 장난 질 만큼이나 어리석었음에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처럼 착한 사람 만나서 참 행운이야.”

부원장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기 딴에는 날 위로한답시고 한 말 같은데 나에게는 세상의 조롱을 재확인시키는 사살 행위이다. 무엇이 행운인가? 내가 살아난 것? 착한 아버지와 까탈스럽지 않은 21세기 부원장을 만나 어려운 형편에 무료로 수술을 받게 된 것? 하늘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힘껏 날려주고 싶다. 천만분의 일의 확률에 당첨시켜 지옥 불에 던져놓고 온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더니 그래도 살려는 줬으니 행운으로 여기라니. 적어도 이 병원에서 내게 생명의 소중함을 훈계할 자격은 없다.

 

실험용 쥐에게 투여되는 수 십 가지 주사약은 딱 죽지 않을 만큼이다. 쥐는 약의 화학작용에 반응하며 빨라졌다 느려졌다 벌러덩 뒤집어 졌다 몸을 배배 꼬았다 폈다를 반복한다. 실험용 쥐는 그렇게 유리병에 갇혀 유리 밖 세상을 본다. 목숨이 붙어 있는 쥐는 불행아다.

그래서 나에겐 배꼽이 제자리에 있는 모든 인간이 행운아다.

스물 둘, 여자의 아량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

산부인과 병동에 들어서니 대학병원 명성에 걸맞게 환자들이 빽빽하다. 다들 우리 부녀를 번갈아 바라본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앙칼지게 받아쳐 줄 힘도 없다. 부원장의 연락을 미리 받은 간호사는 우리가 VIP 고객이라고 여겼는지 굉장히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아빠와 나를 안내했다. 병원 측에서는 내 존재가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으니 VIP 고객으로 포장해 서로 기분 좋게 덕을 보자는 부원장의 고상한 발상 인 것 같다. 내 담당의는 병원장이자 고 위험 산모 전문 의사인 대단히 실력이 좋은 분 이셨다. 혹 제거 수술은 머리감는 일처럼 손쉬운 수술일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또 한번의 정확한 초음파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며 아빠와 나는 다소 긴장해 있다. 땀이 벤 아빠의 손바닥을 보고 있으니 부모의 악몽을 재생시키는 불효를 저지른다는 죄책감이 지독한 외면을 뚫고 드디어 피부위로 떠올랐다.

 

“혹이 상당히 크네요. 이십 센티에요.”

“이십 센티요?”

아빠의 쓴 한숨이 터진다.

“빨리 입원해서 수술 받읍시다.”

목구멍으로 묵직한 것이 떨어진다. ‘제발, 여기서 울지 말자.’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지만 시안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남은 시간을 통과의례처럼 물어보듯이 가슴 바로 앞까지 닿아있는 칼날에 몸을 쑥 밀어 넣었다.

“선생님, 수술하면 자궁엔 아무 이상 없는 건가요? 혹 수술하면서 난소를 제거하는 사람도 있다던데...그럼 아기 못 갖는 거잖아요”

말해놓고는 움찔했다.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꿈도 못 꿔 받으면서 아기를 갖을 수 없게 될까봐 떨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다. 아빠 앞에서 나약한 내면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피부와 산소의 마찰이 느껴질 정도로 몸이 예민해져서 누가 툭 치면 온 몸에서 바늘이 솟아 날 것만 같다.

“음...지금 일반인들과 상황이 달라서 일단 개복한 후에야 수술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게...단순한 혹이 아니라 아직 몸속에 남아있는 약물이랑 뒤엉켜서 생성된 것 같은데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네요. 아기 때 수술 때문에 장기 유착이 심할 꺼에요. 외과의와 함께 들어 갈 겁니다. 혹이 너무 커서 난소랑 붙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난소 역시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최대한 난소는 살려 두는 방향으로 하죠. 그리고 ...”

더 이상 의사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지네가 영원히 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이제 내 새끼까지 빼앗아가는 구나하는 생각에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는 아빠의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 잔뜩 겁을 먹은 부녀를 앞에 두고 의사는 재빠르게 수술날짜를 정하고는 처음과 똑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내보냈다.

 

 

아빠는 또 다른 대학병원 경비실을 지키러 가기위해 초록색 버스를 타고 나는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파란색 버스를 탔다. 아~소리와 함께 벌어지는 여자의 두 다리처럼 버스가 서로 다른 노선으로 갈라질 때까지 아빠와 딸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두 통의 문자가 와있다. 하나는 진료상황을 걱정하는 미연이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재로부터 온 것이다.

-정희야, 이제 전화 받아.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문자보면 꼭 연락 줘. 기다릴게.

우재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서러움이 복 바친다. 고작 문자 한통인데 우재의 품에 안기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에 피로가 풀리고 얼었던 가슴이 물을 떨어뜨린다.

나는 우재의 안정되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늘 부러웠다. 우재는 큰 고생한번 없이 순탄한 자신의 인생이 불안하다고 했고, 그럴 때면 나는 감사한 줄 알라며 큰 소리 쳤다. 우재는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말끔하고 세련된 인생을 살았다. 일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떠나는 화기애애한 중산층 가정의 사랑스런 막내아들로 명문대학에 철썩 같이 합격해서 가문의 영광을 이었다. 산뜻했던 소개팅 후 다섯 번 째 만남에서 우재의 고백을 받았을 때, 그의 티 없는 삶을 발로 짓이겨 주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바보같이 순한 우재의 가슴에 내 흉터만한 상처를 남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지금 내가 그의 첫 번째 고통이 될까봐, 유리 같은 그의 인생에 티가 될까봐 뒷걸음질 치고 있다.

 

엄마는 원래 의사들이 환자 겁 주는게 특기라며 의사 소견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의 지나칠 정도로 튼튼한 긍정의 힘이 야속하기만 했다. 삼일 후, 아빠는 입원 수속만 마쳐주고는 병원을 나갔다. 병원에 혼자 있는 것이 내게는 익숙하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깨닫는 순간부터 엄마 아빠는 돈을 벌기위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병간호를 해줄 형편이 못 되었다. 열다섯 번째 크리스마스이브는 병실에서 삼년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어느 아저씨와 단 둘이 보냈다. 나는 창문을 열고 팔을 쭉 펴서 펑펑 쏟아지는 눈 받는 놀이를 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다. 그것만이 내가 가장 또래의 아이들처럼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자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다 채 녹지 않은 눈을 아저씨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사람의 볼이 아닌 것처럼 딱딱한 가죽이 만져졌다. 왠지 그런 특별한 날에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법은 아무도 보지 않는 비밀스런 장소에서만 힘을 발휘한다고 난 믿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다 그칠 때까지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날 한 순간도 외롭다거나 심심하다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해야 했다.

“윤정희씨, 환자 복 갈아입고 진료실로 나오세요.”

명량한 간호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머! 어린 학생이 여긴 왠일이야?”

둘러보니 6인실 아줌마들 죄다 호기심에 찬 눈빛이다.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남 얘기 좋아하는 아줌마들은 물 만난 생선처럼 내 꽁무니에 대고 오만가지 이야기 거리를 끌어와 한 바탕 수다 판을 벌일 것이다.

지루한 병실에 감초가 되는 재미를 부여할 만큼 나는 지금 너그럽지 못하다.

“별건 아니 구요. 혹이 생겨서요.”

새 초롬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왔는데 느린 재생 버튼을 눌러 놓은 화면이 펼쳐진다.

누렇게 뜬 얼굴에 미간을 접었다 편 것 같은 자국을 새기고는 허리를 반쯤 접어서 겨우겨우 걸음을 떼고 있는 환자복 입은 사람들을 보니 병원에 온 것이 틀림없구나 싶어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엄마는 또 다시 보호자 침대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생활이 익숙해 질만한 경력인데도 행동이 어색하기만 하다.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내 증상에 대해서는 일체 거론하지 않고, 성스런 의식을 앞둔 사람의 절제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양배추를 랩에 싸듯이 감정을 새어나지 않게 꼭꼭 잘도 싸놓는다. 딸을 다시 수술 대 위에 올려야 하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엄마는 눈감아 버리고 싶은 것 같다. 하루에도 수차례 살을 파고드는 주사바늘이나, 삼키는 동시에 내뱉어지기 때문에 입과 코를 동시에 꽉 틀어막아야하는 구역질나는 약은 더 이상 나에게 병원이 주는 고통이 되지 못한다. 병실에 오래 있으면 아픈 몸보다 더 빠르게 정신이 시들어 간다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나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나 미간에 패인 주름에 환멸을 느낀다. 병원에 있으면서 입원한지 고작 하루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6인실 살림살이를 거의 다 알아버렸다.

 

 

앞 침대 아줌마의 남편은 어릴 때 잃어버린 어머니 품이 그리워 아직도 밤잠을 설친다는 것과 옆 침대 부부의 늦둥이는 아저씨의 세 번째 결혼이 그 연유라는 것. 아기한테 금 고추라도 달린 마냥 건너 집 아줌마의 병문안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손녀만 일곱인 시댁에 자기가 첫 손자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 듣다보면 아줌마라는 사람들의 인생은 도무지 기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른 때 같으면 반나절은 물속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탱탱 불은 아줌마들의 얼굴이며 팔뚝이며 허벅지를 보고 여자의 일생에 회의감을 느꼈겠지만 오늘은 획 돌아누워지지가 않는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갖지 않겠다는 새댁들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애초에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다면 제 아무리 평생을 둘만의 말끔한 신혼생활로 설계해 놓고 영양제 삼키듯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자라도 울상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술을 앞 둔 하루 전 날, 미연이가 찾아왔다. 아직 호르몬 주사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미연이의 목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 서로의 안 된 처지를 혀 감기는 말로 위로 하며 짐을 나눠 짊어져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불편함을 자의적으로 맛보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미연이의 한숨을 내가 따라 쉬고 내 웃음소리에 미연이가 따라 웃으며 돌림노래를 부른다. 나는 지금 아기엄마가 될 지도 모른다는 미연이의 근심이 간절히 부럽다. 미연이의 참혹한 현실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목을 죄이는 고통이 또 누군가에겐 절박한 희망이라니 처절하게 우스운 굴레를 돌며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금 확인한다. 만약 억척스런 수다쟁이 아줌마가 되어 이 병실을 다시 찾을 수 없다면 지금 미연이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을지 모를 아기를 훔쳐 라도 오고 싶다. 그물에 걸린 채 두 번 다시 목숨만은 살려준 것에 감사해하며 살고 싶지 않다.

미연이를 배웅하러 병원 밖으로 나오니 이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정희야”

“응?”

“너...우재한테 말했어?”

“아니.”

“얘기 안할꺼야?”

“......”

“잘 생각해. 우재 좋은 애잖아... 정희야!”

“응?”

“다 잘 될 꺼야.”

“고마워.”

멀어져 가는 미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마움이란 감정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동안 쓸쓸한 시월의 밤바람에 몸을 떨다가 우재의 헨드폰 번호를 눌렀다. 때론 딱 한번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마지막 신호음이라고 생각했을 때 평화로운 우재의 목소리가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나야.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

지나치게 발랄한 내 목소리에 그의 가슴팍에서 곪고 있던 종기가 터져버릴 것 같다.

“잘 못 있었어. 왜 이제야 연락하니?”

“응. 요즘 좀 바빴어. 우리 우재 화 많이 났구나?”

잔인하게 이기적인 내 목소리가 우재의 고름을 쭉 짜낸다.

“윤정희! 이건 너무 하잖아...너 정말 왜이러니...니가 원하는 게 우리가 정말 헤어지는거야?”

우재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한다.

“나 잠시 여행 좀 다녀오려구...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미안해...”

기어코 피를 보고서야 우재의 상처를 휴지로 꾹꾹 눌러주었다.

우재는 나에게 오늘을 견디게 하는 사소함이었다. 지하철 문틈으로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해서 지각을 면할 때나, 밧데리 나간 mp3만 매만지고 있는데 씨디 네장이 만원이라며, 절대 불법 씨디 아니라며 맛보기로 올드 팝송을 삼분이나 들려주는 반가운 아저씨를 만났을 때,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미니시리즈를 잠시 잊고 지내다가 바로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와 같이 우재는 나에게 소소하고 절대적인 기쁨이었다. 인생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기쁨 덕분에 살아내는 것이다. 우재의 손이 내 손을 잡으면 지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마법이 없었다면 내가 어제의 다리를 어떻게 건너올 수 있었을까. 더 이상 우재가 환상의 지팡이가 되지 못하는 것은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서가 아니라 칠 칠지 못하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내 책임이다. 사소함으로 있어야 할 우재는 더 이상 사소함이 아니다. 나는 이제 윤정희의 또 다른 방문을 두드리는 우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음 날,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수 간호사 여러명이 병실을 찾아왔다. 무시무시한 엄마는 당연히 일자리를 채우러 나갔고 오후 출근인 아빠는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러 지네만큼 이나 고집 있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설렁탕집에 갔다. 키가 작은 수 간호사 한명이 탄성을 내지르며 달려와 내 손을 부여잡았다. 아기 머리만한 유방이 출렁인다. 

“어머머~니가 정희니? 왠일이야~왠일이야~”

감격에 찬 간호사의 호들갑에 나는 졸지에 TV는 사랑을 싣고의 출연자가 되어버렸다. 병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진다.

“아가씨가 다 되었네. 이게 몇 년만이야. 대체...중학교 때 다시 입원했었다며? 그 때 못 봤으니까 이십 년 만이네.”

간호사는 이제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이상한 일이다. 난생 처음 보는 종아리가 탄력 있는 간호사를 보고 목이 시큼해지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창피해서 일 것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나를 배려해서 자신의 감상은 잠시 미뤄두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린 정희 애기 때부터 있던 간호사야. 그 때 정희 이 병원 스타 였어~너는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가 참 고생 많으셨어~얘~진짜 효도 많이 해야 해.”

쾌활한 목소리와 달리 간호사의 표정은 숙연한 빛을 띤다. 마른 얼굴이 더 움푹 패여 보였다.

“부모님은 잘 계시니?”

말이 없던 간호사가 단발머리를 귀로 넘기며 물었다.

“네. 이따 오실 꺼에요.”

나는 간호사의 귀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는데 얼마나 웃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색한 건 정말이지 질색이다.

나의 생사를 함께 지켜봤던 간호사들은 한 편의 역사물을 서술하듯 당시 상황을 근엄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들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침대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서서 목소리를 낮추거나,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때는 엄숙한 표정을 잊지 않았다. 가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창 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표정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쓸쓸해 보이는 것은 살아있는 기적의 아픈 과거를 회상하느라가 아니라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통찰이 자아내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그들은 매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수술 잘 될 꺼야. 너무 걱정 하지마.”

그들에게 내가 오늘 받게 될 수술은 과거와 비교하면 오히려 다행스런 일인 듯 싶다.

하지만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를 구연동화처럼 실감나게 들려 준 노고보다 바로 닥칠 수술을 염려하는 깔끔한 말 한마디가 차라리 마음에 더 와 닿았다.

아빠는 여전히 말없이 앉아있다.

“아~지겨워. 빨리 했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안 부르는 거야.”

이 한 구절로 음정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를 반복한다.

“엄마한테 연락 왔어?”

“응. 아까 통화했어. 일 끝나자마자 바로 온데.”

“계모 아니야 정말? 무슨 엄마가 그래.”

입을 쭉 내밀고 맘에 없는 핀잔을 했다. 아빠 앞에서 절대 울지 않는 나처럼 내 앞에서 절대 울지 않는 엄마는 차마 딸이 누워있는 수술 침대를 밀 수 없나보다. 내 멋데로의 생각이지만 엄마를 이해하는 더 쉬운 방법은 찾을 수가 없다.

“윤정희씨, 수술 들어갈께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아빠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홀로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한다.

간호사 한명과 아빠가 침대를 밀고 수술실로 향했다. 심장이 조금 크게 뛰고 있을 뿐, 무섭지는 않다. 비장한 각오도 멋진 작별인사도 떠오르지 않는다. 완전한 평화?저작권자 © 덕성여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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