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선정성, 그 피할 수 없는 운명
대중문화와 선정성, 그 피할 수 없는 운명
  • 권경우 문화평론가
  • 승인 2008.11.14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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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다시, 대중문화의 선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가수의 노래, 드라마, 영화의 노출 수위 등이 언급될 뿐, 구체적인 내용이나 선정성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선정성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뿐더러, 더욱이 선정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항상 선정성 논란이 이는 것은 동시대 대중문화를 둘러싼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중문화와 선정성은 필요불가분의 관계이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관심을 통해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대중없는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나 무시와 같은 전략으로 대중문화를 생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대중의 비난이나 무관심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와 대중의 관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최근 선정성 논란의 사례 몇 가지를 보도록 하자. 대중가요의 영역에서는 춤이나 의상에서 선정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주로 ‘가사’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최근 가수 ‘비’의 5집 타이틀곡 ‘레이니즘(Rainism)’도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방송 적합 판정을 받았다. 대중가요에 있어서는 드라마나 영화, 버라이어티쇼, 광고 등과 비교했을 때 선정성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의 표현 수위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이유는 각 방송사의 미니시리즈 경쟁이 가열되었기 때문이다. SBS <타짜>의 경우 도박이라는 소재와 배경 등 선정성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MBC <에덴의 동쪽> 등도 폭력적인 장면이나 대상 등에서 청소년들이 시청하기에는 부적합한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외에도 <바람의 화원>은 역사 왜곡 논란에 이어 문근영의 목욕신의 등장으로 선정성 문제까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미인도>는 과도한 성적 표현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배급사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선정성을 무기로 홍보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대중문화계에서 선정성 논란은 외부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인도>의 경우처럼 간혹 자체적으로 홍보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음반 판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혹은 신인가수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대중가요에 있어서 선정성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과거에는 선정성보다는 사회불안 조장과 같은 정치적 이유나 퇴폐성을 문제 삼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선정성은 대중가요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가요가 대중의 일상과 삶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좀 더 폭넓은 내용과 주제를 다뤄야 하지만, 실상은 10대와 20대의 남녀 관계를 다루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요 소비계층이 젊은 계층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온통 사랑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입시와 20대의 취업 문제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 외에도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왜 ‘노래’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그러한 문제들을 노래한다면, 그 이상 선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의 선정성, 폭력성, 퇴폐성을 문제로 삼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성장과정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선정성’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가요와 드라마, 영화에서 재현되는 것과 우리 주변 혹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뉴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선정적일까? 단언컨대, 내가 보기에는 뉴스가 50배는 더 선정적일 것 같다. 성인이 된 지 좀 된 나 자신도 요즘에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 뉴스를 멀리하고 있으니까. 국가 지도자나 정책 책임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있으며, 수많은 사건과 사고, 각종 비리 등은 과도한 성적 표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뉴스와 현실이 훨씬 더 선정적이고 외설적이고 폭력적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청소년에 대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할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 건강에 해로운 사람들을 TV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선정성 논란은 결국 대중문화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 내부의 다양한 콘텐츠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이중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생산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함과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가 새로운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의 선정성은 피할 수 없는 ‘가치’이다. 대중문화를 통해 표현되는 모든 생산물들은 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대중과의 만남으로 인한 필연적인 숙명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선정성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아니면 옹호하는 것은 올바른 입장이 아니다. 이제 대중문화의 선정성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대중문화가 담아내는 다양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그리고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 대중들이 얼마나 폭넓은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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