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3
[학술문예 소설부문] 헝겊데기 3
  • 강효성(독어독문 4)
  • 승인 2007.11.20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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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평화를 맛볼 수 있다는 설레임이 입안에 단맛을 돌게 했다. 아빠는 몇 시간 만에 열 살은 더 먹은 것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내 손을 잡았다. 딱딱한 굳은 살이 느껴졌을 때 나는 짐짓 크게 헛기침을 했다. 아빠의 발소리가 멈추고 온 몸을 초록색 천으로 휘감은 의사들이 침대를 넘겨받았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서야 오랜만에 한 숨을 깊이 내 쉬어 본다. 개운하다.

병실 문 밖으로 아빠가 사라지면 목을 쭉 뺀 자라처럼 온몸을 뒤척이며 “아빠~~~!!” 하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는 갓난이를 떠올리며 가만히 되 내어본다. 아빠.


미연이는 첫 월경을 하는 여자아이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다. 오랜만에 하는 생리대가 불편한건지 생리대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불안한 건지 자꾸만 손을 밑으로 가져다 댄다.

“보기 민망해~그만 좀 해.”

“아이구~너가 지금 민망 한 게 있기는 하니?”

“야! 그만 얘기해! 너 그냥 가라.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병문안 온 사람 태도가 그게 뭐냐?”

아까 낮에 젊은 남자의사가 사타구니에서 혈액을 뽑아간 후부터 나는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아기를 출산한 나머지 다섯 침대의 아줌마들과 내가 다를 게 뭐겠는가?

“야~그래도 그 의사 멋있잖아. 잘 생겼지~키 크지~친절하지~그만 하면 첫 남자치고 괜찮지 않냐? 하하하~~”

“이게 진짜~침대에서 내려가면 너 가만 안둬!”

“아이구~이제 좀 살겠나보네. 처음 마취에서 깼을 땐 다 죽어가더니만...야 그 땐 정말 못 봐주겠더라. 빨리 퇴원해서 나 정신 좀 차리게 실컷 때려줘.”

마취가 풀리며 나는 살아있다는 고통에 울었다. 죽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눈을 뜨는 순간 사지를 찢는 아픔이 밀려왔다.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붉은 것 아니면 노란 것을 신이 나서 쏟아냈고, 엄마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울었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빌미삼아 아빠 손에 찌든 담배냄새를 맡으며 울었다. 아무리 쥐어짜내도 살려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나의 역사를 궁색한 변명으로 이용하는 아빠의 자기연민도 여전히 구겨주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아빠의 불쌍한 표정에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은 단지 마취가 덜 깬 탓이었다.

그 뿐 이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 다행히 혹이 중앙에 있어서 난소에 지장은 주지 않았습니다.    봉합도 굉장히 깔끔하게 됐어요.”

이마가 반쯤 벗겨진 의사는 수술자국을 매만지며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웃다가 지네를 흘끔 바라보고는 얼굴을 잠깐 일그러트렸는데 저 것에 비하면 이번 수술은 충분히 감사해도 된다며 자신의 감상에 동조를 구하는 의사표시였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동조에 응해주었다.


나는 또 하나의 흉터를 얻었다. 윗집 사는 지네에 비하면 입을 꼭 다문 채 입 꼬리를 올리고 쌩긋 웃는 고것은 앙증맞다. 이번에도 터져 나오는 서러움을 다시 꼭꼭 밀어 넣고 생(生)을 덧대어 꼬메어 놓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각에 실밥이 튼튼하게 박혀있다. 가지각색의 빛 바랜 흔적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 누워있는 내가 투명한 유리창에 가볍게 떠 있다. 쿡쿡 웃음이 새는 우스꽝스런 모습인데도 해괴한 몸뚱이를 버리지 않는 것은 손 때묻은 낡은 인형만 찾는 꼬마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지극한 손길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나에겐 바늘을 잡을 선택권이 없다. 수십 번 터지면 수백 번 꼬메어놓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몫이다. 다시 꼬메지는 것은 분명, 사랑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 던 헝겊데기 인형처럼 다양한 무늬의 생(生)을 덧대며 살아가는 것은 누군가의 곁에 있어야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최대 삼십분 안에 병실 문으로 우재가 들어 올 것이다. 귀여운 고것이 어설픈 자존심을 몽땅 삼켜 버린 건지, 최소한 여자로서의 기능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당당함 때문인지 두 번째 흉터를 매만지다가 우재의 번호를 눌렀다.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게 정확히 우재로부터 인지 나로부터 인지 헷갈렸다.

 

짙은 파란 하늘에 새 하얀 구름이 한 폭의 유채화 같다. 티 없이 맑은 하늘도 예쁘지만 역시 하늘엔 구름이 제격이다. 순탄한 삶이 부럽긴 하지만 상처 없는 삶은 뭔가 심심한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지 이제 혼자서도 일회 정화작용을 잘도 실천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구름의 움직임에 시선을 맡긴 채 입 꼬리를 힘껏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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