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선배라는 이름의 또하나의 계급
[백미러]선배라는 이름의 또하나의 계급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3.04.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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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그리 활발한 동아리활동을 하지 않은 나에게 인간관계의 범위는 언제나 또래집단 내에 머물렀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의 고학년 선배들을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사는 부류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나마 선배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소위 '줄선배 제도'라고 불리는 우리학교의 전통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저학년 후배가 자신과 반과 번호가 같은 고학년 선배와 친교를 맺어서 일종의 교류(?)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거의 상관없는 의례적인 전통이어서 학기초가 되면 교실 앞엔 언제나 각각 선물을 든 선배와 후배가 함께 모여있는 풍경이 벌어지곤 하였다. 그때 내 줄선배 역시 매 시험 때가 되면 간식과 선물을 챙겨주고 매점에서 마주칠 때면 나에게 꼭 맛난 것들을 사주곤 했다. 나도 고학년이 되고 줄후배가 생겼지만 많이 챙겨주지 못했고 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이름조차 까먹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이기적인 탓도 있었지만 정신적 방황이 특히 심했던 그때 내가 정말 원했던 사람은 일방적으로 돌봐주어야만 했던 후배가 아니라, 소통이 가능한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처음으로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는 내 삶에서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넓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내게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어른과 언니사이, 친구와 선배사이를 오가며 다가가고 싶어도 닿을 수 없고,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만날 때마다 기필코 밥값을 다 내고야 마는 사람, 내 고민에 대해 언제나 확고한 조언과 답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에게 언제나 모든 것에 익숙하고 성숙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체'인 나에게 '객체'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내 눈에 이런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서로 피곤한 관계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공경'이라는 탈을 빌려 쓴 권위의식과 위계질서라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는 인간관계의 범위를 극도로 줄이고 소통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아닌 주체 대 객체로서의 만남과 관계는 서서히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고 때로는 억압하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나이 많음'과 '앞선 경험자'들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어느새 우리사회의 계급 아닌 계급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에 대해 '너무 버릇이 없다'고 말을 하고 또 자기밖에 모른다고들 걱정한다. 하지만 세대간의 진정한 소통과 교감 없는 공동체 속에서 사회화 되어간 아이들이 이런 특징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평등한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이 인간실존의 의미이고 이유라면 소통을 단절하고 한 개인을 이유 없이 억압하는 권위와 위계는 없어져야 할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단지 나이가 많아서, 좀더 경험이 많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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