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내 기억 속의 은사님
[교수칼럼] 내 기억 속의 은사님
  • 양정호(국문) 교수
  • 승인 2008.09.2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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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웬만한 사람들과는 적어도 수인사는 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지도교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간혹 그런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기긴 한다. 뭐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간단한 질문인데, 내 경우에는 이 질문이 예나 지금이나 참 당혹스럽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는 고영근 선생님께서 지도교수를, 2학년이 되고는 이병근 선생님께서 내 지도교수가 되셨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내가 공부하고 싶은 세부 전공을 고려하여 안병희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정년퇴임을 하시게 되어서 다시 고영근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네 번에 걸쳐서 세 분을 선생님을 지도교수를 모시게 되었던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된 셈이다.


세 분의 지도교수님은 국어학이라는 학문 분야 안에서 세부적으로 구별되는 분야를 연구하신 분들이다. 고영근 선생님은 문법론, 이병근 선생님은 음운론, 안병희 선생님은 국어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신 대가이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다양한 국어학 분야의 세 대가분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학문의 길을 오게 되었으니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국어사라는 세부 전공 분야에서 공부하면서 세 선생님들께서 다양한 측면에서 가르쳐주신 많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들이었는지 자꾸 느끼게 된다.


학문적인 면에 있어서 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세 선생님들은 참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이셨다. 내가 공부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는 정초에 선생님들 댁을 다니면서 세배를 드리 는 전통이 있다. 내가 대학에 가기 훨씬 전부터 그런 전통이 있었으니 당연히 내 지도교수님들께서도 예전에는 세배를 다니는 입장이셨던 때가 있었다. 전통 자체야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학교의 규모가 커지고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선생님들께서 세배를 다니시던 때와는 달리 정초의 연휴를 온통 제자들을 맞느라 심신이 고단해지시는 상황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마도 특히 사모님들께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니셨을 것이다.

급기야 여러 선생님들께서 이제는 세배를 그만 다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논을 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안병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들께서 학문 분야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당신들 스스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제자들이 있기 때문인데, 단지 힘이 든다고 세배를 못 오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참으로 대단한 제자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다들 퇴임을 하셨고 안병희 선생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선생님들께서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내게 주신 깊은 은혜들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선생님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선생님들의 학덕에 누를 끼치지 않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이제는 나도 선생이 되어서 여러 지도학생들을 두고 있지만, 우리 선생님들처럼 깊이 제자들을 사랑하는지 돌아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선생님들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진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논문을 쓰고, 선생님들께 받은 사랑을 지금의 내 제자들에게 돌려주면서 선생님들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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