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말을 아름답게 다듬어가야 하는 이유
우리가 우리말을 아름답게 다듬어가야 하는 이유
  • 양정호(국문) 교수
  • 승인 2009.07.06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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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추상적인 이론언어학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 윌리엄 라보프(William Labov)는 실제 사회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이론언어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몇 개의 간단한 규칙으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화자를 포함한 여러 사회 구성 요소가 달라짐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라보프는 뉴욕시의 세 사회층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중간급 백화점, 서민 백화점의 점원을 대상으로 모음 뒤에 오는 ‘r’ 발음을 조사하여 고급 백화점일수록 ‘r’ 발음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언어와 사회·문화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로, 언어를 통하여 그 사회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우리말의 어휘에서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보이는 한자어는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현대에 급속도로 증가하는 외래어는 우리나라가 서구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 외에도 언어가 사회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예는 매우 많다. 친인척 사이의 복잡한 호칭과 지칭은 우리 사회의 가족 제도를 반영한 것이고, 다양한 금기어들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생활상과 정신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우리말과 문화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는 ‘쌀’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쌀’은 ‘벼’의 열매를 찧은 것인데, ‘보리’가 밭에 있을 때에도 다른 이름이 아니라 ‘보리’로 불리는 것과 비교하면 ‘쌀’이라는 곡식이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벼’의 경우에는 나중에 논으로 옮겨 심기 위하여 가꾸어 기른 어린 벼를 ‘모’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같은 대상임에도 ‘모, 벼, 쌀’과 같이 구별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쌀’이 음식이 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 명칭은 더 다양해진다. ‘쌀’에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삶으면 ‘밥’이 되고, 물을 많이 넣어서 끓이면 ‘죽’이 되고, 수증기를 이용해서 찌면 ‘떡’이 된다. 밥을 하다 실수를 하게 되면 ‘누룽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결국 ‘쌀’이라는 한 가지 곡식에 대해 ‘모, 벼, 쌀, 밥, 죽, 떡, 누룽지’ 등의 다양한 명칭이 존재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모든 곡식에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수의 곡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우리말뿐 아니라 범언어적으로도 확인된다. 이누이트(에스키모)의 말에 눈과 관련된 단어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점이 그들의 삶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큰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가 언어적으로 잘 반영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속담이다. 특히 여성과 관련된 속담을 보면 과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릇과 여자는 내돌리면 깨진다’ ‘꽃이 향기로워야 벌나비도 쉬어 간다’ ‘남자는 나이 먹으면 어른이 되고 여자는 나이 먹으면 여우가 된다’ 등의 속담들은 모두 여성을 비주체적 존재로 파악하던 가부장적 전통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반면 ‘암탉이 울면 달걀을 낳는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러한 전통적 인식을 부정하고 남녀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를 나란히 언급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남자-여자’의 순으로 단어가 배열되는 것도 둘 사이의 차별성을 반영한다. ‘남녀’와 같은 경우가 그러하고, ‘부부(夫婦), 부모(父母), 자녀(子女), 아들딸’ 등의 단어가 다 그러하다. 그런데 유독 비어(卑語)에 있어서는 ‘연놈’이라고 해서 여자를 앞세우는 것을 보면 성차별적 관습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근자에 ‘엄마아빠, 딸아들’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변화된 사회상과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관련성을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련성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의사, 여검사, 여교수, 여자대학’ 등의 단어에서 ‘여’가 붙어있는 것을 여성 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단지 과거에 의사, 검사, 교수, 대학 등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됨에 따라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여’가 붙은 것이지, 여성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기 위해서 만든 말은 아닌 것이다.
 

 우리말 속에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녹아들어 있고, 따라서 우리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우리 과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나아가 그러한 전통과 문화 가운데 시대에 맞지 않거나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아가는 데 있어서도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우리가 우리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다듬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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