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리는 다양한 '과체중의 세계'
그녀가 그리는 다양한 '과체중의 세계'
  • 강병진 <씨네21> 기자
  • 승인 2009.07.06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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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순례 감독                                                         <출처=씨네21>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과체중의 세계다. 비만도가 높은 주인공이 나오기 때문이 아니다(그런 적도 있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 속 분위기가 무겁다는 뜻도 아니다(물론 그런 작품도 있다). 임순례 감독이 자신의 영화 속에 담은 무게란, 등장인물들이 지탱해야 하는 삶의 무게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우생순>의 아줌마 선수들은 이 세상의 여자이자 아줌마란 무게, 그리고 인기 없는 핸드볼 선수란 무게를 지탱해야만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부원들은 어떤가. 밴드의 리더인 성우(이얼)가 꿈꾸는 세상은 노래방 TV를 통해 상상하던 것처럼, 모든 옷을 벗고 해변을 내달리는 가벼운 세계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음악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이 곳 말고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있다. 임순례 감독의 데뷔작인 <세 친구>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친구 중 한 명인 ‘섬세’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세상의 압박에, 보기에도 비만도가 높은 ‘삼겹’은 뚱뚱하다는 세상의 편견을 무게로 짊어져야 하는 신세다.
  임순례 감독이 지난 2003년, 인권영화프로젝트 <여섯 개의 시선>을 통해 연출한 단편은 그에게 일종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작품이다. 취업을 위해 살을 빼야만 하는 실업계 여고생의 인권문제를 다룬 이 작품의 제목은 심지어 <그녀의 무게>다.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보다 다이어트를 종용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많이 딴 학생보다, 죽도록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뺀 학생이 여기서는 우등생이다. 게다가 취업 면접관들은 치아교정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왜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안경을 썼는지만 묻는다. (몸)무게 있는 학생인 주인공 선경은 쌍꺼풀 수술비를 벌기 위해 술집까지 나갔지만, 결국 수술이 잘못된 탓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여자이고, 실업계 여고생이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사회적 무게가 결국 소녀의 꿈을 짓밟은 것이다.
  임순례 감독이 장편영화로 데뷔하기 전에 만든 단편 <우중산책> 또한 ‘그녀의 무게’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은 동네 동시상영극장에서 약 9년째 일하고 있는 과년한 처녀 정자다. 오늘 그녀가 일하는 극장으로 맞선남이 오기로 했다. 화장도 하고 머리도 묶었다. 어떤 남자가 올까.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갯어웨이>의 알렉볼드윈 같은 남자? 아니면 <탑건>의 탐크루즈 같은 남자. 사실 그녀의 눈은 그리 높지 않다. 나름 멀쩡한 남자라면 괜찮다. 그녀가 이 극장에서 9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들이란, 로비의자에 누워 낮잠을 자는 청년백수거나, 소일하는 할아버지, 혹은 화장실에 앉아서 휴지를 달라고 소리치는 아저씨들이니 말이다.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던 그녀는 극장 밖으로 향하는 어느 남자의 뒷모습을 본다. 저 사람일까? 하는 마음에 정자는 달리기 시작한다. 세찬 소나기가 내리지만 그녀는 계속 달린다. 비가 그친 후, 정신을 차린 정자는 극장으로 돌아온다. 극장계단에서는 한 대머리 남자가 비에 젖은 가발을 정리하고 있다. 설마… 아니, 정말 그 남자가 오늘의 맞선남이다. 우지끈. 자그마한 기대마저도 현실의 무게에 눌려 무너지는 소리다. 자신을 향해 다가온 남자를 맞는 정자의 표정이 황망하다. 
  임순례 감독이 담는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결국 좌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게는 짊어지는 무게이자, 끌고 가야만 하는 무게다. 때로는 잘 끌려오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발목을 잡는다. <우생순>의 미숙(문소리)은 결승전을 앞두고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다. 눈물을 추스르고 굳이 결승전 현장을 찾지만, 그녀의 마지막 슛은 상대편의 골문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부원들 또한 다른 세계로 날아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결국 부곡하와이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세 친구>가 묘사하는 좌절은 그들이 이제 막 세상에 진입하는 시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 답답하다. <그녀의 무게>의 선경과 <우중산책>의 정자도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이들의 체중은 신체적인 체중과 현실의 무게를 더한 값이 나올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지금 내가 어깨에 메고, 머리에 이고 다리로 끌고 가는 무게를 재보게 만든다. 경제적인 무게가 몇 kg, 사회적 성차별에 의한 무게가 몇 kg, 능력부족으로 인한 무게가 몇 kg, 그 외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수많은 무게가 몇 kg. 몸무게만 다이어트를 하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무게를 다이어트하는 것은 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가 결국에는 좌절을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몸무게를 줄인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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