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스며나오는 그것
진실이 스며나오는 그것
  • 강병진<씨네21> 기자
  • 승인 2009.07.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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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                                                       <출처=씨네21>
박찬욱의 영화에서 소품 하나를 탐낼 수 있다면 탁자를 꼽겠다. 박찬욱의 탁자는 진실이 스며나오는 곳이다. <박쥐>의 행복한복집 2층에 놓인 탁자를 보자. 흘러간 옛 가요를 듣고, 보드카를 마시고, 마작을 두는 이 탁자에서 상현과 태주의 은밀한 약속이 오갔다. 무엇보다 전신이 마비된 라 여사가 아들을 죽인 범인을 밝히려 안간힘을 쓰던 탁자다. 박찬욱의 탁자가 다른 이들의 탁자보다 유독 흥미로운 이유가 그것이다. 어떤 이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것. 그럼으로써 살아있는 자들의 진실이 꿈틀거리는 곳이라는 것. 라여사가 손가락과 눈꺼풀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지목할 때, 살아있는 상현과 태주가 숨긴 진실도 고개를 든다.
  행복한복집의 탁자뿐만 아니라 나루세 빵집의 탁자도 탐스럽다. 같은 이유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일하던 이 빵집에 어느 새벽,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어느 유괴범에게 아이를 잃었던 부모들이다. 조금 전 복수에 성공한 이들은 빵집의 탁자에 앉아 케익을 먹는다. 그들 스스로 죽은 아이들의 생일 케익으로 명명한 케익이다. 달콤한 맛을 음미하던 도중 아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잠시 후, 한 여자가 금자에게 묻는다. “(유괴범이 가져갔던)돈은 계좌로 넣어주나요?” 그 순간 모든 부모들이 계좌번호를 적는다. 그 사이로 흐르는 어색한 침묵. 한 남자가 말한다. “불란서에서는 말이 끊어질 때 천사가 지나가는 거래요.” 죽은 아이들이 함께 있었던 걸까? 계좌번호를 적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며 함께 침묵한 걸까? 죽은 자만 말이 없다. 살아있는 자들만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럼에도 박찬욱의 탁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앉아있는 곳이다.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출하기 전에 찍은 단편 <심판>에도 비슷한 탁자가 등장한다. 탁자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밥상이다. 영화의 무대는 시체 안치실이다. 참사로 죽은 한 여자의 시신이 놓여있다. 얼굴이 훼손돼 연고를 찾을 수 없었던, 그래서 보상금을 받을 가족도 찾지 못했던 시신이다. 시신 주위로 한 쌍의 부부와 염사. 사고 담당 공무원과 취재 중인 기자가 모여 있다. 부부는 죽은 여자가 6년 전 집을 나간 딸이라고 주장한다. 잠시 후, 염사는 시체를 보던 도중 7년 전 집을 나간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솔로몬의 재판을 역으로 연상시키는 이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는 다리의 흉터다. 그런데 시신의 다리는 잘려나갔다. 이들은 공방을 멈추고 맥주와 안주가 놓인 밥상에 모인다. 이때 한 공무원이 염사와 부부에게 말한다. “대체 왜 이렇게 시신이 자기 딸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하는 거죠? 이 시신은 다른 사람이고, 자기 딸은 살아있길 바라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질문에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다. 분명 부부와 염사 중 어느 한 쪽은 보상금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살아있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죽은 자를 욕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그런 위선이 드러나는 탁자, 아니 밥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쏟아진 수많은 말들을 보면서 이 탁자에 앉히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그의 서거를 ‘서거’가 아닌 ‘자살’이라고 표기하자는 어떤 사람, 이 나라에는 감정과 동정만 있냐고 힐난하던 어떤 사람, 또 그의 장례에 세금을 쓰지 말라는 어떤 사람,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생떼를 쓰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떤 사람. 자신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을 욕되게 만든 그들은 이 탁자에서 어떤 진실을 드러낼까. 탁자가 어디에 놓이든 상관없다. 나루세 빵집의 탁자처럼 죽은 이는 천사가 되어 날아와 모든 걸 목격할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그때가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뜬금없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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