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후기②
교환학생 후기②
  • 류경아
  • 승인 2003.09.27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stminster College


자매대학교 :Westminster College
교환기간 : 2002년 8월 ~ 2003년 5월
영문학과  류경아

1. 동기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학교 소개 책자를 통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영어권 문화에서의 대학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교환학생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학점(평점 3.25이상), 토플(인문가회계열의 경우 CBT 213이상)과 영어 인터뷰이다.
 2002년 봄, 교환학생 모집 공고가 홈페이지 및 학교 게시판에 붙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점, 토플 성적표를 제출했다. 1차에서 붙으면 2차 영어 인터뷰가 있다고 들었기에 연락을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고 취업지원실에서 전화를 주셨고, 같은 영문과 후배와 면접을 보러 갔다. 영어 인터뷰는 행정동 3층에 있는 대회의실에서 자기소개를 비롯하여 왜 교환학생이 가고 싶은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학교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어 평소에 인문사회 계열이 유명하다는 Westminster 대학교에 교환 유학을 가기로 정했다. 한국 학생 수가 적고, 갔다 온 선배님들이 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서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학교였다.

 2. 교환학생 준비

 교환학생을 8월에 가는 것으로 확정이 되자 몸과 마음이 모두 바빠졌다. 미국의 학교측에서 서류를 보내왔고, 건강진단서, 학업계획서, 성적표 등 여러 서류 작성과 비자 발급 문제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다행히 취업지원실에서 대부분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먼저 비자는 urp를 비롯하여 다른 서류를 구비하면 교환학생 비자가 나온다. 건강진단서는 예방 접종을 비롯하여 현재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서류인데, 내 경우에는 미국에 가서 예방 접종을 한지 오래되었다고 판단되어 하루에 3대나 맞는 불상사가 있기도 하였다. 기숙사 신청서도 작성하게 되어있는데, 1, 2인실, 룸메이트의 국적과 성격 등도 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기숙사 신청서를 보내고 난 1주일 후 미국 학교측에서 이메일이 와서 룸메이트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클라호마주에서 온 Sara라는 친구.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고 보니 무척 설렜다.

 3. 8월의 출국과 국제 학생 오리엔테이션

 드디어 미국 미주리주로 출국을 하게 되었다. 2000년 겨울, 우리 학교에서 보내줬던 하와이 어학연수가 있었는데, 그 때 같이 갔었던 심리학과 한나 언니와 이번에도 같이 선발되어 LA발 대한항공에 올랐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LA에서 미국 항공기로 갈아타고 ST. Louis로 두 시간 정도 향했다. 그 곳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있었고, 국제 교류과의 Cathy가 학교 티셔츠를 입고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후덥지근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이 곳이 미국이구나...기대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차에 올랐다. 공항에서 학교 기숙사로 가는 1시간 반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국제 학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3일 간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는 교환학생과 정규 국제 신입생들이 참여하는데 15명 정도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처음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한국, 프랑스, 슬로바키아, 러시아, 베트남, 가나 등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 함께 했고, 쉬는 시간마다 세계지도에서 자신의 나라 위치를 알려준다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담당교수님과 상담 후에 수강신청을 하고, 은행에 가서 미국 예금 구좌를 만드는 등 낯선 미국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강편람을 받아 듣고 싶은 과목을 체크하고 담당교수님을 만났다. 학기 당 12~18학점까지 이수하게 되어있는데, 첫 학기라서 일단 5과목을 신청했다. 우리 학교의 세미나 과목처럼 필수 과목인 Academic Writing, 한국에서 교직을 이수하며 미국 교육학 수업을 꼭 들어보고 싶었던 나는 영어교육학 과목 두 개, 정치학 수업 하나와 수중발레를 들었다. 학점을 급급하게 채우는 것보다 우리 학교에서 개설되어 있지 않은 과목을 수강하고 싶었던 내게는 고르고 골라서 들은 더 없이 좋은 과목들이었다.

4. 수업

 개강하고 첫 수업에 들어가서 한국과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들어갔지만, 첫 시간에 강의 계획서를 나눠주고 수업 소개를 하고 끝내는 우리의 수업과는 달리 첫 시간부터 강의가 진행되고, 토론 수업도 진행된다. 첫 학기에 들었던 수업 중에는 영어 교육 수업이 제일 인상깊었는데 Dr. Aulgur 교수님이 좋기도 했지만, 8명의 소수 학생이 정원으로 매 시간 토론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Academic Writing은 첫 학기에 들었던 과목 중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 우리 학교의 세미나 수업과 비슷한 이 수업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수업이 진행된다.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색다른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이 과목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이 과목이 전교생의 필수 과목이긴 하나 영문과 과목에 속해있어 레포트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Synthesis, Argument, Evaluation 등 레포트마다 중점을 둬야하는 주제에 따른 레포트 유의사항 등이 꼭 제시된다. 일단 레포트를 써오면 세네명씩 그룹을 지어 각자의 레포트를 첨삭하게 되어있는데, 자신이 다른 친구의 것을 읽고 쓴 느낌이나 어휘, 문법 수정 등이 다 자신의 점수에 반영되기에 주의해서 성의껏 수정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고친 레포트는 Writing Lab에서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수정을 거치고 그렇게 교수님께 제출하고 각 레포트마다 교수님 면담을 한다. 이렇게 서너번 첨삭된 레포트를 바탕으로 반복 수정하여 최종 레포트 하나를 제출하는데 그 세밀함과 교수님들의 까다로움에 무척이나 놀랐다. 한국에서는 레포트를 작성할 때 책이나 인터넷을 보고 거의 복사하여 제출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한 문장을 그대로 도용하면 플레저리즘(plagirism)이라는 범죄 행위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는다. 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할 때는 꼭 출처를 밝히도록 되어있고, 그 출처를 밝히는 양식도 쓰는 레포트 형식마다 다르다. 처음에는 10장 짜리 레포트 전체를 나만의 언어로 기술한다는 것이 어렵기만 했는데, 첫 학기 중간을 넘어서면서 그 곳에서 요구하는 레포트를 적는 것에 익숙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학기에는 언론 정보 수업 하나, 저널리즘, 교육학, 심리학, 덤블링 등을 들었다. 저널리즘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 신문에 기사가 매 호 실렸는데, 내가 쓴 기사를 읽고 잘못된 점을 고쳐 기록하고 편집장이나 다른 친구들이 쓴 기사를 읽는 일이 하나의 기쁨이었다. 나는 주로 국제면이나 생활면을 담당했는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감 시간에 쫓겨 기사를 쓰긴 했지만,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꼭 얘기해주고 싶은 두 번째 학기의 교육학 수업. 1학기 때처럼 토론 수업을 기대하고 들어갔던 교육학 수업 첫 시간에 강의계획서를 받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한 학기간 시험 두 번, 프레젠테이션 한 번, 그리고 제출해야 하는 레포트가 40개. 한 학기를 다 합해도 그 많은 레포트를 쓴 적이 있던가 고민해봤지만, 한 학기에 40개 레포트를 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그만큼 영어 실력도 늘고 나중에 교직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격려해주셔서 그렇게 그 수업을 시작했다. 한 주에 레포트를 5개씩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공강 시간마다 레포트를 적고, 매 수업 시간에 읽어가야 하는 분량을 예습하면서 진정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그렇게 두 번째 학기도 끝나고 그 수업을 들었던 20여명의 학생 중 가장 높은 점수로 A학점을 받았을 때의 설렘과 뿌듯함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레포트 마감 하루 전에 밤 새워 적고,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를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혼자 외국인이었던 이 수업에 30분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들의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할 정도로 준비했던 시간들이 돌이켜보면 내가 경험한 가장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5. 그 곳에서의 생활

 첫 주에는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고 월마트에서 살다시피했다. 램프, 전화기, 이불, 랜선, 목욕용품을 비롯하여 준비할게 참 많았다. 지금도 가계부에 붙어있는 월마트 영수증을 보면 그 때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개강 며칠 전 처음으로 룸메이트 Sara를 만났다. 조용한 편의 룸메이트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노래와 애니매이션 등을 거의 매일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외국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양한 어휘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 식사는 반드시 학교 카페테리아를 이용하게 되어있다. Westminster의 경우 학교 식당이 두 군데가 있는데, Robby와 Student Center의 JCI이다. 워낙 시골이라 한국 음식을 구하긴 힘들다. Westminster에는 한나 언니와 나를 포함해 한국인이 3명밖에 없어서 주말에 한 번 정도 만나서 가져간 햇반을 먹거나 근처 중국 식당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첫 학기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신입생을 위한 이런저런 파티가 많았다.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광경이 생소했지만,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서 한 번 룸메이트를 따라나선 적이 있다. 폼 파티라고 비누거품 속에서 춤을 추는 그 곳만의 색다른 문화 속에 담긴 미국 대학생들의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었다. 주중에는 늘 A를 받으며 매일 도서관에 사는 수수한 친구가 거의 변신(?)을 하고 춤을 추고 있는 모습에 많이 놀랬었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학교에 가면 여러 동아리에 들 수 있는데 첫 학기에는 요가 클럽과 국제 학생 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또 $5만 내면 에어로빅, 필라테, 요가 강습 등을 한 학기동안 받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기에 두 학기 모두 신청했다. 일단 그 곳에는 음식이 다 기름지고 학생 식당이 뷔페로 운영되기 때문에 살이 금방 찐다. 미국에 간지 세 달쯤 지나 한국에서 가져간 청바지가 들어가지 않았을 때 정말 곤혹스러웠다. 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잠시 멈춘 다음 청바지를 입는 날 보면서 날마다 웃으며 바지 하나 사라고 얘기했던 룸메이트가 떠오른다.
 국제 학생들은 국제 학생 클럽에 참가하여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다. 국제 학생 뿐 아니라 국제 학생을 만나고 싶은 미국 학생들도 같이 참여하기에 여러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매주 만나서 여러 나라 요리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며 재미있는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었다.
 두 번째 학기에는 학기가 끝나고 여행을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의 Multimedia Language Lab (MAC Lab), 도서관 AV, Career Service (우리의 취업지원실)에서 매주 16시간씩 일했다. 임금은 시간당 $5.15로 한 학기가 지나니 꽤 큰 돈이 되었다. Mac Lab에서는 모니터 역할로 학생들이 여러 언어 학습을 위해 사용할 시디의 매뉴얼을 읽어주거나 맥킨토시 등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대체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Career Service에서 일한 경험은 제일 힘들었지만 도움이 많이 되었다. 미국에 가기 전 여의도에서 인턴쉽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회사 생활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류를 작성하여 학교측에 보고하고,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을 하는 학생들의 이력서를 봐주는 일을 많이 했는데, 영문 이력서는 어떻게 쓰는 것인지 각 대학원이나 회사별로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10달이라는 짧지만 가장 소중한 시간동안 많이 보고 배우기 위해 여러 곳을 여행 다녔다. 한나 언니와 켄터키 주를 다녀왔고, 추수감사절에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룸메이트 집에 다녀와 미국인 가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겨울방학에는 국제 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플로리다에 갔는데, 21번째 생일에 중국, 태국, 스페인, 독일 등 각 국의 언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듣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디즈니 월드를 갔다 오는 등 특별한 생일을 보냈다. 봄방학 때에는 미국, 슬로바키아, 러시아 친구들과 캘리포니아를, 학기를 마치고는 일본인 친구와 시카고, 뉴욕, 보스턴 등지를 여행하고 귀국했다. 이렇게 다양한 여행 경험들이 모여 조금 더 확장된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넓은 곳에서 많이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처음에는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쓰다보니 교환학생을 생각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 글이 길어지게 되었다. 대학생활 1년을 외국에서 보냄으로써 다양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한국에서 부딪힐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쩍 큰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