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TV 전원을 끄다
소시민, TV 전원을 끄다
  • 강병진<씨네21>기자
  • 승인 2009.03.02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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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출처=씨네21)
  봉준호의 영화에서 TV는 종종 수모를 겪는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조용구(김뢰하)가 던진 소주병에 맞아 브라운관이 깨졌고, <괴물>에서는 강두의 발가락에 의해 전원이 꺼진다. 특히 <괴물>에서 강두와 부자의 연을 맺은 세주의 말은 브라운관에 가시처럼 박힌다.“테레비 재미없다. 끄자. 밥 먹는데 집중해.”마침 TV뉴스에서는 괴물을 바이러스 덩어리로 간주해 강두의 머리에 주사바늘을 꽂았던 미국이 해명을 하려는 찰나였는데도, 이들은 당장 눈앞에 놓인 밥이 더 소중한 것이다.

  뉴스를 재미없어하는 건 이해하지만, 대한민국의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봉준호의 영화에서 TV가 홀대받는 건 의아한 모습이다. TV연속극을 보며 호들갑을 떨거나, 뉴스를 보며 어이없는 세상의 모습에 혀를 차는 건 언제나 소시민들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봉준호의 인물들은 모두 세상의 불합리한 논리에 휩쓸리지 않던가. 강두네 가족이 괴물과 싸우게 된 이유, 박두만 형사가 연쇄살인범과 싸우는 이유는 모두 당시 한국사회의 어이없는 풍경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런데도 TV를 보지 않다니. 만약 그들이 Tv를 통해 사태파악을 제대로 했다면, 제대로 싸우거나 제대로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TV를 볼 시간에 가족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일을 한다. 

  전기세만 축내는 TV는 봉준호의 단편 <백색인>과 <지리멸렬>에도 등장한다. 켜져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TV다. <백색인>은 어느 날 출근길에 잘린 손가락을 주운 남자의 이야기이다. 기겁하기는커녕, 신기해하며 손가락을 갖고 놀던 그는 TV를 켜둔 채 잠이 든다. 그때 뉴스가 흘러나온다. 한 공장근로자가 일을 하던 도중 손가락이 잘렸는데 사장이 배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그래서 잘린 손가락을 들고 사장을 찾아가 흠씬 패줬는데 그 사이에  손가락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출근길에 만난 어느 개에게 손가락을 먹이로 던져준다.

  <백색인>의 TV는 이 사회의 아픈 곳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의 무심함을 꼬집는 소품이다. 그런가하면, <지리멸렬>의 TV는 소위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이들의 가식과 위선을 뽐내는 자리다. 도색잡지를 즐기던 대학교수는 토론프로그램에 나가 비도덕적인 대중문화를 탓하고 남의 집 우유를 훔쳐 먹던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은 학교와 가정의 교육문제를 질타하며 노상방뇨를 일삼은 검사는 시민들의 미미한 경범죄를 꼬집는다. 그들의 모습은 어느 거실에 놓인 TV를 통해 방송되지만, 역시 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신문배달로 피곤한 한 남자가 TV를 켜놓은 채 잠들어 있을 뿐이다.

  이 두 편의 단편을 비롯해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TV는 한 장면 안에서 효과적인 화면분할을 이룬다. TV속의 세상과 TV밖의 세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봉준호는 TV 속 세상을 바라보는 TV 밖 인물들의 태도를 묘사한다. 그런데 세주의 말처럼 TV속의 세상은 재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TV 밖의 세상이 더 재미있다. <괴물>과 <지리멸렬>의 사람들이 당장 내가 먹을 수 있는 밥과 그 밥을 떠먹여야 하는 내 가족, 혹은 그 밥을 얻을 수 있게 해준 일을 하고난 후의 휴식을 챙겨야 하는 탓에 TV를 보지 않는다면, <살인의 추억>의 조용구와 <백색인>의 남자는 아예 현실을 회피하려고 든다.(<살인의 추억>의 TV는 부천 경찰서 성(性)고문 경찰 문귀동의 뉴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봉준호는 전자의 사람들을 안타깝게 보고,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냉소의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TV를 보지 않는 이들은 이 세상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소시민이다. TV 속의 권력자들은 세상을 더욱 엄혹하게 만들고, 그 세상에 놓인 소시민들은 엄혹한 현실을 보지 않으려 TV의 전원을 끄는 것이다. 차마 TV를 보기가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봉준호는 TV가 엄혹한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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