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을 용납 못하는 사회
노동운동을 용납 못하는 사회
  •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 승인 2009.03.02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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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말, 한나라당의 언론 관련법 강행처리 움직임에 맞서 MBC 노조가 파업을 벌였을 때, 평소 TV 화면에서 보이던 유명 아나운서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대도시 번화가에서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누어주는 동영상들이 누리꾼들로부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00분 토론> 진행자 손석희 씨는 오래 전 방송노조 파업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구속돼 두 달 가까이 감옥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대학생들 중 장차 언론사에 취업해 일할 사람들 역시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언론사 지망생들 중에 그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될까?


석사나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연구원들이 만든 노동조합이 우리나라에 벌써 수십 개나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 중에서 그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뿐만 아니라,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공무원노조에 가입하게 될 것이고, 선생님이 되는 사람은 전교조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다른 나라로 잠시 눈을 돌려보자. 프랑스에는 판사 노동조합과 변호사 노동조합도 있고,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경찰 노동조합, 소방관 노동조합도 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노동조합’에 대해 누군가에게 속아 살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배우 ‘줄리 델피’가 출연도 하고 감독도 맡은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집에 늦게 들어온 딸에게 엄마가 이유를 묻자, 딸이 답한다.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불쌍한 간호사들 파업도 못하니?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천박한 자본주의’ 미국에서나 하는 교양 없는 짓이라는 은근한 비난이 그 짧은 대사 속에 담겨있다. 그렇지만 미국 사회에서조차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처럼 편협하지는 않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골든글로브’ 영화제가 열렸을 때, 시상식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헐리우드 작가노조의 파업에 배우들이 동조해 아무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의 작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벌였는데 탤런트들이 그 파업에 동조하면서 한 명도 출연하지 않더라.’ 그런 일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미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시장경제주의자인 미국 노사관계 전문가조차 한국 정부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운동선수의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렴치한 일인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무노조 경영’을 자신들의 경영 철학이라고 말하고 국민들이 그것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자ㆍ노동조합ㆍ노동운동이라는 단어에 그릇된 인식을 수십 년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온 사회이다. 문제는 그 잘못된 시스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진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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