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에 남는 은사님
나의 기억에 남는 은사님
  • 강수경(법학) 교수
  • 승인 2008.10.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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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불식간 선생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제의는 사뭇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의 은사님, 나의 선생님.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때를 추억하기 위하여 지나간 앨범을 들추며 기억의 먼지를 닦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사진을 보아도 과연 나의 은사님이셨는지조차 내 기억 속에 확실하지 않은 분도 계시고, 사진을 보니 그때 내가 엄청 싫어했는데 하고 다시 보니 여전히 내키지 않는 분도 계신다. 은사님께 내키지 않는다는 표현이 못내 불경스럽게 느껴지나, 사제 간도 사람 사이의 관계인지라 끌리는 관계와 내키지 않는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답지 않을까 한다.
고등학교 앨범의 거의 뒷부분을 들추던 나의 눈에 든 사진이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나의 기억 속에 은사였다는 사실이 또렷이 남아 있는 분이다. 흔치 않은 일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였다. 1984년이니 아직 원어민 수업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생소하던 시절이다. 일본어회화 첫 시간, 일본 원어민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존함은 里君子 先生. 다른 반 예컨대 독일어 회화반, 프랑스어 회화반 등은 키가 크고 얼굴도 하얀 근사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우리 일본어회화반은 키도 작고 얼굴도 우리와 같은 색깔의 나이가 많은 여자선생님이셨다. 검은 색의 큰 뿔테 안경을 쓰신 단발머리의 빨간 원피스가 너무 안 어울리는 전혀 이국적이지 않은 이 원어민 선생님은 한손에는 책과 출석부를 다른 한손에는 하얀 손수건을 들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교탁을 하얀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으시고는 유창한 한국말로 출석을 불러주셨다.
이 전혀 이국적이지 않은 원어민 선생님은 수업 중 일본어 보다는 주로 한국말로 일본 이야기 보다는 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세상에 명색이 일본어화화수업인데 이 수업 때문에 등록금을 얼마나 더 냈는데 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불만을 간간이 드러냈으나, 이 너무나 한국적인 원어민 선생님은 흔들림 없이 주로 한국말로 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의 일본어회화수업을 진행하셨다.
이후 나는 별로 능숙하지 못한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지고 고등학교를 졸업,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인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본에 대하여 때로 친일파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야 비로소  나의 전혀 이국적이지 않은 원어민 선생님 里君子 先生은 나를, 그리고 우리 일본어회화반을 일본어가 아닌 한국말로 일본 이야기가 아닌 한국 이야기로 일본을 호의롭게 보게 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대학 4학년 때 지병으로 이미 돌아가신 터라 선생님께 직접 여쭈어 볼 수는 없으나, 선생님은 한마디의 일본어를 더 가르쳐주시기 보다는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당신이 한국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도 선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재미없다고 하는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里君子 先生을 생각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나도 나의 제자가 졸업 후 ‘아, 그 선생한테 법을 많이 배웠지’ 보다는 ‘법 참 좋은 것이구나’를 느끼게 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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