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 수필 우수작] 일상의 슬픔
[학술문예 수필 우수작] 일상의 슬픔
  • 조화형(국어국문 3)
  • 승인 2007.11.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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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찬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아 막연한 공포에 질려버렸다.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를 깨웠는데 귀찮으니까 따라오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절벽전치가 구불구불 이어진 산을 혼자 순식간에 올라가셨다. 산 중턱에 아슬아슬 버티고 서 있는 나를 두고 할머니는 가버리셨다. 잠시 후, 아버지께서 따라 올라가셨고 한참 후 내려오시면서 저 산 위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죽음이 결코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배웠건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공기가 반쯤 찬 가죽 포대에서 공기를 억지로 뽑아내는 듯 한 거칠고 희미한 숨소리만 내뱉기를 수 십분 째, 나는 온전히 혼자 그 저릿한 시간을 견뎌내고 아침에 당도한 것이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을 꺼야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손을 뻗칠 수도, 이불을 걷어내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도 없어서 '무서워…무서워…' 라는 말만 얕게 되뇌며 30여분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참 후, 얼마 전에 집에 날아온 청첩장을 기억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있는 한참지난 된장찌개에 불을 지피고는 장롱을 열어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어제 입고 의자에 대충 걸쳐놓은 옷을 집어 들었다. 찌개 끓는 소리에 부엌으로가 숟갈 하나를 집어 들고는 찬밥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서서 밥을 먹기 시작했는지 기억해 낼 겨를도 없이 꾸역꾸역 뜨거운 된장찌개와 차가운 밥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2.

결혼행진곡이 귓가에 울려 퍼지고 신랑과 신부는 애초에 몰랐던 사람임을 잊고 그들이 태초부터 사랑했던 것처럼 입장을 한다. 대강 아는 사람과 눈으로 인사를 한 후 하객들 틈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서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양 어설픈 울음을 터트린다. 어릴 적 피아노학원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반을 눌러대던 이 곡이 이리도 슬픈 음악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고 계속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어 몇 번이고 괜찮은 척 했지만, 나는 여느 때처럼 결혼식장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행여나 나를 누군가 비웃을까봐 혹은 누추한 옷과 함께 온 내 마음이 그들의 행복한 결혼을 망쳐 놓을까봐 사진을 찍기 바쁜 시간을 틈타 소리 없이 빠져나온 나는 길거리에 덩그러니 목적 없이 남겨져 버렸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가만히 앉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또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어디를 가는 것인지, 또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쉽사리 말을 건낼 수 없었고 나는 좀 한산해 보이는 버스에 올라탔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며 어딘지 모를 길로 들어서자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3.

나에게도 사랑이 소멸하지 않고 변할 뿐이라면, 차라리 망가져서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생애 단 한번 오는 것이라면, 헤어진다 해도 그 한번이 생의 유일이라면 좋겠다고 울며 소원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그의 생에 내가 유일한 사랑이며, 유일한 아픔이며 동시에 완전한 기억이었으면 하고 매일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모든 이들의 사랑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바닥에 힘겹게 기대어 가야할 만큼, 아무리 아파도 손 쓸 수 없을 만큼, 딱 그만큼만 고된 사건이길 바랐던 나는 겨우 알게 된 삶속에서 그 시간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변하지 않겠다던 그 약속들이 지켜졌더라면 오히려 내가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너무도 나약했던 사랑이 다른 곳에서 다시 전부가 된다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 내가 그 잔인한 일을 이제는 꿈꾸지 않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하면 왠지 결혼에 대한 낯선 감정들이 몰려왔다. 텅텅 비어있을 식장과 허리가 굽은 어머니, 그리고 빈자리. 그래서 한때 나는 나중에 결혼식은 올리지 않고 그냥 당신과 살겠노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단 걸 깨닫게 된다.

 

 

4.

무거운 짐을 들고 겨우 버스에 탔다가 한참을 앉지도 못하고 가시던 아저씨가 벨을 눌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를 따라서 내렸는데 그 아저씨는 마중 나온 아들에게 그 짐을 맡기고는 겨우 땀을 닦으며 걸어가셨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혼자 여기까지 오시느라 참 힘드셨겠다는 생각에 그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졌다. 다가가서 내가 이렇게 당신을 불쌍히 여기노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거리를 배회하다가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어버렸다. 겨우 찾아낸 지하철로 들어가서 노선도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가다가 환승역에 다다라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긴 터널을 통과하는데, 사람들의 바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바쁘게 걸어 도착한 곳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그 안에 몸을 구겨 넣어야만 했다. 지하철이 움직이는 데로 내가 어디에 기대고 서있는지도 모르는 척 뻔뻔하게 몸을 맡기고 동네까지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힘겹게 구겨진 채 서로에게 기대어 와서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온전히 제 몸만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미처 그곳으로 내릴 줄 몰라 비키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이리저리 치이고는 자신을 마치 짐을 대하듯 치워놓고 나가려는 사람을 향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하철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일단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세상에 더는 없는 교양인처럼 우측엔 정렬 좌측엔 행. 그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르면서 너무 소름끼쳤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이 시간에 절대 지하철을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5.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도 켜지 못한 채 방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래도 씻고 자야한다는 저 건너편의 말들이 밀려오는 것을 억지로 막아버리고는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그러다가 문득, 유독 전기가 잘 나가던 어린 시절이 없어져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멈추고 무섭다며 어리광피울 시간도, 촛불을 켜고 바라볼 시간도, 전화를 잡고 타인에게 위로를 구할 시간도 어디를 간 것인지 통째로 생략되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내가 서울에 이사를 오고 나서는 전기가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여름이면 각 집에서 선풍기를 너무 돌려서 전기가 나갔다던 한전의 안내방송이 끊이질 않았었는데, 이곳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어컨에도 전기선들이 참 대견하게도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 정말 전기가 나가지 않는 것일까? 대답을 찾고자했지만 너무도 지쳐버린 나는 그냥 아주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온 세상 전기가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만약 세상이 애초에 어둠뿐이었다면 슬픔을 몰랐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미 빛을 봐버려 참 많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한번 두 번 자꾸자꾸 나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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